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영화 맷 로스, <캡틴 판타스틱>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1권과 영화 1편을 봅니다.
* 매주 한 명의 에디터가 쓴 리뷰와, 여러 에디터가 함께 나눈 대화가 각각 업로드됩니다.
* 10월의 주제는 [자연]입니다.
1. 책 『랩걸』(2017), 호프 자런
2. 영화 〈캡틴 판타스틱〉(2016), 맷 로스
이상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한국어를 채 다 배우기 전에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초중고 도합 12년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며, 개개인의 선호도보다는 안정적이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 우리 나라에 살며 잘 산다는 것은 잘 짜여진 정답을 따르는 삶이기도 하다. 20살에는 좋은 대학에 가서 졸업 후에는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고, 2~3년 돈을 벌고나면 결혼을 하는 등 이 나이 때에는 이걸 해야지 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물론 점점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직업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생각들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답답함이 많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의 감정소모를 하며 지쳐가고 있던 나에게 <캡틴 판타스틱>의 벤 가족의 삶은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매일 충분한 시간동안 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술을 배우며, 직접 채집하거나 잡은 동물로 요리를 해 먹고, 다양한 책을 읽고 가족들과 함께 즉흥 연주를 펼치는 모습들이 어쩌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닌가 하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게 돈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 하루의 2/3의 시간을 바칠 필요도 없다는 것이 가장 끌리는 포인트였을까. 제발 단 하루라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었기에 그냥 확 자연인이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물론 운동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이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그들만의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마음의 병 때문에 도시의 병원에 입원한 엄마 레슬리의 죽음 때문이었다. 벤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레슬리의 부모님으로부터는 미움을 받고 있었기에 차마 장례식에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했고, 결국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기 위하여 다 함께 도시로 향한다.
그렇게 가게 된 도시는 그들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새로운 것이었다. 살찐 사람이 가득하고, 알 수 없는 기계와 물건들이 있는 책으로는 읽어왔지만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핸드폰과 게임기만 주구장창 들여다보고 부모님의 말을 그저 잔소리로만 여기는 사촌들의 모습에 비해, 벤 가족의 모습이 더 이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레슬리의 죽음에 대해 서슴지 않고 진실을 뱉어버리는 모습도 어린이라고 마냥 무시하거나 속이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준다는 면에서 대단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이상하다고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잘 살고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는 그렇게 살면 안돼' 라고 이야기한다면 결국 이상한 삶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이후 영화는 보가 캠핑장에서 또래의 여자 친구를 만나고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프로포즈를 하지만 비웃음 아닌 비웃음을 당하는 모습과 렐리안을 할아버지네에서 데려오기 위한 독단적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키엘러가 지붕에 오르다가 크게 다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교육들이 사실은 별로 이상적인 것이 아니야! 라는 느낌이야. 그 순간 '도대체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이 옳다고, 맞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 하지만 사실 그에게 찾아온 위기는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관에 너무 얽매여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벤은 렐리안이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서부터 느낀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들어주고, 슬퍼할 시간을 주지 못하였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셈이다. 그리고 보가 대학을 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는 장면에서도 말을 제대로 들어봐주지 않고 화를 낸다. 보와 렐리안,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그동안의 교육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벤이 이를 망각하고 자신의 뜻을 아이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때문에 마지막에 다달아 벤과 아이들이 엄마를 구하러 가는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매장이 아닌 화장을 원한다는, 화장 후 남은 뼛가루는 그냥 아무 공중 화장실에 떠내려보내달라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벤 가족은 몰래 공동묘지를 파서 시신을 데려간다.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와 함께 춤을 추며 엄마를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는 공항의 화장실에 떠내려 보낸다. 어찌보면 말도 안 되는 유언이지만, 이 유언을 따르는 것이 의미있는 것은 결국 고인이 스스로 판단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벤 가족의 삶은 조금 변화한다. 보는 대학은 가지 않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 가족들은 작은 농장에서 살아간다. 아이들은 이전과 달리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일반적인 가족들과 같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앞으로도 닥칠 다양한 상황에서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답이 아닌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한 삶을 멋지게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