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directed by 미야케 쇼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처음 써봤던 순간을 기억한다. 헤드폰을 착용했던 순간보다 헤드폰을 벗는 순간이 더 강렬했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웠단 말인가? 그때의 내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원래 모든 닿는 것들은 소리가 나는 법이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저마다 최선을 다해 무언가와 맞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케이코(키시이 유키노)’는 선천적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프로 복싱 선수다. 그녀는 일과 운동을 병행하고, 타고난 재능도 없다고 평가받지만 신승을 거두고야 마는 선수다. 그러나 세상은 소리 없이 그녀를 코너로 몰아간다. 팬데믹이 장기화에 접어들고 체육관의 사정은 날로 악화된다. 개인과 사회가 모두 전의를 상실한 시대에 그녀는 꼭 외딴섬처럼 보인다. 더 싸워야 할까? 과묵한 그녀는 차마 큰소리로 묻지도 못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먼저 소음을 들려주고 다음에 그 진원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많은 소리는 ‘케이코’의 세상이 얼마나 고요할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한편 우리가 그녀를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이 소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니다. 그 무작위한 소리 안에 패턴이 있고, 무의미한 말들 사이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코’의 글러브가 미트를 두들기며 내는 소리에서 어떤 리듬을 발견하는 순간이 바로 영화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도쿄의 어느 낡은 체육관에서 들리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소리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가 곧 ‘케이코’의 코치이고 동료이고 관객이다. 덕분에 영화가 끝날 때쯤 우리는 세상이 조금은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케이코’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그리고 풀리지 않는 신발 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