탠트 메고 뚜르 드 몽블랑 동그라미 그리기
TMB길을 걸으며 생활 습관이 새나라 어린이 같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 나는 버릇이 생겼다.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게 되니 자연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침 5시만 되면 산새들의 지저귐과 멀리서 들려오는 젖소들의 워낭소리가 눈을 뜨게 한다.
트레커들은 대부분 아침형 인간으로 하루를 일찍 시작을 한다. 바로 앞에 탠트를 친 스코틀랜드 아가씨들도 아침 출발 준비로 분주하다. 서둘러 탠트를 철거하더니 수프 하나만 끓이고 둘러앉아 빵으로 아침식사가 금방 끝난다. 우리네 식사와 달리 참 간편하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반찬이 있어야 하는 우리는 아침식사 시간은 길다.
어제 오전에 빗방울을 뿌리더니 오늘은 비 온 뒤 하늘이 더 맑다고 완전 쾌청이다. 모떼 산장으로 가는 길은 처음엔 아스팔트 길을 걷게 되는데 아침 기온은 쌀쌀해 긴 팔을 입을 정도가 된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20여분을 아스팔트 길을 걷다가 Tmb안내 표시판이 하천길로 글레이셔마을로 안내를 한다. TMB길은 아스팔트 길을 오래 걷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누가 알프스에서 아스팔트 길을 걷길 좋아할까. 세이뉴 고개로 오르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하다. 6월의 알프스는 어디를 가나 야생화가 가득한 천상화원이다.
숲길을 따라 오르면 왼편으로 작은 댐이 보이는데 호수의 물빛 색깔이 어쩌면 그리도 고운지 금방 잉크를 풀어놓은 듯하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그대로 흘러 드니 그리도 맑고 깨끗하다.
건너편에는 어제 크로와 본 옴므 산장 전에 포젯 고개를 넘어오면 만나는 치즈공장이 보인다. 예전에 목장 관리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고 뒤로는 트레킹 길이 스위치백으로 갈지자(之)를 그리며 이어져 있다. 어제 짙은 안개로 이 길을 걷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쉬운데 레 사삐유 야생화 초원도 좋았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 '행복을 손에 들고 보질 못하고 행복은 어디에 있어?'라고 찾아다니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나를 봐야겠다.
메종 산장에서 어젯밤을 보내고 세이뉴 고개를 오르는 트레커들로 줄줄이 이어지는데 좀 뚱뚱한 아주머니도 힘이 좋아 잘 걷는다. 걷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6월 하순이라고 하지만 알프스의 봄은 이리도 늦게 찾아오는지 고갯마루에서 내려 부는 바람은 눈바람이라 겨울바람 마냥 차갑게만 파고든다.
세이뉴 고개 오르막길은 그래도 견딜 만한 게 완만한 경사로 천천히 고도를 높이기에 걷기는 좋았지만 연신 불어오는 바람에 바람막이 옷을 입어도 쌀쌀하게 느껴진다. 메고 있는 배낭 무게도 만만하지 않아 한 무리의 트레커들이 쉬고 있는 바람이 막히는 공터에는 앞서 가던 트레커들이 쉬면서 간식을 먹고 있기에 옆에서 쉬는데 그들에게 ' 어디서 왔냐요?' 하니 "US"라고 짧게 대답해 준다. 미국에서도 뚜르 드 몽블랑을 좋아한단다.
뚜르 드 몽블랑 길은 고개를 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세이뉴 고개에 올라서면 프랑스 땅이 끝나고 이탈리아 땅으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TMB길은 그랬다. 고개를 오를 때는 힘들게 오르지만 고갯마루에 서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니 동공이 열리면서 "와!"를 연발하게 된다.
이제 이탈리아 땅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국경선에 철책이나 초병은커녕 금을 그러 놓은 국경선도 없다. 굴뚝 모양의 사각형 돌기둥 아래 프랑스는 "F" 이탈리야 쪽은 "I"를 이나 셜로 페인트로 써 놓은 것 그게 전부다.
그래도 이곳은 나폴레옹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할 때 말을 타고 넘었던 길인데 그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몽블랑을 뒤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고개다.
