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키 Sep 08. 2022

오늘의 인생, 은 뭘까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 <오늘의 인생>

p.12

신문에 난 광고를 보다가 

"오."

"'시베리아 철도 3일 패키지'라고!?" 

2박 3일 러시아 패키지여행을 발견하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이렇게 갈 수 있어?'

"우선 벽에 붙이고 생각해보자."

갈 마음 45퍼센트인 미묘한 지점.


p.32

머리가 좋아지면 좋겠다고 바랄 때는, 남의 구슬림에 넘어갔을 때.


p.34

쇼핑센터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변기 뚜껑이 순서대로 올라가며 엄청난 환영. 재미있어서 제일 안쪽 칸막이까지 걸어갔습니다.

'환영해줘서 고마워.'


p.112

그럴 때, 어디 잠깐 앉아서 쉬고 싶을 때. 배는 출출한데 그렇다고 일부러 가게에 들어갈 정도는 아닌, 그런 때. 벤치나 화단이나 계단이나, 그런 곳에 앉아 만주 같은 것을 먹으며 잠깐 숨을 돌리고 싶은 정도인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는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다.(만화의 말풍선에 나오는 글만 적었다) 매일 쳇바퀴 같은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작가는 그 일상을 귀엽고 하나의 위로로 표현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지루하고 시시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해도 작가의 만화를 보면 이런 일상을 보내는 것도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 '내 개성의 연약함도 개성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영화나 음악이나 공연이나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난간'을 만드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가 아는 것은 ㅇㅇ의 일면일 뿐인데 그래도 용서해주었다.'


중간에 위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공감이 되어서 밑줄 쫙. 

특출 나지 않은 나의 연약함도 나를 이루는 하나의 개성일 수도 있고, 지금껏 지나쳐온 사람들 중 나는 그 사람의 백만 가지 성격 중 한 면만 알 테니 넘어가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최근 마음에 남는 말로 곱씹던 하루가 있었다.

현재 정기적으로 다니는 일에서 벗어나 학업과 일을 같이 병행하고 있다. 3개의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 번지르르하게 '연구원'(무얼 연구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이란 2개의 직함과 '근무자'라는 1개의 직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관리하는 교육원에서 '근무자'로 일하고 있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 계신 분과 했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서로 마스크를 완전히 벗은 적도 없고 나이도 자세히 모르지만 아주 귀엽게 생긴 20대 중반의 여성분이다. 우리는 처음 볼 때부터 서로의 직장경험으로 속상, 울분, 한탄을 토했던 사이다. 그분은 일을 하다 힘듦을 짧게 토로했다.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으레 받게 되는 직장동료의 앞담화와 순간 벅찬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도 잠깐 일했던 곳에서 어떤 분이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해서 대놓고 하는 앞담화로 스트레스와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 탓에 6개월 정도 몸이 정말 안 좋았고 울면서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다. 다른 직장에서는 매일같이 고된 새벽 업무로 정신과 몸이 힘들어 내가 평소 좋아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을 뵙고 근황 얘기하다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가 제일 힘든 것 같다 라는 통상하는 대화와 함께 죽지 못해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것 같다 라는 푸념만 했다. 내가 나이가 조금 더 많으니 젊은 꼰대 느낌으로 내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되는 말을 했더니, 

'선생님~ 쌉인정! 아, 정말 쌉인정' (평소 호칭은 선생님 또는 샘으로 한다)

'쌉인정'과 같은 단어는 인터넷에서 글자로만 보았지 직접 내 귀로 음성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젊은 세대처럼 일을 할 때 이기적으로 정신건강과 몸을 잘 챙겨야 한다는 말을 해줬다. 그러면서 그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다 쉬워질 줄 알았는데 점점 어려운 일들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해서 더 상처받는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나는 20대인 그분에게 뭐라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해줄 말도 없었다. 뭔가 많은 경험을 하고 다 아는 듯한 언니 느낌으로 멋있는 말로 조언해주고 싶었지만 '맞아요, 저도 그래요'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나도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는데, 진심이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 때면 상처를 많이 받고 허탈한 마음이 뭔지 안다. 그래서 그 말에 깊은 공감으로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선생님 바보 바보. 근데 저도 바보예요'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내가 그분의 나이로 일할 때 주변에 지금의 내 나이였던 선배들이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어른인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고 싶고 롤모델처럼 삼고도 싶었지만 딱히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어린 내가 부럽다던지, 너는 아직 젊어서 괜찮아 라는 말만 들으니 답답하면서 내 앞길을 가로막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갈피 못 잡고 방향성 없고 비효율적인 모습에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내 옆자리 분의 말을 듣고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내가 당하는 인과응보처럼 되기 싫은데 하면서도, 

'맞아요, 점점 더 어렵고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돈 쓰는 게 제일 쉬워요.'라는 답도 안 되는 답을 했다.

정말 지금의 우리는, 어릴 때 엄마카드나 엄마에게 용돈 받는 학생 때보다 노동으로 일군 월급으로 돈 쓰는 게 쉬워졌다. 비싼 음식을 먹고 싶으면 먹고 명품도 할부로 사면 끝이다. 그 어떤 것 중에서 제일 쉽다. 

하지만 나이들면서 알게 된 건 몸과 머리가 고생해서 노동의 값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어렵다는 것. 참 인생에서 슬픈 아이러니이다.

한창 추억의 싸이월드가 복구된다는 소식에 다시 사진첩과 다이어리를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왜 지금과 생각하는 게 별반 다르지 않을까? 지금의 브런치에 일기 쓰는 것처럼 이때부터 절절하게 썼나 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했고, 심심해서 슬펐고,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긴 한 건지, 물과 기름 같은 인간관계에서 본심을 숨기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만 반면에 자상함을 원하기도 했고, '그래 인생은 혼자다!'를 외쳤다. 이때에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인생의 슬럼프라고도 적었다. 고작 21살이 '사람살이에 대한 믿음은 참으로 무력한 것이구나'라고 적었다. 그리고 '헛똑똑이ㅋ.ㅋ'라고 적었는데 어쩜 나는 지금까지도 이리 한결같은지. 

나이 숫자만 많아진 싸이월드 다이어리 속 나, 그대로였다.

저런 일기를 쓰는 시간에 효율적이고 알차게 외국으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갔다면 달라졌을지, 다른 전공을 복수 전공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리고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을 용기 있게 잡았다면 달라졌겠지? 여러모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후회와 미련만 남는다. 끝인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과 사람 관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고민과 생각도 몇십 년 뒤에 생각할 것만 같다. 


어른이 1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는 건 일상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날마다 뭔가를 처음 경험해서 매일이 신선하고 인상적이라 어른보다 1년을 길게 느낀다.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은 치매의 원인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처음 경험하는 게 필요하다. 

[일드 '올드패션 컵케이크'중 대사]


오늘 하루 지루하고 지루한데 일주일은 또 빨리 지나가고 어느새 9월 첫 주가 지났다. 이번 연도도 고작 3개월 남았다. 내 글처럼 인생조차 논리적이지 않고 갈팡질팡, 중구난방, 어수선하다. 작가 마스다 미리처럼 오늘 하루 에피소드를 가볍고 귀엽게라도 그려보고 싶지만 용기가 전혀 나질 않는다. 

나이가 적지 않은 상태에서 왜 아직까지 어려운 일들만 남아있을까? 그리고 왜 해결하기 쉽지 않을까? 왜 건너야 할 계단의 높이만 점점 높아만 질까? 하나의 점보다 작은 미생은 대체 언제 해탈하고 득도한 진정한 완생 생명체가 될는지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봉쥬르 빠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