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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Sep 15. 2023

글감의 빈곤

<4천 원 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를 읽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글은 쓰고 싶을 수도 있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끌어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닐까? 그러나 내가 한동안 정말 그런 마음이었기에 이 말이 거짓은 아니다. 할 말은 없지만 글쓰기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p55>

위의 말처럼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삼삼한 기분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이 축나야 오는 희열도 조금 알고 있기에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책은 계속 읽었지만 얼어붙은 바다를 탕탕 깨어부수는 도끼가 아니라 잠깐 나를 각성시키는 박카스 정도에 불과했다.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예전에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을 때 언급된 책들을 몇 권이나 샀었다. 책장에 꽂아둔지 제법 되었지만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원래 사 둔 책들이 다 그런 운명이 되기 십상이지만 문학이 아니다 보니 또 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현생문제에 무심한 탓이었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4천 원 인생>. 2010년, 이미 출간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책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주제', 노동에 대한 책이었다. 그러나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나'란 의문으로 기획된 책이었다. 한겨레 21의 기자 네 명이 한 달간 똑같이 먹고 자며 노동을 경험해 보기로 했고 집을 옮기고 위장취업을 해가며 쓴 글이었다. 구조와 제도 문제로 다루지 않았고 대안이 제시하는 글도 아니었다. 그들의 삶을 최대한 섬세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물론 각 챕터마다 그들에게 보낸 기자의 편지와 취재 후기가 덧붙었다. 그들의 노동 현장과 인생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계치에 다달을 때 즈음이면 기자의 편지와 후기가 눈물로 나를 정화시겼다.


언젠가 엄마가 동네 마트 할인 행사 전단지를 들고 장을 보러 가신 일이 있다. 그러나 전단지 내용과 다르게 없는 물건이 많기에 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정말 솔직하게 "행사용으로 만든 전단이에요. 손님들 많이 오게 하려고요. 똑같이 팔지는 않아요"라 하더라고 했다. 일부러 왔는데 너무 하다는 기색에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소비자를 우롱할 수 있지, 좀 따지러 가야겠어.' 하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직원이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싶다. 도대체 무엇이 죄송했을까.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주인을 대신해 뭇사람들에게 사과까지 해야 하다니. 

'멘트를 친다'는 문장에는 판촉 점원이 감당해야 할 모든 기교가 담겨 있다. 멘트는 성대에서 술술 나오지 않는다. 가슴 아래 뜨거운 것을 쳐올려내야 한다. <4천 원 인생-마트에선 매일 지기만 한다 p89>

누군가의 가슴 아래 뜨거운 것, 그것을 내가 받고자 했음이었다. 


식당 아줌마, 마트에서 일하는 청년, 불법외국인 노동자, 9번 기계 공장 노동자.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많이 떠올랐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불평했던 나, 만들어진 식빵을 슬라이스 하는 기계에 반복해서 넣었던 일본 빵 공장에서의 아르바이트, 비자 연장이 만기 되어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던 친구들, 하루 일하고 며칠 앓아누웠던 딸기 포장 공장에서의 일 등. 만사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대인배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었다. 사물과 인물과 자연과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들어서였다. 모르기에, 외면했기에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52>' 

내가 달라져야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리 피곤해도 손은 저절로 펜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의 가난, 대안이 보이지 않는 20대 노동에 대한 글을 읽고 현아에게 편지를 썼다. 함께 읽는 것밖에, 그러자고 권하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리 크게 있을까. 잠깐 소비자가 되는 순간에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얼굴 붉히지 않기, 이런 다짐만 일기장에 적어 넣을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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