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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Aug 06. 2018

에베레스트(6)
실종자를 찾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5월 18일

베이스캠프


오전 2시정도 됐을까? 

도로지가 내 텐트를 찾아와 실종됐던 경기연맹 대원이 방금 제2캠프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파악된 상황은 대략 이렇다.

로체 등반 후 하산 코스는 보통 제4캠프로, 더 진행하면 제3캠프까지 내려와 머물고 베이스캠프로 오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 대원은 무의식적으로 걷다가 제2캠프까지 내려왔단다.

참으로 대단한 체력이기도 하지만, 캄캄한 밤에 홀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움직여 제2캠프까지 왔던 과정은 분명 구사일생의 기로였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기호와 경호도 제3캠프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소증세도 무리가 없다니 다행이다.


상황도 정리됐으니, 이젠 내가 오를 에베레스트를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그러고보니 오늘밤은 우리 대원들이 베이스캠프, 제3캠프, 제4캠프에  뿔뿔이 흩어져 자는 날이네.


날이 밝았다.

제4캠프 인호는 새벽에 출발, 제3캠프에 있는 기호와 경호를 만난 모양이다.

모두 오늘 베이스캠프로 내려온다.

모처럼 우리 대원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다. 

두 개의 봉우리를 목표로 삼고 각 대원 몸 상태를 기준으로 2개 조로 나누어 운행을 하니 서로 같이 할 날이 별로 없었다.

오늘 아침은 안개가 유독 짙다. 

몬순 영향으로 해가 뜨면 안개는 바로 사라진다. 

나는 에베레스트 등정일을 22일로 결정했다.


늦은 오후 인호, 기호, 경호 그리고 셰르파 밍마, 제2캠프 쿡 상게까지 모두 베이스캠프로 왔다. 

인호는 등정 피로감이 역력하지만 성공했다는 행복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당연하다.

축하를 위해 고기와 맥주로 간단한 파티를 했다.

나는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불안감도 있었다.

아무튼 식당텐트 분위기가 참 좋다.

대원들이 더 즐기게 하고 내 텐트로 돌아왔다.

홀로 등반장비를 점검하고 날씨를 체크했다.


'부디 나에게도 안전한 등정이 허락되길!'  

몬순으로 뿌연 새벽길. 지금 가는 이 길로 무사히 되돌아 오길...


5월 19일

베이스캠프 → 제2캠프


간단한 아침식사 후 용변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시원치 않다. 

체중의 무게를 줄이고 또 등반 중 용변의 불편함을 해결해야 한다. 

등반 중 가장 귀찮고 힘든 일이 용변이라니, 참 웃긴 일이다.

오늘도 시원치 않으니 며칠 더부룩한 불편을 감수하며 그냥 올라가야겠다.

 

장비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니 마지막 전장에 임하는 장수처럼 사뭇 엄숙해진다. 

대원들과 악수를 하고 라마제단에 쌀을 뿌리고 배향하며 라마신에게 다짐했다.


“꼭 안전한 성공을 기원합니다!” 


매번 했던 기도, 오늘은 간절함이 더욱 크다. 

여정을 준비하며 향을 피운다


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셰르파 도로지, 제2캠프 쿡 상게, 이렇게 셋이서 출발한다. 


정오가 되기 전 가뿐하게 제2캠프에 도착하니 날씨도 너무나 좋다. 

날씨가 좋다고 등반하기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럴 땐 오히려 한낮 운행이 힘들어진다.

강한 태양빛으로 땀범벅이 되고 녹아내린 눈밭엔 푹푹 빠지면 죽을 맛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 제1캠프와 제2캠프 사이 설원평원을 지나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

 

요즘 날씨면 눈사태도 잦아진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리는 눈사태, 텐트 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는 낙석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을 때린다.


"잘 피해 다녀야지."

제2캠프로 진입하며 생각한다. 왜 시작했지? 공허함과 적막감이 이유없이 좋다.


오늘 오후는 음악을 들으며 가장 편안한 마음을 찾아야겠다.

도로지도 여유가 있는 모습.

이미 제4캠프 8,000m까지 고소적응이 된 상태인데다 셰르파족의 선천적 능력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도로지는 우리팀에 오기 직전 영국팀과 아마다블람을 등정하고 왔으니 더더욱 적응이 잘 된 상태일 것이다.

착함 마음과 프로의 기질, 믿음이 생기는 좋은 친구다. 

눈치 빠른 도로지는 외국팀 동료 셰르파에게 에베레스트 기상자료를 전달받아 도움을 준다.

우리가 등반할 내일부터 5일간 큰 날씨 변화는 없지만, 정상부에는 가끔 제트기류가 있어 강풍이 분다고 한다.  


5월 20일

제2캠프 → 제3캠프


아침에 상게가 만든 작은 라마제단에 향을 피우고 기도했다.

상게의 배웅을 받으며 제3캠프로 출발하는 나


해가 중천에 오르니 복사열때문에 속옷까지 젓었다.

가벼운 내복만 입었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씻지 못하니 얼마나 꿉꿉한지 모르겠다.

지금 가장 원하는 건 따뜻한 샤워와 시원한 생맥주, 그리고 치킨.

귀국하면 맘껏 후회없이 먹을 것이다. 

원정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일상에선 아무것도 아닌데...


설벽에 붙어 주마질을 하는 동안 강풍이 쉴새 없이  몸을 떄린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스노우샤워.

잠시 운행을 중지하길 여러번.

몬순이 오는 기간은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찾아온다.

제3캠프로 가는 길

이 때 멍하게 넋 놓으면 안 된다.

빠른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제3캠프에 도착했다. 

라면으로 허기를 면하기로 했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 것도 고역이다. 

매운 맛이 끌리지만, 짓물러 갈라지고 헤진 입술에 라면국물이 닿는 순간 전달되는 쓰라린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이 순간 식욕은 어쩔 수 없나보다.


고소때문에 등반 내내 입술에 짓무른 딱쟁이를 때어내고,  그러면 피가 나고, 그러면 약을 바르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데날리(매킨리) 원정 때 경미선배에게 받은 효과 좋다는 연고(아시클로버)를 연신 바르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제3캠프에서 보면 경사지 아래로 제2캠프와 저 멀리 베이스캠프가 아득하다.

참 높이도 올라왔구나. 

이곳에서 하늘과 맞닿은 느낌으로 코를 스치는 바람을 마시면 생각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인간계와 신계의 구분선이 여기 어디쯤인가?

경사지에 매달리듯 자리잡은 제3캠프. 한순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환경이다


도로지는 가능하면 아이젠을 벗지 말라는 내게 거듭 당부한다.

이틀 전 이곳에서 유럽팀 대원이 소변을 보려고 아이젠  없이 텐트 밖으로 나갔다가 추락했다고...   

(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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