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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Jul 25. 2022

어쩌다 속초

와봤다 나도

은근히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나는 당일치기로 속초에 갔다. 나도 모르게 이끈 행동이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고 그날 꼭 안 가도 될 일인데 '아 가야겠다' 하고서 집을 나선다. 원래 계획적인 사람인데 요즘따라 무계획으로 사는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마음대로, 계획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러는 것 같다. 위 사진 속 주인공(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아예 머리색도 빨간색으로 염색해야 할 판이다. 

옛날 옛적 만났던 친구가 내게 '너에게 바다 같은 남자가 되어줄게' 말하고서 속초 바다사진을 보낸 적 있다. 군입대 전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아닌 동시에 만나고 있었던 여자와 속초로 놀러 간 것이다. 개그 유머처럼 기억에 남아 속초 하면 젊은 남녀들이 코스로 갔다 오는 커플여행으로만 터부시하고 굳이 갈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오징어순대를 참 좋아하는데 예전부터 속초와 강릉이 오징어순대로 유명하다고 들어 몇 년 전부터 가고 싶었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모녀 가리비’라는 곳에 가서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오징어순대를 먹었다. 계란물에 입혀진 일반적인 오징어순대가 아닌 겉면이 바삭한 누룽지 스타일로 특색 있는 맛이다. 맛있게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라또래요' 젤라또

속초도 젤라또로 유명한 곳인가? 강릉의 순두부젤라또처럼 속초에 유명한 젤라또 가게가 있어 방문했다. 쑥과 초코맛을 골랐는데 맛이 진하진 않았다. 깊은 쑥 맛을 상상했지만 마치 쑥떡 먹을 때의 그 맛이다. 그래도 젤라또로 입가심을 하였으니 역시 현대인은 후식으로 디저트가 필수다. 후식을 다 먹고 속초 하면 당연 속초 바다지 하며 근처에서 가까운 속초해수욕장을 갔다.

속초해수욕장에는 영국의 런던아이를 본뜬, 관광용이자 랜드마크로 떠오른 속초 아이가 있다. 이걸 보고 런던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든 나는 사대주의인가. 

드넓은 바다를 예상했지만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이라 생각만큼 시원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답답했다. 해변은 상업적인 느낌이 강해서 한적하고 에메랄드 빛 색깔의 바다를 기대하며 온 내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저마다 수영복 입고 놀러 온 젊은 사람들은 신나 보였다. 

속초의 킬 포인트였던 옥수수밭

눈요깃거리로 바다는 실패했으니 속초에 숲길이라도 있는지 검색했다. '노리숲길'이라고 속초시립박물관 입구 쪽에서 오른편으로 가다 보면 작은 규모의 숲길이 있다. 더 깊이 들어가진 않고 입구 쪽만 걸었다. 마을은 조용하고 소박했다. 그러다 폐가를 발견했는데 이곳을 카페로 운영하면 인스타 갬성 느낌 나겠다라고 잠시 상상했다. 그러다, 해변의 상업적인 느낌이 싫어 숲길로 온 내가 이런 생각하는 것이 웃겼다.

이곳은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에 치유받는 느낌이다. 금세 사소한 거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라는 온순한 주문을 걸게 만든다. 

길가에 작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 TV 화면으로만 접하는 풍경일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옥수수밭은 시선을 사로잡았고 한동안 그 앞에서 머물렀다. 왠지 모르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바다만 생각하고 왔다가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감성적인 옥수수밭에 마음이 이끌렸다. 아 너무 좋아라! 구황작물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모를 일이다. 

걷다가 돌담에 이름 모를 꽃들 사이로 한두어 개 빨간 열매가 달려있었다. 방울토마토인지 다른 열매인지 모르지만 자연의 싱그러움을 새삼 느낀.

운치 있는 자연을 보고 마음의 양식이 채워져 배가 고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입이 심심했다. 속초중앙시장에 가서 유명하다는 술찐빵을 샀는데 이 집만 유독 줄이 긴 이유를 알았다. 빵에 박혀있는 강낭콩과 완두콩이 부드럽고 달달했다. 팔뚝만 한 크기로 양이 많지만 너무 맛있어서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다 먹었다. 달달한 술찐빵사러 또다시 속초 당일치기를 다짐해본다.

번뇌를 없애는 한적한 풍경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뜻밖의 여유로 잠깐의 휴식을 갖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핀 이름 모를 풀과 꽃들마저, 조용히 그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그리고 속초는 속초 바다와 오징어순대가 아닌 옥수수밭과 술찐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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