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나눈 이야기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이 뒷담화는 여행 키워드의 첫 번째 텍스트인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이주, 일벌레가 참여했습니다.
* 본 뒷담화는 '탈주-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길 바라는 사회로부터’를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328
박루저 : 키워드를 정할 때는 어느 ‘여행’이 겉으로 봤을 때는 여행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삶이 작게 압축되어 있는 지점을 생각하면서 ‘여행’을 추천했었어요. 근데 막상 ‘델마와 루이스’를 보니 이 영화는 ‘여성’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어서 생각했던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비슷하게 이들의 삶을 어떻게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볼려고 했어요.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가 무려 28년 점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이에요. 개봉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가 궁금했어요. 지금의 해석처럼 받아들여졌을지 아니면 많은 논란을 불러왔을지요. 두번째로 흥미롭게 봤던 지점은 델마와 루이스가 처음에는 누가 봐도 너무 예쁜 모습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나중에는 점점 흙도 묻고 머리도 헝클어지며 외형이 바뀌어 가는 것이 잘 표현되어서 흥미로웠어요. 처음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면서 출발할 때는 차도 패션도 지금에서 봐도 참 예쁘게 나오더라고요. 영화를 재밌게 봐서 요즘 리들리 스콧 감독에 빠져있었어요.
다희 : 저도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처음에는 델마가 너무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 일종의 편견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어요. 행동들이 너무 과잉되어 있고 답답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점점 행동이 변화하고 나중에는 강도까지 해내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쾌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가 요즘 페미니즘, 여성주의 운동에서 상징적으로 쓰일 수 있는 전언 같은 말들이 많다고 느껴졌어요.
이주 : 저도 델마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특히 처음에는 델마가 소극적으로 걱정도 많고 루이스가 그런 델마를 챙기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뒤로 갈수록 오히려 델마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델마와 루이스의 역할이 점점 역전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일벌레 : 영화 초반부에 델마가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일련의 행동이 답답하게 보였던 것은 그런 감정을 추스릴 시간이 없이 남자가 죽어버림으로써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도 흔히 사회에서 주입받아온대로 위기의 상황에서 낭만적인 무언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주길 바라왔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그런 예상에서 계속 벗어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박루저 : 영화를 해석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포인트는 슬로컴브 형사였어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안 떠올랐어요. 영화를 제 나름의 프레임으로 해석하면서 장면들을 쌓아나갔는데 그 형사는 제가 생각한 프레임 안에 해당하지 않았어요. 영화를 여자친구와 같이 봤는데 여자친구는 형사가 괜찮은 사람같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형사를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다만 감독의 의도이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래서 당시에 어떻게 해석했을지가 궁금해요.
다희 : 저도 형사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델마와 루이스를 잡으려고 일부러 선한 척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위선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형사가 ‘저 여자들은 살인자가 아닐거야’ 라고 얘기하는 것이 ‘여자는 총으로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얼마나 저 여자들이 당해야되냐고 외칠 때는 진짜로 델마와 루이스를 이해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캐붕이라서 혼란스러웠어요. 우선 감독은 선한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이주 : 저도 처음에 형사가 델마와 루이스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고는 변호사인 줄 알았어요...(히히) 그런데 계속 편을 들어주고 잡으러 갈 때에도 따라가려고 하잖아요. 그런 걸 보고는 진짜 착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의 말을 들어서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돌아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으로 연결한 부분은 발제문을 보기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감독 자체는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희 : 영화에서 중간중간 여자들이 도와주려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술집의 종업원도 그 사람들은 살인할 사람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영화 마지막 쯤에 식당 안의 할머니와 루이스의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 있어요. 이미 그런 삶을 다 겪은 여성(할머니)가 창 밖으로 루이스를 바라보며 그 심정이 흔들리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아요. 여성이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느껴졌어요. 선해보이는 형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결코 하지 못하는 이해를 여성은 눈빛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것처럼요.
