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슨 산 / 빈슨 매시프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는 남극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남극점에서 1,000km 떨어진 에스워스산맥 중앙부에 있다.
남극 탐험과 조사에 있어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미국 상원의원 칼 빈슨(Carl Vinson) 이름과 세 개의 봉우리로 연결된 정상이라는 뜻의 매시프(massif, 연봉)를 합쳐 빈슨 매시프라고 불렀다.
그러나 2006년 빈슨 매시프에서 빈슨 산(Mount Vinson)이 분리되며 남극대륙 최고봉이 됐다.
빈슨 산 높이는 1970년 첫 조사 때 5,140m로 측정됐다가 1980년 조사 때는 4,897m로, 2004년 GPS 측정 결과 4,892m로 확인되었다.
1935년 미국 탐험가 링컨 엘스워스(Lincoln Ellsworth)에 의해 발견됐다.
1966년 미국 과학재단과 해군의 남극탐험 프로그램, 미국 알파인클럽과 내셔널지오그래픽 남극탐험 계획에 따라 과학자 10명가 등반가로 구성된 탐험대가 첫 등정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의 한국남극관측탐험대 허욱, 이찬영, 허정식 대원이 세계에서 6번째로 올랐다.
전형적인 남극의 풍경이다. 해가지지 않는 곳
그곳은 순백이었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다.
2년을 준비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집을 나서는 전날까지도 마음 한켠에 ‘포기’가 웅크리고 있었다.
남극 최고봉 빈슨산.
높이는 4,892m에 불과하지만 위치 자체가 극한의 지대.
사람들은 빈슨산 밑까지 가는 것 자체도 탐험이라고 말한다.
빈슨산은 흔히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로 불렸다.
매시프는(Massif)는 ‘산괴’라는 뜻인데, 지형학적으로 산맥이 없는 고립된 형태의 한 무더기 산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2006년 미국 주도로 빈슨 매시프의 최고봉을 빈슨산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리됐다.
포기의 기로
빈슨산을 가기 위한 준비과정은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보다도 힘들었다.
2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했다.
우선 원정비용이 문제였다.
1인 기준 5,000만 원!
“이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나….”
높은 비용 때문에 원정대를 꾸리는 것은 진작 포기했다.
직장상조회에서 돈을 빌리고 여기저기 후원을 요청했지만 2,500만 원이나 부족했다.
당초 2010년 11월 30일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하지만 출발일이 3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원정을 계속 추진해야 하나 결정하지 못했다.
풀리지 않은 숙제를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내 모습이 비참했다.
이런 문제를 함께 상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참으로 외로웠다.
미칠 듯 답답함에 포장마차에서 나 홀로 술이나 한잔 하려고 했는데, 한잔이 두 잔 되더니 새벽까지 죽도록 퍼마셨다. 그러다 문득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 기회는 이제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
소주 몇 병이 가져온 심사숙고 결과 원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사실, 아무리 돌려 생각해도 그곳에 가는 것은 숙명이었다.
“포기할거면 애초에 추진도 하지 말았어야지!”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소주와 함께 하루를 보냈으니 남은 기간은 이틀.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급전을 요청했다.
하지만 출발 전날까지도 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완벽하게 준비하려다 오히려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남극은 나의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고, 가장 깊은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경이로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한편으론 혼자 가야 한다는 적막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 무렵 정승권등산학교에서 남극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승권 형님과 박종관 씨, 이강목 씨가 나와 같은 시기에 남극을 같이 간다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동행이지만 혼자였던 나에겐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구의 끝으로 간다!"
남원 또래 친구 모임 "우림회" 에서 조촐한 출정식.
예정대로 11월 30일 여정을 시작했다.
길은 멀고, 절차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인천공항에서 미국 LA를 거쳐 페루 리마까지 가서, 다시 칠레 산티에고를 경유해 지구의 남쪽 땅끝인 푼타아레나스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남극 페트리어트힐로 이동했다가 어니언글레셔캠프를 거쳐 빈슨매시프 베이스캠프로 간다.
긴 시간의 비행과 대기.
땅 끝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니 검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과 우박이 달갑지 않은 듯 맞이한다.
공항 앞 카트가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이 난리도 아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도 차장 밖 상태는 사뭇 심각해 보인다.
그런데 이정도가 대수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택시기사를 보고 다소 안심이 됐다.
푼타아레나스 시내로 접어드니 잘 정비된 도로와 향나무가로수, 이국적인 집들이 인상적이다.
지구의 끝 푼타아레나스, 서울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걸 보니 멀리 왔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남극관리기구(ANI) 직원이 찾아와 개인장비를 점검했다.
매우 꼼꼼했다.
“고글이 없네요.”
나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곰곰이 생각했는데 도무지 행방을 모르겠다.
가뜩이나 부족한 자금사정에 새로 고글을 사자니 마음이 쓰렸다.
오후에 푼타아레나스 거리를 돌아다녔다.
큰 도시는 아니지만 지구 끝자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관광객이 꽤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푼타아레나스 중앙 마젤란공원, 누군가에게 침략의 기쁨과 침탈의 아픔이 교차 하는 상징이다.
저녁식사는 이곳까지 같이 온 남극원정대와 함께 했다.
아사도라 불리는 갈비, 비스토라 불리는 럼주를 마시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다음날 남극관리기구사무실에서 일정에 관한 브리핑이 열렸다.
남극관리기구(ANI)에서 등반가 사전교육
페트리어트힐까지 가는 비행기는 예정된 출발시각이 없다.
기상여건이 워낙 불규칙해 상태만 좋으면 바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며칠을 대기할지도 모른 채 언제든 바로 출발한다는 자세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문득 군 시절 5분대기조 추억이 떠올랐다.
운이 좋았다.
저녁에 연락이 왔다.
내일 새벽 기상여건이 좋아 바로 출발한단다.
드디어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