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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Oct 25. 2022

3년 만에 써 보는 가을의 전설

2022 춘천마라톤

해마다 10월 네 번째 일요일에 열리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를 달림이들은 '가을의 전설'이라 부른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프로야구도 한 해 동안 대회를 치르고 해마다 이맘때면 코리안 시리즈를 열어 우승자를 가리는 축제를 열듯 풀뿌리 마라톤도 한해 중 가장 달리기 좋은 계절 가을에 그동안 여러 대회를 달리고 최고의 기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대회가 춘천마라톤이다.

2022 춘천마라톤 풀코스 완주 메달

코로나로 중지되었던 대회로 3년 만에 열려 가을의 전설을 쓰기 위해 춘천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참가하는 메이저 대회다. 큰 대회가 좋은 이유는 105리 길을 달리면서 끊임없이 같이 달릴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다. 마라톤은 개인 경기지만 함께 달리는 단체 경기이기도 하다.  때로는 조력자로 같이 달리고 때로는 경쟁자로  같이 달린다. 혼자 그 거리를 달린다면 몇 곱절의 힘이 들것이다. 그래서 마라톤은 개인경기 같지만 실상은 단체 경기이기도 하다.

대회 하루 전 날은 완전 휴식을 하고 대회날은 용산역에서 6시 15분에 출발하는 itx 청춘 첫 기차를 타야 대회 출발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어 열차 내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이른 시간인 새벽 5시에 집에서 식사를 하고 경춘선을 탔다. 기차표 예약은 경쟁이 치열해 입석표로 탔지만 출입구 쪽에 감사하게도 간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갔다. 춘천역에서 내려 대회장 가는 길 안내 표시판을 따라 걸으면 절로 대회 분위기에 빠져 들면서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직은 젊은 피를 가진 후배를  만나 그간 달리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최대 관심사인  목표 기록을 물으니 330이란다. 아직은 섭 3은 충분한 몸인데 대회 준비가 늦은 것 같다. 마라톤은 내 의지보다 훈련으로 만들어진 몸이 기록으로 증명해 준다.


출발 전 대회장 분위기


105리 길 춘천마라톤 출발 복장


전마협 부스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 마셔주고 아침을 일찍 먹은 탓에 뱃속이 출출해 계란빵 한 개 사서 먹고  대회 복장을 갈아 입었다. 대회장에서 날씨를 보니 런닝에 솟팬츠 신발은 써코니 엔돌핀 프로 2 카본 신발로 준비했다.  출발 전 워밍업은 공지천 둑방길이 한가하고 장소도 멀지 않아 매년 이용하던 곳이라 이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아침까지 괜찮던 왼다리 오금 쪽에서 미세한 근육통이 느껴진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당황스럽다. 살살 주물러 줘도 그리 호전이 되지 않는다. 천천히 달려주고 꼼꼼히 다리 스트레칭을 해주고 출발선인 공지천교로 이동했다.


가을의 전설이 돌아왔다 2022 춘천마라톤


그간 A그룹에서 출발했지만 세월의 무게에 밀려 이젠 B그룹이다. 중간쯤에 자리 잡고 왼다리가 신경이 쓰여 기다리는 시간에도 스트레칭으로 풀어 주면서 부디 잘 버티어 주기를 바랬다. 9시 정각에 A그룹이 출발하자 B그룹이 출발선으로 이동해서 2분 후에 5, 4, 3, 2, 1로 시작해 출발 총성과 함께 달려간다. 춘천마라톤 코스는 출발과 동시에 작은 오르막을 만난다. 초반이라 다들 힘이 있으니 제각기 자기의 목표를 위해 자기 방식대로 달린다. 이제 시작이다. 내 페이스는 내가 만들어 간다. 언덕을 오르면 잠시 평지길을 달리다가 U천 해 오는 길을 달리면서 반대편 지나오는 면면을 살펴보니 예전엔 대부분 안면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간  세대교체가 되어 낯익은 얼굴이 거의 없다.


5km 송암스포츠 타운 앞을 지나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22:33으로 3년 전과 비교해 나쁘지 않고 최근 기록으로는 좀 빠르다. 의암호까지 내리막 길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여유 있게 달렸다. 8.5km 의암댐을 지날 때쯤 C그룹에서 출발한 섭 3 페이스 메이커를 만났다. 후미그룹에서 서브 3에 도전하는 이들이 당차게 달려간다.

지금부터 춘천댐까지 의암호반을 달린다. 춘천마라톤의 대부분의 주로로 평지와 오름내림이 있다. 10km 지점인 덕두원교를 지나서 오름을 돌아 올라 가면 급수대다. 올해는 코로나로 컵으로 급수를 하지 않고 500ml 병으로 물을 준다. 아쉬운 건  이온음료가 없다는 것이다. 출발 때 기온이 11도로 달리기에는 비교적 더운 기온에는 이온음료가 흡수가 빨라 선호하는 음료인데 생수만 준다.

