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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May 05. 2024

분별한 젊음에 보내는 책 선물

현과 7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그는 결혼하여 쌍둥이 아빠가 되었고, 제주도로 이사했다. 나는 제주도에 3일 머물렀다. 낮에는 현과 만나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과거와 각자의 일상을 되풀이하고 그가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해 조언을 해주었다. 저녁이면 현은 집에,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의 아내 빈과 아들 둘 율과 솔도 만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온몸으로 실감했고 내가 그와 어디서부터 달랐는지도 깨달았다. 그 차이는 7년 동안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달랐다. 나는 이제 그를 나라는 거울로 비춰보지 않고 온전히 행복하기를 빌 수 있게 되었다.   

  

현과는 21살에 만났다. 우리는 같은 대학에 다녔고 같은 하숙집에 살았다. 그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하숙집이 가정집을 개조했고 각 방이 가벽으로 막혀 있어 모든 방이 복도로 연결된 데다 아침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친구들보다 현과 나는 더 특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은 연애에 관심이 많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잘 알았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늘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절제했고 내가 뭘 원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으므로 어떤 지점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각자가 갖지 못한 면에 대해 경외했던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대단한 걸 하지는 않았다. 게임을 같이 하고 치킨을 시켜 먹고 댄스스포츠 동아리에 들어가 춤을 추고 각자 연애를 하면서 밤에 모여 시답잖은 고민을 나누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충만했고 서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었다.     


대학 졸업 후 현과 7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이유는 복잡했다. 우리는 하숙집을 나와 둘이 따로 집을 구해 살았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원하지 않았던 집에 들어갔고 현은 로스쿨에,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비염을 앓고 있어 늘 코를 푼 휴지와 옷가지를 여기저기 던져놓았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서로가 원하지 않을 때는 각자의 방으로 숨을 수 있었던 하숙집과 달리 집에선 반드시 현과 만나야 했다. 나는 잘 풀리지 않았던 취업 문제를 현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동갑내기인 그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 또한 로스쿨 생활로 괴로워했다. 그가 어느 날 1시간 동안 샤워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너무 오래 화장실에서 있다는 걸 깨닫고 그를 불렀는데 현은 자기가 1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구멍으로만 자꾸 빠져들었다.

      

2년을 채우자마자 나는 집을 떠났다. 현과는 종종 만났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현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시험을 쳐 검사가 되었다. 나는 다큐멘터리 일을 시작했다가 심각한 소진을 겪었다. 때가 마침 2014년이었고 세월호 참사에 깊숙이 관여했으므로 내 앞에 놓인 세계를 소화하느라 바빴다. 현 또한 검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잘 말하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고, 결국 검사를 그만두고 다시 변호사로 돌아갔다. 현과 마지막으로 만난 건 결혼식이었다. 제주도에서 가족끼리만 했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현의 아버지가 축사를 읽다가 울었다. 현의 아버지는 대학 교수로 너무나 무뚝뚝한 가부장의 표본이었으므로 우리는 몰래 웃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한번 만나자고 말했지만 그 순간은 자꾸만 미뤄져 7년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3일 동안 그가 회와 초밥과 흑돼지를 사주었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와서 보답을 하고 싶었다. 나는 책 세 권을 골라 직접 포장했다. 한 권은 현에게, 한 권은 그의 아내 빈에게, 한 권은 그의 두 아들을 생각하며 골랐다.




정욕 / 아사이 료 / 2024

바르지 않은 욕망을 지닌 여러 인물이 뒤섞이는 소설이다. 아사이 료의 신작 소설인데 그는 현실에 아주 잠시 동안 존재했던 시대라는 것을 늘 소설로 써 보이는 멋진 작가이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검사이고, 내 생각에 현은 바르지 않은 욕망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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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다 / 클라라 뒤퐁-모노 / 2022

현의 아내 빈은 쌍둥이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빈을 잘 알지 못했지만 현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로 이사를 강력히 원한 건 빈이었고, 조용하며 늘 세상에 많은 것과 잘 맞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고 했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애아가 태어난 가정과 그의 형제인 맏이, 누이, 막내가 아이로 인해 어떻게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 그리고 세상과 조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034781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조던 스콧 / 2021

쌍둥이는 두 돌이 지났는데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한다. 또래 여자애들에 비해 원래 남자애들이 발달이 느리다고는 하지만 현은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그림책이다. 중간에 삽입된 파노라마 같은 윤슬의 아름다움도 멋있지만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건네는 강물처럼 말하고 있다는 메시지 또한 잔잔하게 와닿는다. 결국 그 책을 읽어줄 사람은 현과 빈일 것이므로 가족 모두가 강물에 젖어보기를 바랐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66164




택배에는 카드도 써넣었다. 카드에는 이런 문장을 썼다.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래? 나는 지나온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돌아가지 않을 거 같아."     


현은 책을 받고 메시지를 남겼다.

"고맙다 책 잘 받았다. 빈이도 너무 고맙대."


제주도에서 현의 집에 갔을 때 비가 쏟아졌었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 식초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었다. 나와 현은 마당에서 튜브풀장과 의자와 빨래를 걷어서 집으로 들여놓기 위해 마당을 뛰어다녔다. 빈은 나를 보며 ‘오빠, 괜히 와서 일하네.’라고 말했다. 옷이 조금 젖었고 빈이 갈아입고 나가라고 했지만 우린 됐다며 웃었다. 곧 우린 따로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쌍둥이 아들 둘이 바닥에 엎드려서 손을 꽃모양으로 만들고 턱을 받쳐서는 잘 다녀오라고 애교를 부렸다. 빈이 ‘오빠도 우리 옆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현도 내가 땅을 천 평 살 테니 거기 집을 지으라고 했다. 나도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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