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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Sep 21. 2022

막바지 복숭아의 계절

김피치, 김복숭이라 할 정도로 복숭아를 좋아한다. 내 입맛 기준 복숭아 중에서 햇**가 제일 맛있다. 논쟁이 벌어지는 탕수육 부먹/찍먹과 같은 복숭아 물복/딱복 상관없이 좋아한다. 하지만 제일 맛있는 건 잘 익은, 겉이 살짝 말랑하면서도 아삭한 어느 중간 지점의 식감. 

내겐 찰나이지만 긴 여운의 행복인 계절이 왔다. 그것은 바로 복숭아의 계절.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지만 날이 조금만 더워져도 마트에 가려는 엄마에게 '요즘 복숭아 있어?'라고 물어본다. 이번 여름에 비싸고 맛도 좋은 복숭아를 많이도 먹은 것 같다.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기 때문에 복숭아 철이 들어가기 전에 얼른 기회를 잡아야지 하고서 욕심을 부렸다. 

가끔 냉장고를 열어 복숭아가 얼마큼 있는지 확인해본다. 복숭아 개수가 점점 사라져 가면 내심 아쉽다. 스크루지 영감처럼 내가 셌던 숫자가 다르면 ‘이거 누가 먹었어!’. 이럴 땐 외동이 부럽다.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과자나 음식 숨기는 일에 대해서 공감할 것이다. 

아침에 먹으려고 꺼낸 복숭아가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애기 엉덩이 같은 모양을 보고 내 드로잉이 잠시 생각났다. 10호도 안 되는 작은 사이즈로 예전에 개인전 준비할 때 작업한 그림이다. 감추어짐을 통한 불안을 표현한 것인데 쉽게 말해서 자연 속에서 치유받는 내용이다. 그래서 알몸인 채로 몸을 웅크려 엉덩이만 보이게 하고(나 여기 있소) 숨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가운데 그림은 ‘뮤지엄 산’ 미술관에서 단지 복숭아가 좋아서 사진 찍었지만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인생은 계획대로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정직하게 곧이곧대로 드러나는 건 운동과 공부 그리고 아침에 뭘 먹고자 생각해서 준비하고 차리는 상. 

복숭아를 먹기 위해 칼로 깎고 내가 원하는 접시에 담았다. 순간 '내뜻대로 되는 건 이거 하나뿐이구나. 그래도 좋다. 맛있으니까. 아 맛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음식을 예쁘게 꾸며서 올리는 계정처럼 나도 테이블 일기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마음과 생각이 들 땐 얼른 해야지, 안 그러면 뭐든 기회를 놓치게 되어 '할걸'이 된다. 그래서 얼른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개설했다. 약간 브런치의 인스타화랄까, 내가 직접 차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걸 먹었는지 일상을 자주 올리고 싶은 용도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몇 개 올리지 않았지만 아직까진 과일과 디저트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빵순이는 지금과 같이 당뇨 느낌이 가득한 빵순이 식단을 업로드할 것 같다. 바쁜 아침에 급하게 차릴 것이 이것뿐이다. 약속이 있을 때는 사람과의 만남에 집중하느라 사진 찍는 것을 깜빡한다. 여타 인스타그램 감성 계정들을 따라 하고 싶지만 투박한 것도 나름 느낌이려니 생각하고자 한다.

부계정을 홍보하진 않았지만 신규 계정으로 떴는지 어떻게 알고서  지인 3-4 정도가 고맙게도 팔로우를 해줬다. 이런 나의 부계정이 오글거렸는지 프랑스에 사는 중학교 동창에게  카톡으로 대뜸 'ㅋㅋㅋㅋㅋ'라고 연락 왔다. 친구와 아래 카톡 내용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도 길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더러 있다. 나와 맞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존재할까 라는 문제는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질문이다. 가족과도 안 맞는데 이 세상에 나와 맞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심한 나와는 달리 세심하고 다정한 친구의 성격 탓에 가끔 감동받을 때가 있다.

막바지 복숭아의 계절이 지나간다. 어느덧 여름의 기운이 아직 남은, 가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9월이 되면 Earth, wind&fired의 'September'를 즐겨 듣는다. 기분 좋게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리기에 좋은 노래이다. 내게 무척이나 행복한 순간이 다가온다면 같이 듣고 싶은 노래 중 하나이다. 9월 21일 우리가 춤췄던 그날 밤을 기억하는지, 이제 12월이라며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을 기억해달라는 내용이다. 별들이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었는지를.


내가 좋아하는 눈이나 아이스크림 모두 시간이 지나면 손바닥에 닿자마자 흘러 녹아 없어진다. 찰나의 꿈결처럼 흘러가버리기에 시간이 아주 조금은 천천히 흘러갔으면 한다. 언제고 깨어지고 흩어져버릴 것이지만.

시간이 흐른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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