15km 가는 길에는 삼척에서 오셨다는 분과 함께 했다. 코로나로 3년을 쉬었더니 힘든단다. 꾸준함을 요구하는 마라톤에서 3년의 공백은 긴 시간이다. 그 공백으로 아예 달리기를 접은 분을 많이 본다. 후반을 위해 속도를 내린다 하여 먼저 나가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박사마을 글램핑장을 지난다. 별 볼거리라도 생긴 양 나와서 박수를 쳐준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님도 두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해주신다. 박수를 받으면 보람된 일을 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끝까지 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첫 오르막은 강원애니고등학교 앞에 있다. 출발 때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던 목동 마라톤 3분과 함께 오를 때 쭉 밀고 올라 오니 거리가 벌어진다. 내리막을 달려 내려가니 지인인 100회 마라톤 클럽의 홍석*님이 앞서 간다. 춘천마라톤만 25회 완주하였고 최고 기록은 2시간 44분이고 64년생인데 훈련이 부족했나 보다. 20km를 지나면서 '힘'을 전하고 앞서 나갔다.

신매대교의 하프 지점은 1:36:30에 통과하고 돌아 나올 때는 전국에서 온 마라톤 클럽 응원단이 열렬히 응원을 해 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응원을 받으니 힘이 솟는다. 서상로를 따라 춘천댐으로 가는 길은 긴 오르막 길로 1차 고비길이다. 하프를 지나면 발걸음이 둔해지는 분을 만난다. 그게 오르막이면 더욱 그렇다. 정신력은 지금부터 필요하다. 오르막에서 시간이 밀리는 걸 확인하면서 발걸음이 둔해진 주자를 뒤로 돌려 세우며 28.5km 지점 춘천댐에 올라서면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

반환점을 느끼는 지점이고 30km가 가깝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초반에 앞서간 젊은이들이 힘이 빠져 발걸음이 둔할 때 뒤로 보내며 달리는 맛도 힘이 솟는다.  한낮으로 가면서 기온이 올라 흐르는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땀을 닦으며 달렸다. 가을 대회치 곤 달리기에는 더운 날씨다. 마지막 32km 지점의 오르막을 생각해서 바나나 1개를 집어 들고 조금씩 베어 먹으면서 달렸다. 연식이 되면 글리코겐 저장능력이 떨어져 쉽게 허기를 느낀다. 이럴 때는 먹어 주는 게 상책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달려온 건너편 북한강변의 주자를 보며 힘을 얻는다. 마지막 오르막인 32km 지점을 힘주어 오르니 넓은 대로가 펼쳐진다. 가능한 전체 대로를 보지 말고 시선은 10여 m에 두고 오른쪽 가장자리의 그늘을 이용해 시야를 좁혀 달리면 지루함을 잊을 수 있다. 예전에는 보충대 장병들이 나와서 응원해 주기도 했지만 사라진 지 오래다.

시내로 접어들면 여러 마라톤 클럽에서 나온 서포터스의 함성과 응원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다. 35km를 지나면서 마라톤의 맛을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다.  지금부터 거리는 몸으로 달리는 게 아니고 정신으로 달린다고 한다. 길 가장자리에는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자를 적잖게 만난다.

마라톤은 참으로 정직한 운동이다. 출발선에서부터 달림이에게 있어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달리고 있는 모든 주자에게는 평등하게 주어지는 권리다. 스스로 참가했고 그간 훈련 과정이 그렇듯 결과 또한 스스로 책임지며 한 발씩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달려 얻은 결과도 오롯이 자기 몫이다.

39km를 지나면서 제2소양교를 건넌다. 오른쪽으로 소양강 처녀상을 만난다. 더위에 마지막 급수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을 마시고 남은 물로 머리의 열을 식혀 본다. 마음은 한없이 달려가고 싶은데 오른 다리에 근육이 불쑥 뭉쳐 오려한다. 속도의 끈을 늦춰 줘야 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이다.

앞서 가는 여성주자를 모질게 뒤로 돌려 보낸다. 마라톤은 육체적 고통을 맛보고 극복함으로써 정신적 기쁨을 얻는다.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육체적으로 힘듬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마라톤은 육체적 고통을 정신적 성취감으로 바꾸는 묘한 마법이 숨겨져 있다.

승리의 고지가 저기다. 아낌없이 솟아 붓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3:15:34. 3년의  공백기를 갖고 잘 달렸다. 나의 등을 토닥여 준다.


2022 춘천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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