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는 주로 봄과 가을에 집중해 열린다. 기온은 5 ~ 9도 정도가 적당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시기를 맞춘다. 달리는 주자 입장에서 보면 기록이 잘 나오는 대회를 선호한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자연 오름이 많은 코스는 기록이 잘 나오지 않는다. 춘마는 27km 지점 서상대교에서 춘천댐을 오르는 코스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거기에 비해 Jtbc서울마라톤 대회는 서울 도심을 달리니 코스가 대부분 평탄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을 받을 수 있고 대회장까지 교통이 편리해 많이 선호한다.
2023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 완주 메달
좋은 날을 선점하다 보니 춘마는 매년 10월 넷째 주 일요일에 열리니 Jtbc 서울은 11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열리는데 올해는 먼저 날을 잡고 접수를 하여 두대회중 한 대회만 달리거니 무리해서 두 개 대회를 달리기도 한다. 올해는 욕심을 부려 두대회를 모두 신청했다. 춘마대회 일주일 후에 열리는 대회라 완전한 피로회복은 되지 않았다. 11월이니 춘마 때 보다 더 기온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근 10여도가 높고 거기다 비 예보까지 있는 최악의 조건이다.
도심을 통과하니 교통체증을 고려해 8시 출발이다. 참가 인원수에 비해 물품보관 차량이 적어 늦어 긴 줄을 서야 했다. 일일이 보관짐에다 스티커 붙이고 비가 온다고 펜으로 글씨도 썼다. 그러니 늦어질 수밖에. 물품보관을 끝내니 30분의 여유 밖에 없다. 10km, 풀 참가자가 5만 명? 복잡하고 복잡다.
A그룹은 인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콩나물시루같이 긴 대기 줄을 섰다가 출발이다. 주로가 좁아 출발 총성이 울렸지만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빨리 달리지 못하는 이들이 그룹을 지어 달리니 비집고 나갈 틈이 없다. 대열의 흐름에 따라야지 무리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애시당초 주로가 좁았다. 양화대교 전 5km 구간이 이번대회 유일하게 23분대를 달렸다.
Jtbc서울마라톤은 한강을 3번 건넌다 첫 번째 다리가 양화대교다. 강바람이 불어 제법 시원하지만 이마에는 땀이 많이 흘러 내린다. 더위에 유난히 약하고 소음인 체질이라 땀을 많이 흘리면 체력이 떨어진다. 오늘은 악재가 많은 대회다.
여의도를 가로질러 달릴 때는 여의공원 옆을 지나 두 번째 다리인 마포대교를 건넌다. 아뿔싸! 옆에서 달리던 분의 나이키 카본화를 신은 분의 신발 오른짝의 밑창이 떨어져 버렸다. 신발의 높낮이가 다르니 절뚝거리면 달린다. 완주는 불가능할 것 같다. 정말 운수 없는 날이다. 신발도 오래된 건 꼼꼼히 확인하고 대회장에 나와야겠다. 거기다 320 페메는 초반 속도를 높여 앞서 가려한다. 바로 앞에 310 페메 풍선이 보이는데 속도는 제대로 지키는지 싶다.
초반 오르막은 아현동 애오개다. 은근한 오르막이지만 밀고 오르니 그리 밀리지 않았다. 앞으로 310 페메 풍선을 보면서 달렸다. 직장 동호회 후배가 아현 고가다리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응원한다더니 어떻게 알아보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 준다. 손을 들어 답해주고 충정로를 지나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페메들도 자기 성향이 있더라. 이븐 페이스로 가는 게 아니고 전반을 빨리 끌고 후반에 속도를 맞추는 성향이 많은데 가장 좋은 페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븐 페이스로 달리는 게 모범답안이다. 시청 광장을 지나면 3월의 서울동마 코스와 동일한 코스를 군자교까지 달린다. 마라톤 대회가 아니면 이 거리를 팬츠만 입고 자유롭게 달릴 수는 있는 기회는 없다. 달림이의 큰 영광이고 선물이다.
동대문을 지나고 신설동 로터리 20km 지점을 지날 때까지 거리표지판과 손목에 찬 가민시계알람 거리표시가 달라 매 km당 속도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하프 통과 시간이 지난주 춘마보다 근 50여 초가 늦은 1시간 35분 27초다. 이렇게 달렸다간 춘마기록 갱신이 문제가 아니라 싱글도 힘들겠다. 마라톤은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 더 빨리 달리기는 힘든다. 날씨가 덥다고 편히 달린 결과다. 이젠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속도를 높여서 420분대로 높였다. 마침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체온을 식혀 주어 덥지 않아 좋고 땀을 적게 흘려 좋다. 흘린 땀으로 시장기가 찾아와 에너지 보충으로 바나나도 먹고 파워겔도 챙겨 먹었다. 확실히 땀을 많이 흘리니 체력 소모가 컸다. 군자교 오르막 길에서 앞서 가는 310 페메를 목표로 속도를 높였다. 잡힐 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페페가 야속하다.
아차산터널의 오르막 길을 빠르게 치고 오르니 바로 앞에 310 페메가 내달린다. 천호대교를 지나면서 다리 위에서 페메 그룹에 합류했다가 여유가 있어 앞서 달렸다. 길동사거리를 지나고 둔촌사거리로 가면서 잠시 페이스를 늦추었더니 금세 페메가 따라붙는다. 잡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달렸다. 쫓기어 본 사람은 안다. 그 피 말리는 달리기의 시간을. 이제는 정신력의 싸움이다. 페메는 그만한 속도를 달릴 수 있는 기량이 있는 사람이 기에 얕잡아 볼 수 없다. 그 페이스 보다 빨리 달리는 길 밖에 없다.
제한시간 5시간을 앞두고 피니쉬 라인을 향해 달리는 주자들
37km를 지나면서 몸이 무거워져 오고 수서 Ic를 지날 때는 오르막을 감아 오른다.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U턴 코스도 있다. 이제부터 길은 인간이 달리는 게 아니고 신이 달리는 길이다. 체력은 고갈되고 다리는 휘청거려도 달려야 한다. 연신 나타나는 작은 오르막은 없던 힘을 더 빼앗아 간다. 가장 힘든 탄천 1교를 힘겹게 건너니 40km 표지판이 나타난다. 시계를 확인하니 10여분의 여유가 있어 싱글은 안정권이다.
최소 춘마보다는 1초라도 앞서 보자 하고 남은 거리에 집중을 해 본다. 그런데 의례 주 경기장에 골인할 걸로 생각했는데 잠살경기장 앞 야구장 입구에 결승선 아치가 보인다. 벌써 다 왔어? 그런 줄 알았으면 미리 좀 힘써 뛸걸 그랬다. 크게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피니쉬 라인인을 통과하니 3:08:54. 지난주 춘마보다 꼴랑 2초 단축이다.
가을답지 않은 높은 기온에 우중주에 하프전반을 집중해 달리지 못해 후반에 힘든 레이스를 했다. 그런 악조건에도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으니 잘했다고 나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달림이들의 훈련의 결과는 기록증의 숫자로 보상을 받는다. 그 숫자가 주는 의미는 어느 위로의 말보다 감사의 말보다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