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방에 혼자 살아가다 보니 갖은 취미 생활에 돈을 흘리고 있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는 못하고 잡다하고 얄팍하게만 경험하고 있다. 홈트레이닝, 가드닝, 퍼즐, 드로잉....오늘은 앞으로 명상을 해보겠답시고 2만원짜리 싱잉볼을 주문했는데, 두 달 뒤 쯤 방 한구석에 먼지 쌓인 요강 마냥 쭈그러져 있을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지금이라도 주문취소를 해야 하나?아무튼, 사진에 보이는 이 녀석도 거기에 희생되고 있는 자그마한 피해자다.
'스노우 사파이어'라는 수경식물로, 잎의 모양이 초록색 사파이어 위에 눈이 뿌려진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들고 다니던 그 식물이라고도 하는데...솔직히 영화가 기억나진 않는다. 아무튼 기르는 난이도는 거의 모든 관상 식물들 중에 제일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건조해도 습해도 빛이 적어도 좀 많아도 기본적으로 잘 버티고 잘 자라는 친구다.
스노우 사파이어가 담겨 있는 투명한 병은 원래 테라리움이라고 해서, 예쁘게 뿌려진 색모래와 장식품들과 다육이 3인방이 함께 살고 있던 보금자리였는데, 지독한 똥손인 나를 만나 그 세 명의 다육이들은 각기 다른 비극적이고 참담한 형태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을 떠나보낸 뒤, 다시는 그런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쉽사리 식물을 기르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나...마땅히 저 빈 통을 써먹을 구석이 없었다. 버리긴 좀 아깝고. 처음에는 마리모라는 걸 길러볼까도 고민했었는데, 저 통에 덩그러니 넣어두면 그 모습이 방에 덩그러니 있는 나랑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서 힐링이 안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 달 전쯤 충동적으로 스노우 사파이어를 주문하고, 그냥 병에 물을 채워서 넣어놨더니 병 입구가 너무 넓어서 제대로 서지 못하고 계속 넘어졌다. 고정을 좀 시켜줄 겸, 볼 때도 좀 예쁘라고 하얀 조약돌을 사서 넣어주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 바로 시야에 보이라고 침대맡 서랍 위에 두었다. 그 모든 것이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처음엔 파릇파릇 금방이라도 부쩍 자라날 것 같던 아이가, 어느새 축 처지고 잎도 노랗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원인은 한 두개가 아니겠으나 내 눈에 띈 가장 큰 원인은 가습기였다. 식물에 물을 주기 귀찮았던 나는, 방안 습도가 낮아지면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가습기 옆에 식물을 두면 저절로 물을 받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꽤 현명한 방안이라고까지 착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습기는 아주 열심히 일했고, 내가 집에 있는 저녁 시간만 해도 물을 뿜는 모습을 하루에 다섯 번은 본 것 같다. 당연히 과습 현상이 일어나 잎이 쪼글쪼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애초에 물 속에 살고 있는 애인데 근본적으로 물을 줘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가습기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었는데도 여전히 스노우 사파이어는 나아지지 않았다. 점차 신선하던 잎이 하나씩 쳐지기 시작하고, 새싹은 돋아나려다가 멈춘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잎은 변색되었고, 전반적으로 그냥 맥아리가 없었다. 오늘 물을 갈아주다가 그 이유를 또 하나 찾아냈다.
뿌리가 모조리 잘려있었던 것이다.
한 송이는 마치 누가 면도라도 한 듯 모든 뿌리가 사라져있었고, 다른 한 송이는 몇 가닥의 뿌리가 남아있었지만 흐물흐물하게 짓눌려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그 뿌리라도 남아있었으니 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거라도 없었다면 문제를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된거지?
기억을 되돌아보니 이 비극은 저번 주에 물을 갈아줄 때 일어났던 것 같다. 물을 갈 때 귀찮아서 통 안의 돌을 비우지 않고 그냥 물을 쭉 채웠다가 헹구는 방식으로 물을 갈고, 식물만 나중에 다시 꽂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돌을 파고 그 안에 식물을 넣고 다시 돌을 덮었는데도, 튼튼하고 기다랗게 뻗은 뿌리들이 구멍속으로 다 들어가지 않아서 식물이 고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식물을 돌 사이에 훨씬 깊숙히 집어넣고 그 위에 넘어지지 말라고 돌을 잔뜩 부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단단한 뿌리들은 막무가내로 눌리고 무거운 돌들에 짓이겨져 흐물흐물하게 떨어져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끔찍한 범행의 현장이었다.