알프스 초원을 걷다 보면 '알퐁소 도테'의 "별"이라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프로방스의 루 브롱 산 아래 양치기 목동은 주인집 아가씨인 스테파네트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게도 연모하고 있는 주인집 아가씨가 하인들이 집안 사정으로 산에 올라올 수 없게 되자 대신 식량을 전해 주러 산에 올라왔다가 돌아가는 도중에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목동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으로 돌아온다.
목동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에도 밤이 찾아오자 모닥불 앞에서 아가씨에게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야기해 주는데 별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졸다가 목동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버렸다. 밤하늘의 가장 아름다운 별이 길을 잃고 떨어져 자기에게 왔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잠에 깨어날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았다는 이야기.
알
세이뉴 고개에서 보이는 몽블랑의 뒷모습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하여 구름이 걸려 있지 않아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순간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하여 카메라에 담아둔다. 트레킹은 함께 걸으면서 만드는 '삶의 여백'이다.
유쾌한 이탈리아 아줌마가 멀리서 온 동양인이라고 몽블랑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주면서 산 이름도 설명해 준다.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려에 감사함을 전했다. 오를 때는 힘들었지만 내리막 길은 참 편히 걸을 수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오르막을 만나면 힘들지만 내리막 길은 편한다. 늘 오르막 길만 있는 게 아니고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다는 신호로 생각하고 조금만 더 버티고 올라 보자. 신나는 내리막 길이 있을게다. 그 고비가 고개가 아닐까.
내려가는 길에 작은 집이 있는데 이탈리아의 대피소 같은 건물이다. 남쪽 양지쪽은 햇살이 좋아 따뜻해서 쉬기 좋다. 아침에 탠트 플라이가 결로현상으로 젖어 있는걸 그냥 말아 왔는데 금방 마를 것 같아 햇볕에 널어 두니 바람과 햇살에 금방 마른다. 반갑게도 양지쪽 벽면에 wifi 비번이 적혀 있다. 'founma2017'이다. 어제 하루 종일 통신이 되지 않아 갑갑했는데 잘 터진다. 속도도 생각보다 빨랐다. 이곳을 지나는 이들을 위한 이탈리야인의 배려가 감사하다.
넉넉히 쉬었다가 베니 계곡으로 내려섰다.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 걷기 좋은 구간이다. 초원 끝의 언덕에는 엘리자베타 산장이 있다. 성모님을 모신 작은 집을 지나면 에비앙 생수가 콸콸 솟아지는 급수대가 있다. 언제 허물어진 집인지는 몰라도 벽돌로 지은 집이 폐허가 된 채 방치되고 있다.
엘리자베타 산장에서 점심식사는 옥수수가루로 수프를 만들고 거기에 쇠고기 살코기를 얹은 것도 좋았고 치즈를 녹여 만든 것도 맛있었다. 맥주로 갈증을 달래고 속을 든든히 채우니 알프스의 강한 햇살에 피곤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이곳 세프 솜씨가 훌륭하다.
직선으로 쭉 뻗은 신장로 같은 길을 걸어 꼼발 호수(Lac Combal)를 지나고 꼼발 산장 전 삼거리 길을 만난다. 여기서 넓은 신장로로 곧장 가면 쿠르마에유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고 Tmb는 오른쪽 산길로 올라야 한다.
은근한 오름길에는 족제비과의 일종인 마멋이 연신 얼굴을 내밀었다가 인기척이 들리면 사리 지곤 한다. 알프스의 자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폐가가 된 집 처마 아래 그늘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였다. 오늘은 메종빌 가기 전 야생화 능선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눈 녹은 물이 콸콸 흘러 내려와 식수 걱정은 덜어도 되겠다. 한라산 백록담을 닮은 호수 옆에 탠트를 쳤다. 시간도 이르고 야생화가 지천으로 펼쳐져 있어 카메라에 담아 보니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알프스의 6월은 초원 전부가 야생화로 뒤 덮인 천상화원이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로 녹색 초원은 끝없이 펼쳐지고 그 초원엔 온갖 들꽃들이 피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