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카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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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넷플릭스의 두 가지의 작품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해요.
먼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입니다. 전 세계에서 K-팝 아이돌이 되기 위해 모인 지망생들이 혹독한 데뷔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서바이벌을 통해 선발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에요. 사실 새롭지는 않죠. 이 다큐멘터리가 특이한 것은 미국 현지를 타깃으로 하는 아이돌 그룹의 데뷔를 다루었다는 건데요.
이렇게 한국인도 아니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 그러나 K-팝식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을 ‘현지화 아이돌’ 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캣츠아이는 Gnarly라는 곡으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는 등 놀라운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그다음으로, 장안의 화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입니다. 악귀를 처단하는 퇴마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인데요. 공개 후 전 세계적으로 영화 차트 1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죠. 더 대단한 것은 음원 차트 실적인데요. 주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차트를 휩쓸었고, 빌보드 핫100 TOP10에 오르는 기염을 통했습니다. K-팝 그룹 중에선 BTS만이 가능했던 성과였는데, 그 벽을 넘은 겁니다.
어쩌면 K-팝의 미래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캣츠아이의 성공을 통해 K-팝의 다음 단계를 살펴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그 확장 가능성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5월 글로벌 그룹 캣츠아이의 신곡 ‘Gnarly’가 빌보드 ‘핫 100(Hot 100)'에 92위로 진입했습니다. 7월 발매한 ‘Gabriela’ 또한 92위로 진입하는 성과를 이뤘어요. 두 앨범이 연속으로 차트에 오른 것이죠. 대체 핫100이 뭐길래 이렇게 ‘날리(Gnarly)’인가 하면요. 전 세계 음악 산업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죠. 캣츠아이의 핫 100 입성은 K-팝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캣츠아이(KATSEYE)는 우리나라의 하이브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가 협업해 만든 ‘현지화 아이돌’이에요. 6명의 멤버 중 5명의 멤버가 외국인이고,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을 목표로 결성됐어요. 그간 하이브가 쌓아온 K-팝 트레이닝 시스템과 노하우가 미국 음악 인프라와 결합한 사례예요. 캣츠아이는 K-팝 데뷔 시스템, 즉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통해 선발되었어요.(데뷔 과정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를 통해 볼 수 있어요.)
K-팝식 칼군무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K-팝 팬덤이 익숙한 활동 방식을 따르는 그룹으로 ‘K-팝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시장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죠.게다가 캣츠아이가 국내에서도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은 더 특별한데요. 멜론 차트에 오르고, 출연 무대가 유튜브 인기급상승 차트에도 오르기도 했어요.
현지화 아이돌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예요. K-팝의 해외 매출은 23년에 이미 1조 원이 넘는 등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데요. 업계 1위인 하이브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매출 비중은 64%에 달하고, 음원 매출의 86%가 해외에서 나왔어요. 열성팬 위주의 매출 구조를 벗어나 라이트한 팬덤까지 확장해야만 K-팝 산업의 성장이 지속 가능할 거라는 위기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현지화 아이돌은 중요한 시험대예요. 일본 등에서 이미 성공 사례가 있지만, 캣츠아이처럼 글로벌한 성과를 낸 그룹은 드물죠. 엔터사들은 앞으로 제2의, 제3의 캣츠아이를 내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라이트한 팬덤이 왜 중요할까요?
일단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요. 앨범 판매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투어’는 K-팝의 가장 중요한 매출 분야입니다. 이제는 음반 판매량보다는 음원(스트리밍)과 공연 실적이 중요한 상황이 됐죠. 최근 엔터사들의 실적을 보면, 공연 매출이 크게 뛴 것을 알 수 있어요. JYP를 제외한 다른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죠. 이미 연차가 높은 그룹은 물론, 데뷔한 지 1-2년 안팎인 신인그룹까지도 콘서트를 진행하고 MD 판매를 통해 매출이 크게 상승했어요.
라이트한 팬덤을 확대하는 것은 해외 투어가 잘될 수 있는 선결 조건이에요. 그만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야만, 도시별로 많게는 수만 명 규모로 진행하는 공연에서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어요. 그리고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냐의 척도는 ‘음원 지표’고요.
