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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Jan 09. 2021

길고 긴 데보체의 밤

다수결이 이긴다.

밤이 되면 할 일이 없어 일찍 자니 새벽이면 더 버티지 못하고 저절로 눈이 떠진다. 쿰중마을로 산책을 나섰다. 어제 오후에 흐린 날씨는 다시 개여서 맑은 날이다. 이곳의 날씨는 아침은 맑음이다. 오늘은 캉주마 ~ 푼기뎅가 ~ 텡보체까지 오를 계획이다. 텡보체는 3,860m다. 이제 고소 지역으로 들어왔으니 고소증에 조심해야 한다. 기온도 아침엔 영하의 날씨로 물이 얼고 눈발도 조금 뿌렸다. 오리털 파커를 입고 카트만두 장비점에서 구입한 티베트식 털모자를 쓰고 숙소를 나섰다. 


사마사의 갈림길 안내표지

사마사 갈림길에서 안내표지를 보니 왼쪽 순으로 쿰중, 교쿄리, Ebc 가는 길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그중 쿰중마을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어두컴컴한 길에 움직임이 있다. 앞을 보니 노부부가 느리게 걸어 내려오고 있다. 아직은 여명이 걷히지 않은 어두운 새벽녘인데 어디를 가시는지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를 보따리를 들고 따라가고 있다. 느릿한 걸음걸이로 할아버지를 믿고 따라가는 할머니의 끈끈한 부부애가 애잔 보인다. 한참을 그분들이 사라진 길을 쳐다보았다. 서리까지 내려 추운 길을 새벽녘에 어디 가실까? 부부의 믿음 그리고 부부애를 느끼는 새벽 산책길에서 서울에 있는 아내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런 험한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새벽에 만난 다정한 노부부(좌) 규중마을 가는 길의 마니석(우)

7시 30분에 롯지를 나서 푼기뎅가로 향했다. 캉주마는 아래 동네이자만 해발 3,550m이고 푼기뎅가는 이보다 낮은 3,250m로 내리막길이다. 고산에서 내리막길은 편한지만 내려간 만큼 올라야 하니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우리네 삶도 즐거운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날뛸 일도 아니고 괴로운 일이 있다 해도 낙담할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자체가 고락의 연속이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즐거운 일이 있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괴로울 일이 있다.  정해진 바는 없지만 계속 즐겁거나 계속 괴로울 일은 없다. 그게 이리저리 얽힌 게 우리네 삶이다. 그때그때 일희일비 할 일은 아니고 여여히 살아도 좋겠다. 푼기뎅가에서 텡보체까지 약 600m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고산에서 600m는 하루 높일 수 있는 최고 높이다. 

쿰부 히말라야의 미봉인 아마다블람
눈밭이 있는 푼기뎅기 마을


푼기뎅가에서 출렁다리로 임자콜라(콜라는 네팔어로 강을 뜻함)를 건너려는데 짐을 잔뜩 싣고 올라가는 야크가 출렁다리를 들어섰다. 다리의  초입을 지났는데 건너편 야크 몰이가 깜빡하는 사이에 건너편 야크 떼도 출렁다리로 진입을 했다. 잠깐 사이에 출렁다리 중간에  올라가는 야크 떼와 내려오는 야크 떼가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멈춰 버렸다. 어떻게 하나 지켜보고 있으니 야크 마리 수가 적은 올라가는 아크 몰이꾼이  좁은 출렁다리 위에서 능숙하게 야크를 되돌린다. 그는 4마리의 야크를 몰고 짐까지 싣었지만 상대는 8마리가 되니 양보를 한다. 우선순위는 당연히 출렁다리에 먼저 진입한 순서대로 진행을 하고 늦게 진입을 하면 기다려야 하는데 야크 몰이꾼이 잠시 깜빡한 것이다. 히말라야 산골에도 다수결의 원칙이 통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효율성이 우선한다. 4마리를 되돌리는 게 8마리를 되돌리는 게 쉬운 일이다. 세상의 일은 정답이 없다.


출렁다리 중간에서 마주친 올라가는 야크 떼와 내려오는 야크 떼


텡보체 오름을 앞두고 검문소가 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마지막인 검문소인 이곳은 군복을 입고 총을 멘 군인이 길을 지키고 있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가 팀스와 퍼밋을 검사한다. 장부에 꼼꼼히 통과시간과 인적사항을 적는다. 이곳에는 가끔 실종사고 포스터를 불 수 있다. 분명 이곳으로 을라 갔는데  행방이 묘연한 경우 사진과 함께 사례금을 걸고 '사람을 찾습니다.'란 방이 붙어 있다. 그런 사고가 가끔 일어 난다. 


