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협군 Dec 22. 2020

호빵이 뭐길래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날씨가 무척 추워졌다. 뜨끈하고 달달한 호빵을 안 먹을 수가 없다.


“나도 호빵 먹고 싶었는데...”


라는 외마디와 함께 아내가 눈물을 쏟는다. 올해 음식을 앞에 두고 감정에 복받친 아내의 모습을 여러 번 본다. 벌써 몇 번 겪은 일이지만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한 편으로는 내가 왜 호빵을 사왔을까 스스로를 자책해 본다.


아빠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비단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첫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이 아니겠구나 생각한다. 아이라는 존재가 엄마의 뱃속에서 존재하기 시작부터, 아니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부모가 되는 준비를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까지 거쳐 온 이 모든 순간들이, 지금 아내의 뱃속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는 아이의 부모가 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심쿵이’가 아내의 몸속에서 지낸지도 벌써 27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평소에 먹지도 않던 햄버거, 달달한 케익과 초콜렛을 맛있게 먹길래 찾을 때마다 사다주었다. 이제 막 엄마의 몸속에서 자리 잡았을 뿐인데, 출산 직전까지 살이 많이 찌면 어떻게 하나 미리 걱정을 하였다. 앞으로 자신이, 그리고 우리 부부가 겪어야 할 일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된다는 게, 그리고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무지했을까? 그저 입덧이라면 밥을 먹다가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만 생각했다. 차라리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 그랬다면 조금은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임신 초기가 지난 후 지금까지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심지어 죽만 먹어도 체하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앉아서 잠을 자기도 했다. 소화제를 먹어야 하나, 손을 따봐야 하나 여러 방법을 알아봤지만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를 자신의 뱃속에 보호하고 있는 임산부라는 신분은, 그동안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하던 이전의 몸이 아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뜨끈한 호빵, 혼자 먹어서 미안해 여보...


호빵 이전에도 몇 번이나 음식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처음에는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저 힘들어서 울었겠거니 하고 생각 없이 이유를 물었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일이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난다는 것이었다.


“정말 음식 때문에 울고 있는 거야?”


라고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예민해 몇 번이나 꾸중(!?)을 들었는데, 아마 이야기를 꺼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아내의 입덧이 심해진 후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 전 몇 번이고 생각을 곱씹는다. 나름 고민하고 꺼낸 이야기가 “괜찮아. 나중에 심쿵이 낳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을 꺼냈다. 사실 지금도 이 상황에서 더 좋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봐도 답이 떠오르진 않는다.


“오빠가 내 마음을 알아?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은 음식들을 먹기만 해도 체하고, 먹고 싶은건 많은데 아무 것도 못 먹는 심정을 알아?”


최대한 혼나지 않으려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역시나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차라리 이렇게 나에게 실컷 화라도 내고 풀렸으면 좋으련만, 계속해서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전날 아내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음에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다시 호빵을 꺼내 먹었다. 최근 들어 잠도 푹 자지 못했던 아내가 간만에 꿀잠을 자고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도 호빵 하나 데워줘”


비록 다 먹지는 못하고 반만 먹었지만 아내는 간만에 행복한 표정으로 호빵을 호호 불어 먹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맛이어서 더 먹고 싶었다는 아내의 이야기, 전날의 서글픔을 잊어버리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이도 지금 엄마 뱃속에서 아련한 호빵의 달달함을 느끼고 있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그저 누구나 즐겨 먹는 겨울 간식일 뿐인데, 아내에게는 호빵이 전해주는 따뜻함과 달달함이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무게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아내의 눈물은 정말 호빵이 먹고 싶어 밀려온 서글픔이 아닌, 뱃속에서 심쿵이를 키우며 참고 견뎌야 했던 엄마의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진짜 그냥 호빵이 먹고 싶어서 울었던 거면 어떻게 하지?)


90여일 뒤 세상에 태어나 우리와 함께 있는 심쿵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때 심쿵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아내에게 따뜻한 호빵을 하나 전해주고 싶다. 고맙다는 이야기도 함께.


27주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엄마 호빵 많이 사주렴 심쿵아!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처음이라, 시작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