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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리왕 Mar 19. 2023

골방에서 세계를 논하는 후안무치 부조리극

감각의 제국 감독판 directed by 오시마 나기사 (1976)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겠다. 102분 동안 23번 등장하는 것은? 답은 <감각의 제국 감독판> 속 정사 장면이다. 오럴 섹스도 정사에 포함할지 여부에 따라 수치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정가영 감독은 오럴 섹스가 사정을 하므로 섹스가 맞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 예술과 검열 같은 영원한 난제를 논할 때 영화인들은 반드시 이 영화를 떠올린다. 1976년 <감각의 제국>을 발표하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외설 혐의로 기소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짜 질문해야 할 것은 감독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섹스를 보여주었는지가 아니다. 감독이 법정에 서는 수모마저 겪어가며 우리에게 102분짜리 섹스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걸 질문해야 한다.​


 <감각의 제국 감독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조리극’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부조리극이란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했던 연극의 한 형태이다. 부조리극 속 등장인물은 비이성적이며 소통이 불가능하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해체되었으며, 내용은 모순과 좌절에 빠진 상태가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극은 무언가를 전달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무의미와 허무에 빠진다. 그러나 부조리극의 목적은 오히려 관객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삶의 부조리를 깨닫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세상을 대하는 적극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감각의 제국 감독판>의 구성은 부조리극에 부합한다. 1936년의 도쿄, 술집의 사장인 ‘기치(후지 타츠야)’와 새로 온 종업원 ‘사다(마츠다 에이코)’는 서로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을 느낀다. 둘은 모든 걸 내팽개치고 여인숙에 칩거하며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은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 돈이 떨어지면 ‘사다’가 고위직 남성과 잠을 자는 대가로 돈을 받아온다. ‘기치’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서 시작한 관계는 점차 전복되어 ‘사다’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 ‘사다’는 ‘기치’에게 광적인 집착을 느끼고 이는 가학적 성행위로 이어진다.

 영화는 일종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주문과 같다. 감독은 골방에 처박혀 섹스하는 남녀를 보여주며 동시에 관객에게 ‘섹스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적극적인 관객이라면 눈앞의 음란에 현혹되지 말고, 이 여인숙 방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30년대에 일본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제국주의의 광기를 급속도로 펼쳤던 시기이다. 앞서 아이들이 전범기를 들고 반라의 노인을 괴롭히는 장면은 짧은 순간이지만 이 영화를 읽기 위한 일종의 주석(注釋)으로 기능한다. 특이하게도 영화 속 대부분의 섹스는 타인에게 노출된 상태에서 이뤄진다. 술집과 여인숙의 종업원, 게이샤는 모두 ‘기치’와 ‘사다’의 성행위를 목격하고도 모른 척하거나 되려 부추기고, 심지어는 동참하기까지 한다.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또는 이에 적극 참여했던 일본 제국의 시민들을 은유한다. 따라서 <감각의 제국 감독판>은 골방을 무대로 세계를 논하는 고약한 부조리극이다.

 이처럼 ‘기치’와 ‘사다’의 관계를 일본 제국으로 치환할 때, ‘기치’의 남근을 따라가면 일제의 결말도 알 수 있다. 영화는 성기를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성기의 야욕은 곧 제국의 야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극의 초반 ‘기치’의 남근은 무소불위 그 자체다. ‘기치’는 어떤 제약이나 망설임도 없이 욕구를 채운다. 그러나 ‘사다’와의 관계가 발전하며 ‘사다’는 그의 남근을 손잡이처럼 잡고 끌고 다닌다. 주체를 상실한 ‘기치’는 ‘사다’로부터 직접적인 거세의 위협을 당하며 섹스와 폭력의 경계가 무너진 행위에 매몰된다. 방 안의 섹스와 방 밖의 전쟁이 일종의 대위법을 이루다 서로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기치’가 이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일장기와 전범기를 흔드는 시민들 앞으로 군인들은 행군하고, ‘기치’는 군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모습은 한 컷에 담긴다. 이 둘은 물리적인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죽음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특히 ‘기치’의 표정에서 그에게 섹스는 죽음에 더 가까운 행위라는 게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근의 부조리한 여정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더 강한 남근에 의해 제거당하는 것. 방 밖의 역사는 방 안에서도 재현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부조리한 게 있다면,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일 것이다. 사건 속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명까지 차용한 <감각의 제국 감독판>은 모든 점에서 ‘리얼’을 추구한 영화인 셈이다. 사실에 가까워지려 할수록 무의미와 허무가 극대화되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가 성취한 두 눈 뜨고 보기 괴로운 신비함이다. 모든 전범국이 자유와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듯 영화 속 두 연인은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거듭 약속한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를 누리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사랑도 평화도 아닌 것들을 분별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감각의 제국 감독판>은 오늘날 우리에게 유효하다.



<감각의 제국 감독판>은 3/18부터 3/26까지 아트나인 [2023 재팬무비페스티벌: 사랑의 기원]에서 만날 수 있다.


아트나이너 17기 강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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