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영화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을 시청하고
사는 동안 풍파를 만나 지칠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되뇌는 몇 가지 문장이 있다. 지금 맞닥뜨린 장면은 그간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다, 지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 어차피 바꾸지 못할 운명이니 순응하자 등등.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이 실존하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통찰을 그대로 안고 돌아가지 못하는 한 같은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 원한 걸 얻더라도 앞서 살아온 삶을 버려야 하는 점을 알게 되는 순간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거란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에 대해 어지간히 상상해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내 삶, 묵묵하지만 때론 발버둥 치며 앞만 보고 살아오던 중 최근 위로받는 기회를 얻었다. 집에 설치한 IPTV를 통해 초인(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을 시청한 것이 계기였다.
이번 영화는 미국 콘텐츠 업체인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가 만든 여러 만화 속 히어로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을 소재로 제작됐다. 주인공인 피터 파커가 유전자 조작된 거미에 물린 후 몸속에서 만들어진 거미줄을 쏘고 벽을 타며 괴력을 소유하게 된 뒤 악당과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블 코믹스는 그간 저작권, 배우 특징 등 요소들을 고려해 배우를 새롭게 발탁해 스파이더맨 역할을 맡겼다. 이번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을 맡은 배우는 역대 세 번째로 영입된 톰 홀랜드(Tom Holland)다. 스파이더맨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중에선 여덟 번째고, 홀랜드가 출연한 것으론 세 번째다.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그간 방영된 영화들 사이에서 특별한 점으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은 홀랜드에 앞서 스파이더맨을 연기했던 배우 두 명이 함께 출연하는 점이다.
1대 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 2대 앤드류 가필드(Andrew Garfield) 등 두 배우는 3대 스파이더맨의 동료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다. 세 스파이더맨은 다른 차원에서 함께 넘어온 악당들을 교정(矯正)하고 세상의 평화를 되찾는다.
여러 우주가 존재하는 가상 개념 ‘평행우주’를 소재로, 같은 이름의 히어로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이야기가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이 뿐 아니라 이번 영화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세 스파이더맨이 서로 닮은 점이다.
세 스파이더맨은 키, 나이, 생김새 등이 서로 다르지만 초능력뿐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닮은 지닌 인물로 각자 그려졌다. 과학과 수학 등에 뛰어나고 강한 정의감을 갖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씨가 넘쳐 악당에 대한 연민까지 느낀다.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거울을 보고 얘기하는 듯하다.
생각과 태도가 같으면 삶도 같아지지 않을까
더 재밌는 점은 이들 모두 정의를 실현하던 중 누군가를 잃었고 이로 인해 슬픔을 떨쳐내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지녀온 신념을 실천하며 사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부분이다. 같은 성격을 가진 세 사람이 거의 같은 양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영화가 끝난 뒤, 만약 평행우주가 실재한다면 나와 이름이나 성격 또는 태도 등이 거의 동일한 사람(도플갱어)이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을 것이란 상상이 떠올랐다.
성격과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이 얽혀 한 가지 삶을 이끌어낸다면, 같은 성격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 같은 삶의 양상을 짜 맞춰갈 것이란 생각이다.
이 우주와 저 우주에서 각각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가 비슷하다면, 지금의 나처럼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큰 변화 없이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고독과 고뇌, 고됨 등이 실은 또 다른 차원의 나들도 똑같이 갖고 있을 것이란 상상이 외로움을 한층 덜어줬다.
한편 이 같은 상상을 지금의 나에게만 적용해본 결과, 나는 어떤 선택을 했든 미미한 차이를 보일 뿐 정해진 운명 속에서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지금 삶 속에서 마주친 어려움들은 나의 선택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결국 피할 수 없는 나만의 것들인 셈이다. 일탈적 선택마저 내 운명의 큰 틀 안에서 발생한 요소 중 하나다.
지금 하루하루 너무 힘겹게 살고 있고 앞으로 무언가 바뀌길 원하는 사람에겐 이런 결론이 절망적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나도 지금의 내 삶이 그런대로 버틸만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개똥철학을 뱉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나와 타인을 위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삶을 살면 어떨까. 그럴 땐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운명을 ‘받아주는’ 사람으로 자신을 치켜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수십 번을 고쳐 죽어도 그 안에서 비슷한 기쁨과 절망을 찾고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터다. 중요한 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수정해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사는 동안 종종 위로받고 싶을 땐 ‘있는 셈 치고’ 다른 차원의 나를 응원해보자. 그들도 아마 나를 응원하고 있을 게다. 우리에겐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