군인이 지키는 마지막 검문소(좌) 수차로 돌아 가는 마니차(우)

검문소를 지나면 텡보체까지 해발 600m의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포터가 '런치! 런치!' 한다.  시계를 보니 이제 9시를 조금 넘었다. "노 헝그리!"라 하고 천천히 걸었다. 포터들은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을 많이 먹는 것 같다. 우린 밥심으로 걸야 하기에 트레킹 중에는 아침도 든든히 먹는다. 그래야 종일 힘을 쓸 수 있다. 그들과 문화가 다르니 이해가 되긴 한다. 너무 매몰차게 대했나 싶기도 하다.


텡보체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래 봤자 오후 1시다. 간식을 먹고 가면 되고 오르막길에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 걸릴 그런 거리는 아닌 것 같다. 쉬엄쉬엄 주변 풍경을 눈에 담고 사진에 담으며 천천히 걸었다.  점점 설산이 많아지고 기온도 내려간다. 고산으로 가는 길은 편하고 안락한 곳이 아니라 춥고 힘든 고난의 길이다.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으니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씩씩하게 오른다.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비스타리, 비스타리! 힘들면 쉬었다 간다.

텡보체로 드는 일주문(좌) 텡보체의 초르덴(우)
텡보체의 곰파


인내심의 한계가 올 때쯤 텡보체로 들어가는 관문인 일주문이 보인다. 좌우로 작은 마니차가 줄을 지어 있다. 마을 광장에는 티베트식 불탑인 하얀 초르덴이 이방인을 먼저 반긴다. 마을을 둘러싸고 눕체, 로체, 아마다블람, 탐세르크 봉이 어깨를 견주듯 7, 8천 고봉들이 병풍을 친 듯 두르고 있다. 곰파(티베트식 불교 사원)를 중심으로 마을에는 초르텐이 우뚝 솟아 있고 타르쵸와 룽다가 바람에 펄럭인다. 종교와 생활이 하나인 곳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곰파로 들어 가는 일주문(좌) 곰파 내부 법당으로 들거 가는 문(우)

 

옴마니 반메 홈 불경을 적어 놓은 마니석


여기 곰파가 쿰부 에베레스트 지역 전체 통틀어 가장 큰 곰파다. 원래는 700년 된 유서 깊은 곰파였으나 화재로 불타 버리고 1995년에 새로이 지은  것이다. 곰파를 들러 보니 규모에 비해서 스님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올려다본 부처님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이제 3,850m 고산에 올라오니 눈이 쌓여있고 날씨도 쌀쌀하다. 포터가 여기서 자지 말고 데보체까지 가자고 한다. 텡보체에서 데보체까지는 30여분 거리고 고도도 100여 m 내려가니 고소 예방에도 유리하고 거리를 단축하니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데보체 가는 길은 내린 눈이 녹아 길이 질퍽하다. 여기까지는 낮에는 햇살이 비치면 영상의 기온으로 춥지는 않지만 응달에 들어 서면 춥다. 햇살이 강해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자외선이 강하다.


디보체의 비박 탠트
롯지 앞에서 조금만 올라 가면 설산


데보체에 도착하여 롯지에 들어가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다. 짐을 정리고 주변을 둘러보러 나섰다. 금발의 아가씨는 롯지 뒤에 탠트를 친다. 온기 없는 롯지보다 탠트 안이 부럽다. 침낭만 좋다면 야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제 4,000m가 가까우니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여 설국으로 들어와 춥다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 별 할 일도

없고 춥기도 하여 침낭 속에 들어가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난다. 롯지 밖의 바람 소리가 사납다. 내일 아침까지 무료한 시간 죽이기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많은 에베레스 트레킹이다.


야크 떼를 모는 아주머니 마부


평소와 같이 일찍 침낭 안에 들어 가 내일 트레킹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잠을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평소 느끼지 못한 잠자는 중에 숨이 가빠 잠을 깨었다. 앉아서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하니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사라진다. 


이대로 마냥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살포시 잠이 드는가 싶더니 또 가슴 답답함이 느껴진다. 다시 복식 호흡을 하고 나니 안정이 된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맥박을 재어보니 48회 정도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고소증이다. 잠을 잘 때는 내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몸이 숨을 쉬어야 하는데 평소와 같이 호흡을 해도 4,000m 높이에서는 공기증에 산소량이 60%로 줄어드니 평소와 같이 호흡을 해도 산소가 부족해 숨이 가빠지는 것이다. 몸이 호흡을 하여 나에게 필요한 산소를 마시는 게 고소 적응이다. 고소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적응하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지면 앉아서 복식호흡을 하고 누웠다가를 반복하며 아침이 밝아 오기만 기다린다. 디보체의  밤은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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