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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Sep 08. 2023

나의 눈, 나의 친구 M에게

M 안녕, 어떻게 지냈어?

우리 못 만난 지 한참 되었다. 바빴다는 핑계만큼 상투적인 게 없는데. 내게 여유가 없었어란 말이 핑계가 아닌 사실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어져. 얼마 전 혜령이와 둘이서 여름휴가를 다녀왔어.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날씬하고 순발력 있는 H를 데리고 떠났지. 그러나 한 손엔 양산 또는 캐리어, 다른 한 손에 혜령이 손, 어깨엔 백팩. 결국 H와도 첫날 하루만 함께하고 돌아올 때까지 호텔에 혼자 둘 수밖에 없었어. 네 생각이 나더라. 느리고 은근히 까다로운 너와 화장실 안에도 같이 들어갈 정도로 둘이서 꼭 붙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난 말이 없는 네가 편했어. 내가 밥 먹는 모습도 가만히 지켜봐 주었고 혼자 책을 읽을 땐 하염없이 차창을 바라보고 있어주었지. 너는 일대일로 만나야 더 진가가 드러났어. 여럿이 있을 때면 나는 너로 인해 걸음이 느려졌잖아. 앞서 걷던 사람들이 내가 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보며 기다리는 걸 느끼면 조급해져서 너의 손을 잡고 후다닥 달려가야 했거든.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너와 나의 눈에 다 저장해버리겠다고 느릿느릿, 두리번두리번 걷는 게 좋았어. 단짝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뜨겁게 함께 하다 가을바람이 불면 풀벌레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여름 매미 같아. 다음해엔 또 다른 매미가 찾아오곤 했지. 그렇게 매미 소리와 함께 그리움이 밀려오면 앨범을 펼쳤어. 너와 함께 한 추억이 내 앨범에 가득 해서 그것을 열어볼 때면 '너를 보러가야 하는데'하고 중얼거리곤 했어.

 

지저분한 파리에서 며칠 보내고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갈 때 기억나? 겨울임에도 푸른 벌판에 띄엄띄엄 서 있던 통나무집들. 바다일지도 몰라, 혼자 짐작하게 하던 드넓은 호수. 난 어렸을 때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몇 번이나 읽을 정도로 좋아 했거든. 늙은 전나무 꼭대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공기 전체가 향긋한 꽃향기로 가득 찰만큼 꽃들과 꿀풀들로 가득한 전원풍경. 염소 두 마리를 기르고, 건초가 깔린 하늘이 보이는 다락방에서의 소박한 생활. 이런 것들이야말로 나도 모르게 여린 내 심장에 새겨진 이상향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할아버지가 커다란 치즈 덩어리를 쇠 포크에 찍어 황금빛으로 구워준 음식은 어떤 맛일까. 몽유병에 걸린 하이디를 다시 살린 스위스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상상하며, 동경해왔던 하이디의 나라에 기차를 타고 입성하는 기분이 남달랐던 걸 너도 알았을까?

 

그러나 2월의 스위스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지. 해발 800m가 넘는 고원인 라우테브루넨 역에 내리자 살아오며 본 눈의 총량보다 더 많은 눈을 한꺼번에 본 나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어. 그러나 아름다움의 취기는 금방 가셨어. 역 앞에서 상점까지 이어지는 메인 도로에만 눈이 치워져 있었거든. 한 걸음 떼어 놓는 것조차 버거운 눈길을 10분이나 걸을 생각을 하니 굳이 이 깊은 골짜기에 잠자리를 정한 것이 후회스러워졌어. 한 벌의 신과 단벌의 외투. 수행자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15일 일정의 짐치곤 너무나 간소하다던 그 배낭마저 버리고 싶어지는 눈길이었어. 민박집 앞에 도착하니 녹초가 되어버렸지. 짐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고 나니 눈이 좀 뜨이더라. 나무로 만든 이층 민박집은 기대했던 대로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했어.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어. 10여분을 걸어 다시 상점가가 모여 있는 역까지 가기가 싫어 배고픔을 참고 침대에 누워있었어. 해는 저물어가고 이층방의 침실은 푹신하고 나무로 지어진 실내는 아늑했어. 그 때 발견했지. 한쪽 테이블에 마련된 조용한 환영인사. 한국식 반찬 세 가지와 밥, 믹스 커피 한 봉과 사과 한 알. 수행자를 맞이한 소박한 밥상이 반갑더라. 밥을 깨끗이 비우고 ‘심심할 때 보세요.’란 메모가 붙은 허영만의 만화 '꼴'을 누워서 보다가 잠이 들었던가. 아침에 일어나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어. 몇 천 년 전 빙하가 지나간 자리. 천 미터가 넘는 석회암 절벽 사이로 나무와 집이 눈을 갑옷과 투구처럼 두르고 늠름하게 서 있더라. 하이디를 그리움이란 병으로 몸살을 앓게 했던 건 이런 풍경이었을까. 나도 이 그림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그리워하리란 예감이 들었어. 나는 흥분해서 너를 찾았어. 이 장면을 어서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나와 함께, 아니 나보다 더 오래 이 감동을 네가 기억해주었음 했던 거야.


눈 덮인 지붕 위의 조그마한 굴뚝에서 피오나오던 하얀 연기, 거대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 미니 블록처럼 놓여있던 집들, 소복이 쌓인 눈을 스윽 밀어내고 빨간 벤치에 앉아보았던 일, 쇠 포크로 찍은 퐁듀가 품고 있던 요상한 맛에 저절로 지어진 쓴웃음. 어떤 방문자도 없었던 산장에서의 사흘 밤. 비자발적인 묵언 수행의 날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작가는 '*여전히 빛 속에서 더 이상 같은 빛이 아님을 느낀다. 우리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사이-시간을 체험한다. 한 사람이 두 번 다시 같은 빛 속에 있지 못하리라.'고 노래하듯 말했지. 맞아, 그래, 지금 조용히 우는 매미는 작년의 그 매미가 아니지. 허나 '*마치 빗방울이 폭발한 듯 새빨간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 아래서 우리는 한 알의 사과를 동시에 양쪽에서 깨'물었지. 너와 내가 하나의 눈이 되어 조심스레 담아낸 사진들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처럼 잃어버린 순간들을 되살려 놓았어. 우연처럼, 마법처럼 무의지적인 감각에 의해 되살아난 시간들을 나는 의지의 대명사인 글쓰기를 통해 그 빛 속에 머물 나만의 숲을 만들어.

 

 

ps. 좋은 곳에 함께 가자. 오십견, 개나 물어가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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