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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ug 17. 2019

차가운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때

61.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부스러기들』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매주 한 명의 에디터가 쓴 리뷰와 여러 에디터가 함께 나눈 대화가 각각 업로드됩니다.

*8월의 주제는 [미스터리]입니다.


*8월 주제 [미스터리] 일정표

1. 책 『부스러기들』(2016),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2. 영화 〈식스센스〉(1999), M. 나이트 샤말란

3. 영화 〈희생〉(1986),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4. 미정




일상이 어그러질 때


Reykjavik @ Ruslan Valeev


많은 추리 소설이 일상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곧 살인과 같은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일상이 어그러진다. 『부스러기들』도 마찬가지다. 포르투갈에서 휴가를 즐기는 한 아이슬란드 가족의 모습은 그냥 보통의 일일 뿐이다. 조정위원회에서 일하는 아이에르는 파산한 사업가 소유 요트의 명의 이전 작업을 맡아, 요트가 정박해있는 리스본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요트는 아이슬란드로 가야 하는데, 요트에 승선하기로 했던 직원 한 명이 다리를 다치고 만다. 운항 규정에 따라 승선 인원수를 채워야 했고, 아이에르는 가족과 함께 요트를 타고 아이슬란드에 돌아가기로 한다.


『부스러기들』은 누가 봐도 냄새가 나는, 확실한 범죄 사건으로 일이 시작되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지는 것도, 운항 규정이 그런 것도, 걱정됐지만 고민 끝에 요트에 승선하기로 한 것도 -아이에르의 어린 딸 아르나가 페이스북에 요트 타고 아이슬란드로 돌아간다고 이미 다 말해놨다고-, 요트에 타니 왠지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어쩐지 이해가 가는, 그럴 만한 일 투성이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돌아온 그 요트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는 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Gray Case with Pink Smoke @ Fred Kearney


『부스러기들』의 미학은 일상에서 풀리는 단서에 있다. 특정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누군가의 삶을 되돌아볼 때, 그 복잡한 삶의 궤적은 멋진 추리를 푸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행동은 나중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수상해 보였던 일은 도리어 결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사소한 일도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그 사람의 원래 성격 때문이었든,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든 간에.


그렇다면 요트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요트의 원소유주의 아내인 카리타스는 요트 내 금고에 있는 거액의 돈을 탐낸다. 개인 비서 알디르와 함께 요트에 탔으나 돈은 찾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비서를 죽이고 만다.

2. 그녀가 요트 열쇠를 주었던 지인이자 승선 예정인 선원 할리(할도르)에게 시신 처리를 부탁하자 그는 이를 거부하고, 동승하기로 했던 선원 스네이바르에게 이를 털어놓는다.

3. 스네이바르는 카리타스가 말하는 돈의 절반을 차지하고 시신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카리타스는 걸림돌이 될 할리마저 처리하고 요트에는 두 구의 시신이 실린다. (금고 안의 돈은 벌써 사라졌고 카리타스가 주기로 한 돈의 실체는 없었다.)

4. 할리의 빈자리(지만 스네이바르가 할리인 척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스네이바르의 반지리)를 채우며 승선한 아이에르네 가족은 냉동고에서 여자(알디르)의 시신을 발견한다.

5. 항해 중 누군가(물론 스네이바르)가 시신을 몰래 바다에 던졌다는 걸 알아채면서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황폐해져 간다.

6. 스네이바르는 자신이 시신을 바다에 던졌다는 걸 눈치챈 항해사를 포함하여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7. 스네이바르는 육지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배를 자동 조종을 해놓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리가 부러져 승선하지 못했던 선원인 척 연기한다.

8. 빈 요트가 돌아온 후 아이에르의 부모님은 요트에 타지 않았던 어린 손녀(아이에르의 막내딸)의 양육권을 갖고자 재정 보증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아들 부부의 보험금이 필요해-아직 아들 부부는 실종 상태이므로- 주인공인 변호사 토다를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Village @ Sölvi Logason


책에서는 '돌아온 요트에 아무도 없었던 이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저 부스러기 같은 단서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사람들은 보통 부끄러운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따라 추측하거나 믿는다. 특히 벗어날 수 없는 공간에서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에겐, 추리보다는 사소한 일상에서 아끼는 것들이 가장 소중하다.


그는 딸들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머리를 어떻게 빗겨야 하는지, 무슨 옷이나 선물을 골라줘야 하는지, 어떻게 숙제를 도와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요리에는 젬병이었다. ... 사실 어쩌면 그게 최선의 방법일지 몰랐다.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매달리기...


삶은 저렇게 계속되겠지만 도중에 실패한 누군가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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