마음이 우울했다. 나는 더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물도 갈고 하얀 돌도 사서 넣어준 것인데, 넘어지지 말라고 애써 풀들을 단단히 고정시킨건데, 결국 그 의욕이 그들을 죽여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스노우 사파이어가 아니어도 이미 우울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이미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수학 방과후 수업은 최악이었다. 아이들은 소리지르고, 장난을 치고, 수업 중에 뛰쳐나갔다가돌아오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 풀지 않고 딴 짓 하고, 다른 친구의 발표도 거의 잘 듣지 않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은 원래 그런거니까. 그저 솔직하게 세계에 반응했을 뿐이다.
최악이었던 점은,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는 거다.
내가 봐도 이 수업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집중도 잘 안됐다. 수업이 체계적이지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애들도 이해가 갔다. 충분히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는 구차하다. 수업 중에 물어볼 시간이 없어서 방과후를 듣는 걸텐데, 방과후 중에도 시간이 없어서 못봐준다고 하면 대체 언제 시간이 있겠나. 그냥 모든 게 내 실패한 설계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들이 느끼기에 단순히 수학 문제집을 풀고 풀고 또 풀기만 하는 수업은 너무 무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자 풀고 문제 풀이 과정을 친구들한테 발표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구성했다. 그래도 혼자 풀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야기하면서 풀면 재미도 있고, 의사소통 역량도 향상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은 걸 하고 싶었다는 거다.
3~5페이지 정도 소단원 문제를 풀면 단원정리 문제가 8개 정도 나온다. 그래서 단원정리 문제를 숙제로 풀어와서, 방과후 시간의 절반은 학생들이 자신의 풀이를 발표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에는 소단원 문제를 풀기로 하고, 시간 안에 못 풀고 좀 남은 건 숙제로 해오는 방식으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이의 입장에선 아마도 이런 악순환이다.
친구들이 단원정리 문제의 풀이를 직접 설명하고 선생님이 보충설명을 하는 것만으로, 8문제를 그렇게 푸는 것만으로 이미 방과후 수업 시간의 대부분이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단원 문제를 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면 시간 안에 못 푼 남은 소단원 문제가 다 숙제가 된다. 그러면 그 숙제에 댜음 단원 정리 문제까지 더해져 숙제는 점점 늘어난다. 하기 싫다. 게다가 숙제를 잘 못 풀겠다. 당연하다. 원래 방과후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모르는 걸 물어봐야 되는데, 앞에서 발표하고 이런데 시간을 다 써서 물어볼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구들이 설명하는 단원정리 문제 풀이도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친구들은 그냥 자기가 책에 문제 푼 걸 칠판에 적을 뿐이고 자기 아는 대로 막 설명한다. 선생님은 그 애가 이미 설명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 보충 설명도 대충 빠르게 끝낸다. (사실은 소단원 문제 풀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만 급한 거다.) 결국 나는 방과후 때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고, (아마 학원 다녀서)공부 잘하는 애들이 앞에서 문제 푸는 걸 그냥 구경만 하다가 끝났다. 시간 낭비만 하는 것 같은데 해야할 숙제는 더럽게 많다. 수학 극혐.
적어놓고 보니까 더욱 끔찍하다. 아이들한테 미안해진다. 결국 원인은 내가 모든 걸 다 하려고 억지를 부렸기 때문이다. 단원정리 발표도 시키고 싶고, 그걸 풀게 하기 위해서 소단원 문제를 풀려서 기초도 탄탄히 해주고 싶고, 근데 그걸 다 하기엔 능력도 시간도 모자라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이 수학을 놓지 않고 잘 하길 바랐고, 그러려면 가장 처음에 단단하게 기초를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뿌리가 잘 세워져야 튼튼하게 자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 의욕은 너무나 무거운 조약돌들이었고, 거기에 눌린 아이들의 뿌리는 짓눌리고 뭉개졌다. 수학은 이미 꼴도 보기 싫은 과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망쳐선 안된다는 책임감과 죄책감 같은 것이 다시 나의 뿌리를 짓누른다. 저번 특성화고에서 가르칠 때에도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내심 그때와 지금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다른 것 같다.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 거지만. 그 때에는 환자를 고치지 못한 의사의 죄책감 같은 것이었으나, 지금은 내가 직접 아이들의 흥미를 하나하나 죽이고 있다는 살인자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너무 많은 책임감이 또 다시 조약돌이 되어 많은 것을 짓누를까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책임감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나의 '재배 실패 일지 (1)'은 1에서 끝나야만 하니까. 글은 몇 번이고 이어서 쓸 수 있지만, 생명과 교육 같은 것들은 한 번 실패해버리면, 그 다음엔 실패조차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P.S. 사실 나에게 무슨 교육의 미래같은 거창하고 멋진 이야기를 할 자격도 없다. 스노우 사파이어가 저렇게 된 건 결국 내가 '귀찮아서' 대충 관리한 결과고, 수업 설계의 실패도 본질적으로 원인은 같다고 생각하니까. 더 신경쓰고 더 고민하고 더 노력하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