결국 ‘음원 실적 잘 나옴 → 투어 티켓 파워 입증→투어 후 바이럴→팬 유입’의 흐름이 됩니다. 미국 지역에서의 대중성 확대는 대체로 빌보드 핫100 차트 성적이나 스포티파이(Spotify) 스트리밍 추이로 확인합니다. 엔터사들의 음원 매출은 성장세인데, 하이브의 경우 2021년 대비 2023년 음원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캣츠아이로 현지화 아이돌 전략으로 성공한 하이브가 다음으로 주목하는 곳은 라틴아메리카예요.
‘파세 아 라 파마(Pase a la Fama)’라는 라틴밴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고 라틴계 보이그룹을 런칭할 예정이죠. 모두 캣츠아이 데뷔와 같은 형식이에요.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현지에 접목하겠다는 것이죠. 라틴 음악의 본질은 유지하되, 그 방식 면에서 K-팝의 방법론을 융합시키는 것은 기존 K-팝 팬덤 뿐 아니라, 이에 익숙하지 않은 타겟까지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이외에도 하이브는 멕시코에 현지 법인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를 설립하고, 현지 레이블·미디어 기업 인수하기도 했어요. 유명 아티스트를 영입하기도 했죠.
라틴 음악은 전 세계 음악 중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어요. 24년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전년 대비 22.5%나 성장했는데, 15년 연속 같은 성장세라는 게 놀랍죠. 게다가, 라틴 음악은 남미와 미국 본토를 동시에 공략하는데도 강점이 있어요.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 전체 인구의 19.5%를 차지하는 만큼, 라틴 음악으로 라틴과 미국 본토 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어요. 라틴 문화권과 한국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등 일부 문화적·음악적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도 성공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에요. 이런 이유로 하이브는 라틴 아메리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 요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어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부터 많은 한국인 스태프가 참여해 한국의 정체성을 잘 구현해 냈다는 평이 있지요. 정말 한국인이어야만 알 수 있는 포인트들을 잘 구현했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들이 더빙에 참여했다는 점도 진정성을 불러일으켰고요. 수록곡은 블랙레이블이 프로듀싱하고, YGX가 안무를 담당하며, 트와이스가 OST를 참여했죠.
애니메이션으로서도 <스파이더맨 더 유니버스>라는 명작을 만든 소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이라 역시 액션 장면이랄지, 작화도 연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는 점도 좋았고요.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소비하는 구독자들이 50%를 넘을 정도로 이제 애니메이션은 넷플릭스의 핵심 콘텐츠인데요. <케데헌>은 가족들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벽이 낮은 만큼 누구나 쉽게 시청할 수 있었을 거예요.
설정 자체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악귀를 퇴치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던 무당의 힘이 아이돌에게 이어져내려왔다는 설정이라든지, '호작도'라고 불리는 호랑이와 까치 민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호랑이(이름은 '더피')와 까치(’서씨’) 캐릭터가 신 스틸러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도 좋았죠. 교과서에서 한 번쯤 봤을 호랑이 까치 그림을 어떻게 캐릭터화시켰지? 하며 감탄을 자아냈어요.
K의 본질을 숨기지 않은 것
감독은 K-팝 문화와 한국인 스태프들에게 흥행의 공을 돌렸는데요. 그 말대로 <케데헌>은 ‘K’를 정체성으로 체화하고, 이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좋아해온 한국계 아티스트들이 진심을 다해 꿈을 펼친 결과물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처음부터 ‘무’에서 시작하는 것은 없죠. 결국 K-팝은 여러 문화가 섞여 만들어진 독특한 결과물(미국의 팝, 일본의 아이돌, 한국식 군무와 트레이닝 시스템 등등)이니까요.
이 작품에 참여한 아덴 조(주인공 '루미' 목소리), 아그네스 리 프로듀서, 매기 강 감독의 인터뷰인데 그들이 이 작품을 대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제작진 인터뷰
K-팝의 정체성이야말로 ‘믹스’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 참여한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였기에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 내에서만 살아온 '내부인'의 시선으로는 이런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K를 숨기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펼친 것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생각해요.