박루저 : 감독이 영화를 만든 시작 자체는 로드무비를 단순히 여성의 서사로 바꾼 것일 수도 있지만, 여성의 서사로 치환을 하며 여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특히 루이스가 남자를 죽이는 시점이 정교하게 의도되었다고 느꼈어요. 델마를 구해주는 시점에 죽인 것이 아니라 델마와 함께 돌아가려고 할 때 남자가 다시 한 번 조롱을 하잖아요. 그렇게 조롱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로 그 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진짜로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트럭 기사와 계속 마주치는 것도 비슷해요. 그런 경험들이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잘 표현 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델마와 루이스가 점점 더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그 범죄가 정당한 것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사회가 범죄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어요.
다희 : 맞아요. 비록 델마와 루이스가 살인을 하긴 했지만 그 과정이 정당하게 느껴졌어요. 막 멋진 악인이랑은 또 다른 것 같아요. 트럭 기사를 만났을 때도 처음에는 같이 욕을 하고 두 번째는 그냥 참자고 서로를 다독여요. 그러다가 세 번째에는 직접 혼내주는 행동을 해요. 현실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 조롱의 상황에서 처음에는 참게 되지만 그게 반복되고 도를 넘어가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박루저 : 브래드 피트가 돈을 훔쳐가는 것도 의도된 것 같아요. 루이스의 돈이기는 하지만 남자인 지미의 도움으로 획득한 돈을 결국에는 또 남자인 제이디(브래드 피트)에게 빼앗기잖아요. 남자가 출처인 돈은 없애버리고, 강도로서 자기가 직접 획득한 돈으로 해결해가는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 집어넣은 장면 같아요.
다희 : 돈을 빼앗기는 사건이 델마가 결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사건 같아요. 그래서 돈을 뺏기긴 했지만 단순히 뺏긴게 아니라 스스로 주체성을 되찾아온 느낌도 받았어요. 그때부터 빨간 약을 먹은 것이 아닐까요. 남자들에 대한 로망이나 환상을 다 깰 수 있었던 사건 같아요.
이주 : 저는 루이스가 과거에 델마와 비슷하게 성폭행을 당했었던 경험이 있다는 설정을 잘 만든 것 같아요. 그런 과거가 없이 단순히 남자를 죽였다면, 과한 대응으로 비난을 받거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없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캐릭터나 스토리에 더 몰입할 수 있었어요.
다희 : 남성 감독이 이렇게 까지 여성들의 서사를 잘 바꿔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도 그 당시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루저 : 아마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들을 미국, 유럽에서는 이미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도 더 조심스러워지는 상황이 생길 것이고 그게 깨지면서 사회가 성숙해지지 않을까요.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그렇게 한 번 깨는 과정을 겪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이주 : 무려 거의 30년 전 이야기인데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그려져 있었어요. 개봉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늦게 개봉했다고 하는데 별로 흥행도 하지 않았고 큰 이슈도 되지 았았다는 내용을 본 것 같아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 영화를 논 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박루저 : 영화에서 흑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트렁크에 갇힌 경찰을 조롱하는 장면도 흥미로왔어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여성을 바라볼 때와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바라보는 것이 유사하게 느끼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82년생 김지영>이 많이 생각났는데 이제는 이런 영화가 나오더라도 흥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낼거야, 운동을 할거야' 라고 만들어지고 나왔을 때도 치고 박고 싸울 걸 알면서 작품을 내는 것과 논의가 없던 시점에 작품을 통해 논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다르달까요. 지금은 작품을 보지도 않고도 이런 저런 비난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이런 작품을 내는 것이 힘들 것 같아요.
일벌레 : 왓차에서 영화 평을 봤는데 '페미를 떠나, 페미를 넘어 인간의 이야기다' 라는 식의 평이 많았어요. 그걸 보고 아 이런 식으로 중요한 지점을 뭉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