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찬 Jul 22. 2024

치앙마이에 갔다. 그리고 귀국 티켓을 버렸다.

치앙마이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결정했다’가 아니라 ‘결정되었다’고 말한 것은 처음부터 내 의지로 계획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극히 수동적으로, 일정과 장소가 정해진 여행의 ‘기회’가 부여되었다.


운이 좋게도 셀럽과 함께하는 여행에 당첨된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일정은 3박 5일.

그런데 딱히 바쁘지도 않고 마음이 번잡하지도 않은 평온한 이 시기에, 게다가 한창 우기라 덥고 습한 이 계절에, 마음을 쉬이며 여유를 찾는 한 달 살기 성지로 유명한 태국 치앙마이라니. 그것도 3박 5일.

‘눕티비티 (눕기+액티비티)’를 표방하고 여유 있는 일정으로 진행될 것이라 했지만, 단체여행의 특성상 온전히 내 뜻대로 쉬고 즐기는 것엔 한계가 있을 터였다.

여행이라면 언제든 좋은 나지만, 이 여행을 떠나는 나만의 이유가 필요했다.


왜 떠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떠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내 일상은 지치고 피곤할 만한 작은 요소도 없었다.

그냥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눕고 싶을 때 누웠다가, 먹고 싶을 때 먹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제멋대로인 일상이다.

지금의 나는 결핍이 없고, 그렇기에 더 채워야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설렜다.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니라, 떠나고 싶은 ‘마음’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나를 힘들게 했던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도 떠나고 싶다. 떠나려 하니 설렌다.

나는 평온하고 무탈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런데 새로움을 느끼고 신선한 자극을 받기 위해 떠나는 곳이 ‘치앙마이’라기엔 그곳은 너무 정적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익숙한 집을 떠나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새로울 것이다.

내게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험보다는, 편안하지만 아주 조금의 새로움만이 필요할 뿐이다.


선택되고 짜여져 내게 주어진 치앙마이 여행의 기회.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원하는 마음으로 치앙마이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3박 5일의 일정은 충분했지만 짧았고 아쉬웠다.

셀럽과 대화를 나누고 일행들과 친해지고 서서히 나를 드러내는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었다.

치앙마이의 매력을 다 느꼈나?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설렘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새롭고도 안전한 자극을 원한다.

3박 5일 일정의 마지막 밤을 앞두고, 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 여기 남을래”


나는 결국 귀국행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