봉준호 감독도 말마따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니까요.
음악은 <케데헌>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자 성과예요. 내용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노래가 좋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죠. 뮤지컬 영화로서로 손색이 없어요. 전 세계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빌보드까지 휩쓴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넷플릭스는 25년 2분기 실적 보고서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성공한 작품 중의 하나’라며, K-콘텐츠의 성과에 대해 중요하게 언급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주인공 ‘루미’의 보컬이자 주요 곡들을 창작한 이재(EJAE) 또한 SM연습생 출신이라는 서사는 캐릭터와 스토리에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죠. 사랑하는 이들에게마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 당했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뻔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치트키였고요. 이런 ‘성장’ 스토리와 이를 잘 반영한 음악이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어요.
여기서 재밌는 건, ‘아이돌을 응원하고, 함께 성장하는 감각’ 을 제공하는 아이돌 업계의 본질이기도 한데요. 결국 K-팝 아이돌 산업이 가장 잘해왔고 나가야할 길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아이돌이 나오든지 간에, 얼마나 납득 가능한 서사를 보여주는지가 성공을 가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와 별개로, 놀랐던 점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영향력을 실감했다는 거예요. 24년 기준 3억 명이 넘게 보는 거대 매체로서,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한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음원 차트를 뒤흔들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점이에요. (캣츠아이를 알리는데, 넷플릭스 <팝스타 아카데미>도 큰 도움이 됐을 거예요. 저도 이 콘텐츠를 보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졌거든요.) 넷플릭스가 지난 분기부터 실적 발표 때 구독자수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구독자 수는 알 수 없지만 매출 상승을 보았을 때 크게 늘었을 가능성이 크죠.
이런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실제 창작자들에게는 얼마나 수익이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면 조금 씁쓸해집니다. 넷플릭스의 납품 구조는 한 번에 제작비를 지불(+10% 내외 추가금을 얹어주는)하는 ‘바이아웃(완전 양도)’ 계약 구조예요. OST도 비슷한 구조였을 가능성이 커요. 이 계약은 음악 저작권자의 창작물 저작권 전부를 한 번에 넘기고, 추가 수익(재사용, 흥행 등)이 발생해도 그 수익을 나누지 않는 형식인데요. 플랫폼의 영향력이 점점 커질수록, 수익 분배에 대한 책임을 바라는 목소리도 더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캣츠아이와 <케데헌>은 K-팝을 넘어, 한국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것을 잘 들여다보고 경계를 넘어 잘 그려낸다면 그만큼 또 새롭고 멋진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요.
'대체 K-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계속 되는 중인데요. 이번에 확실해 진 것은 있어요. 이제 K-팝은 한국의 엔터사들이 육성한 한국인으로 구성된 아이돌들이 부르는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이제는 언어도, 인종도, 실존(?)도 넘어선지도 모르겠어요. 언어나 인종으로만 구분한다면, 다양한 층위를 담을 수 없어요. K-팝은 음악적 장르를 넘어 종합적인 문화예술로 확장됐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의 K-팝이 정말 세계인의 K-팝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AI 로 요약하는 오늘의 뉴스레터(by ChatGPT 4o)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협업해 만든 현지화 아이돌 캣츠아이가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며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어요. 이는 K-팝 트레이닝 시스템과 글로벌 음악 인프라가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예요. 열성 팬 위주 수익 구조를 넘어 라이트한 팬덤을 확보하는 것이 투어 중심의 수익 확대에 핵심이라는 점에서, 캣츠아이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었고 하이브는 이 전략을 라틴아메리카로도 확장 중이에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과 한국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로, 한국계 감독과 스태프, 실제 K-팝 안무팀과 아이돌이 참여해 진정성과 완성도를 높였고 전 세계 음원 차트와 넷플릭스 성과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어요. 이제 K-팝은 언어나 인종, 실존 여부까지 넘어서며 진정한 세계인의 K-팝으로 진화하고 있고, 우리가 가진 것을 경계 없이 풀어낸다면 더 새롭고 멋진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줘요.
*뉴스레터 '콘텐츠 카트'로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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