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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책상 위 고양이 Feb 10. 2021

방송, AI를 만났다

주말 아침,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시는지 궁금해 곁눈질로 TV를 쳐다보니 MBC의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였다. 얼마 전 해당 프로그램을 모니터링을 하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던지라 아버지의 반응이 궁금했다. 입술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아버지의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너를 만났다 시즌2>, 세상을 떠난 아내를 VR로 재회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처: MBC 홈페이지)


10분쯤 지났을까, 또 거실로 나온 나는 다시 한번 TV를 쳐다봤다. 채널이 바뀌어 있었다. 


"아까 그거 왜 계속 안 보시고..."

"아 그거? 저렇게 해서 뭐하냐, 마음만 더 아프지."


나와는 다른 아버지의 반응에 나는 괜히 머쓱해서 "그래요?"라고 말 한 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지금 방송가에서 AI는 핫한 소재다. AI와 인간 대표가 대결을 하고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AI로 재현된 고인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Mnet, AI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 지금까지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와 같은 긍정적 반응이 대다수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는 불편함을 표시한다. 그 불편함의 기저에는 과학기술과 인간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사실 나 역시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의구심을 품었다. 과연 저래도 괜찮을 걸까? 마음대로 고인을 재현해서 만나게 해도 되는 걸까? 고인도 이런 걸 원했을까? 이를 계기로 출연자들의 삶은,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건 아닐까? 어디까지가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일까?


결국, 나는 이 지점에서 프로그램의 명분이 얼마나 설득적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눈길을 끌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AI로 고인을 재현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시청자는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다행히 <너를 만났다 시즌2>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꽤 설득력이 있는 작품이다. 왜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VR로나마 다시 만나야 하는가?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명분은 단순한 그리움 이상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주인공이 이 만남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주인공에게 VR로 재현된 아내와의 만남은 일종의 애도 과정이다. 하지 못했던 말을 아내에게 뒤늦게 전하고, 아이들에게는 아프지 않은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머릿속에 남겨주기를 바란다. 단순히 그리움을 달래는 것을 넘어 그 이후의 삶에도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마치 미래판 굿처럼 느껴졌다. 굿에서도 무당이 빙의를 해 산자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있고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너를 만났다 시즌2>의 김종우 PD는 한 인터뷰에서 과학기술의 심리 치유효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너를 만났다 시즌2>가 미래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에 비해 Mnet의 <AI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은 조금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프로그램 초반부터 계속해서 뒤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질 것이라는 연출이 이 프로그램의 방점이 어디 찍혀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터틀맨'의 가족과 거북이의 멤버였던 두 사람이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거북이의 무대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많은 팬들이 있었기에 프로그램의 목적은 '추모'로 받아들여졌다. SBS의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도 '보고 싶다'를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긴 했다. 비록 유가족은 동의했더라도 고인의 동의는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전문가의 말을 빌려 이 대결의 목적이 AI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미래를 모색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전달했기에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Mnet, <AI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VR, AI와 같은 과학기술의 유입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방송가에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들은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소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논란에서 보았듯이 인간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충돌 역시 발생할 것이다. 과연 방송과 AI의 만남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겨줄까? 그 만남이 잘못된 만남이 아니려면 AI보다 근본인 인간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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