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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4. 2020

사촌 동생, 세영


사촌 동생 ‘세영’과는 열네 살 차이다. 우리는 일 년에 세 번 정도 보려나. 외할머니 생신 때. 일 년에 두 번 명절. 가끔씩 내가 자유 행동을 취하니 적으면 일 년에 한두 번이다. 일 년에 한두 번이면 많이 보는 건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와 네다섯 시간이 부족한 것과 달리 친척과 만나는 시간은 어색한 친밀함과 깊숙한 얕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시간이다. 밥만 먹었는데 엉덩이를 들썩이며 더 중요한 일을 하러 당장 집에 가야 할 것만 같다.

세영을 만나는 곳은 외갓집의 익숙한 거실이거나 큰외삼촌의 시골 별장이다. 익숙한 배경과 그녀는 언제나 함께였다. 오랜만에 만나면 나이를 잊어 기본적인 정보부터 묻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그것도 실례인 것 같아, 대충 분위기를 통해 단서를 수집한다. 어릴 적 삼촌이 ‘조이가 올해 몇 살이니?’라고 때마다 물었던 습관을 대물림한다. ‘삼촌은 나한테 관심도 없어! 힝’하곤 했는데 똑같다. 지난해 세영은 열아홉 살로 고3 수험생 기간을 지났다. 확실한 정보로 나이를 기억하고 근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회사 후배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누가 ‘언니!’하고 반갑게 부르며 달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서 만난 앳된 여자 아이. 이 정도 나이의 친구를 내가 알던가. 반가움의 크기로 예상해보면 그녀는 나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매우 가까운 사이다. 누구더라? 교회 동생인가. 일초. 이초. 삼초. “어! 세영아” 익숙한 배경을 떠나 만난 세영을 알아채기까지 길고 짧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영은 외할머니댁 거실 소파를 배경으로 두고 있거나, 젊은 외숙모와 웃기기 좋아하는 외삼촌과 함께여야 하는데 이상하다. 익숙한 배경과 겹치는 목소리 없이 세영을 만났다. 횡단보도에서 만난 세탁소집 아저씨처럼, ‘어 누구더라?’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아~ 세탁소집 사장님”처럼. 다행이다. ‘이름’이 기억나서. 세영이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장면. 새로운 배경을 두고 보니 우리 ‘세영’이 드디어 ‘세영’으로 보인다.

살다 보니 ‘세영’이 등장하는 뭔가를 쓸 줄은 몰랐다. 삼촌은 만날 때마다 내 나이를 물었지만 나는 내 삶을 매일 만나고 매일을 살아내야 했다. 공부를 해야 했고 고민을 해야 했고, 진학을 해야 했고 사랑을 해야 했다. 희미하고도 가까운 애매한 사이와 달리 삶은 치밀하게 찾아왔다. 우리 아름다운 세영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왔을 테고 지금은 모든 것이 전부인 듯한 대학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앞으로도 치열한 인생을 사느라 여념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세영’의 삶의 주인공 ‘세영’을 만났다. 내 흐릿한 시야에 잘 잡히지 않았던 사촌동생이 아니라. 코가 맘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하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된 ‘세영’의 인생 주체 ‘세영’을 만났다. 외할머니 집 거실의 소파와 함께 있지 않아도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세영의 진짜 삶의 일초. 이초. 삼초를 보았다. ‘세영아 언니가 케이크 사줄게. 친구들이랑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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