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주연
사람은 누구나 겉모습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을 갖고 있는 법이다. 어떤 이는 두 모습의 간극이 커서 타인으로 하여금 종종 편견을 갖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표정이나 행동가짐에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포커페이스에 서툴기도 한다. 전 애프터스쿨 멤버이자 배우인 이주연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전자에 속했다.
그녀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애프터스쿨의 노래를 즐겨 듣거나 그녀의 출연작들을 깊이 감상해본 적이 없었다. 인터뷰 기사에도 썼듯이 내겐 '아직 읽지 않은 책' 같은 배우였다. 그래서인진 몰라도 내 머릿속에는 다소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항상 그려졌다. 실제로 만나 대화 나누며 받은 인상도 큰 차이가 없었다. 서구적인 외모가 비현실적으로 예뻤지만 시원시원하게 뻗은 눈꼬리와 입꼬리에서 언뜻언뜻 카리스마 비슷한 쌀쌀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데다가 웃음도 많아 이야기를 나눌수록 온화한 표정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완전히 다시 보게 된 시점은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한 선물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면 열심히 지내온 데 대한 보람도 느껴지도 앞으로 많은 일을 해나갈 힘도 생긴다'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얼마 전에는 향수를 산 것 같던데, 자신을 위해 또 선물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슬프거나 감동적이어서 감정이 동요될만한 소재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저를 위한 선물보다는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아빠가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시는데 차를 바꿔드리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보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요염한 자태로 춤추던 전직 걸그룹 멤버로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으로도, 늘 감각적인 패션스타일로 관심 받는 인기 인플루언서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늘 감사하고 미안하지만 쑥스러워 표현하진 못하고 이렇게 부모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눈시울만 적시는 여느 평범한 딸일 뿐이었다. '평소에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고 있으면 공식적인 인터뷰 자리에서도 마음을 숨기지 못할까.' 그 깊은 효심을 보고 나자 내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멋있는 차, 귀여운 차 좋아해서 스무살 생일 지나자마자 면허 따고 운전도 빨리 했어요. 근데 아빠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셔서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시는데 그걸 바꿔 드리고 싶어요. 제가 핸드폰에 아빠를 '과잉보호'라고 저장해놨을 만큼 아빠는 저를 애지중지 하세요. 예전에는 공연 때마다 불쑥불쑥 오셨었고 팬사인회 할 때도 보면 아빠가 저쪽, 팬들 뒤에 서계시곤 하셨어요. 팬들도 막 챙기고 있으시고요. 저한테는 아빠가 정말 감사한 존재에요."
나는 아빠와 엄마를 떠올릴 때 어떤 장면을 그릴 수 있을까. 모든 일상을 공유하며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는, 참 좋아하는 부모님이지만 그녀처럼 감사함을 느꼈던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처리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있으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님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르는 여린 마음의 그녀의 앞날도,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눈물은 커녕 감동적인 에피소드 하나 떠올리기 힘든 무심한 딸내미의 앞날도 열성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