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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Oct 23. 2024

오늘도 지나갈 거야

일기의 조각들

“올 초부터 지금까지 본인 잘했던 것, 사소한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얼마 전 회사에서 올해 인사고과를 일찍 시작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에 관한 추측성 소문은 덤이다. 회사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빠르다. 고요한 사무실에 타닥타닥 다급한 키보드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메신저에 불이 났다. 알람도 바쁘다.


월요일, 나는 하루 더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 주말부터 나는 완전한 휴식 모드에 돌입했고 의식적으로 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차단했다. 읽지 않은 카톡도 그대로 두었다. 과거에는 꽤나 예민하고 꼼꼼해서 신경 쓰는 기술을 타고난 사람 같았는데 요즘에는 무신경도 노력하면 되는 거구나 싶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북한산 아래 단풍 맛집이라는 카페에 갔다. 단풍 시즌이라 그런지 카페에는 월요일 오전이라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보고 미리 찜해두었던 테라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월요일에 노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었구나!


큰 창으로 선명한 햇살이 가득 내려오는 자리에 앉아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꺼내 읽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이제 나는 이 불안을 넘어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


사람은 마음에도 사계절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처럼 생기가 넘치다가도 어느 날은 표정을 잃고, 또 웅크리고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든다. 사람은 이런 날들을 양분 삼아 자라는 나무 같다. 그러니 지금은 이 계절이 잘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사람의 본성은 자신에게 좋은 곳으로 향하기 마련이고, 나란 인간도 언제나 그래왔으니, 지금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2023.11.1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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