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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Aug 25. 2020

미혼이지만 출산 휴가 전문가입니다.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 25 스페인의 출산 휴가

스페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하면서도 웃긴 경험이 바로 출산 휴가이다. 물론 나는 아직 미혼이고 애도 없을뿐더러 출산 휴가를 가져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 출산 휴가와 관련해서 인사팀 다음으로 전문적(?)으로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 임신했어!


처음 다녔던 회사가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이다 보니 팀장도, 그리고 직원도 모두가 격이 없고 친구처럼 지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두 번째 팀장과는 회사를 떠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마음이 맞는 친구 겸 상사였다. 초 여름의 어느 날 팀장이 시간 되면 회사 근처 공원에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서 점심을 피크닉처럼 즐기기 좋은 날이라서 각자의 도시락을 가지고 공원으로 향했다.


팀장: 나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나: 응? 뭔데? 말해~

팀장: 그게... 너 곧 이모가 될 거야! 나 임신했어~!

나: 어?? Madre Mia! 축하해!! 정말 축하해!!

팀장: 회사 사람들 중에는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야. 놀랐지? 계획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blablabla

나: 완전 축하해! 몇 개월이야? 내 조카는 언제 태어나?


공원 밴치에서 점심을 함께하던 중 팀장이 자기의 임신 사실을 나한테 알렸다. 이때만 해도 주변 친구들의 임신 소식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은 것이 처음이라서 신기하고 내 친구에게 새 가족이 생긴다는 것에 정말 기뻤다.

(이게 내가 겪게 될 임신 소식의 첫 시작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그렇게 우리 팀장은 나에게 팀장 권한 대행이라는 일을 남긴 채 출산 휴가를 떠났다. 난 그때만 해도 그게 나와 관련된 사람의 첫 출산 휴가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경사스러운 일은 겹쳐서 오는가 보다.


팀장이 그렇게 출산 휴가를 가고 예전보다는 바쁘지만 다이내믹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팀의 직원 중 한 명이 해맑은 얼굴로 잠시 쉬면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시간 맞는 직원들끼리 아침 11시쯤 커피를 사러 같이 나갔기에 별생각 없이 커피를 사러 나가는데 그 동료가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네가 팀장 대행이니까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자기의 임신 사실을 밝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라서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나도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팀장 대행이었고 임신의 전 과정을 본 것은 출산 휴가를 간 내 전 팀장이 전부였었다. 그녀는 입덧도 별로 없었고, 간혹 약간 피곤해 하기는 했지만 출산 전 마지막 달까지 근무를 잘하고 출산 휴가를 갔었다. 그래서 뭐 동료가 임신을 했지만 그게 회사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개념이 없었다. 그저 단순히 좋은 일은 몰아서 오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임신 소식을 전하고 입덧도 없이 회사 생활을 잘하던 그 친구가 어느 날 아침 급하게 전화가 왔다. 유산기가 있어서 급하게 병원에 입원을 했고, 주치의의 의견으로는 출산까지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기에 병가를 내야 되니 인사팀에 좀 알려달라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유산기라는 말에 놀라서 알겠다고 했다.


예전에 "아프면 쉬어야 하는 거야 일하는 게 아니라"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페인은 병가 시스템이 참 잘되어 있다. 회사에서도 병가를 눈치 보면서 써야 하지도 않고... 이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인데 스페인에서는 임신을 했을 경우에도 태아에게 약간의 위험 징후라도 보일 경우에는 주치의의 판단 하에 출산 휴가가 아닌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위의 친구는 약간의 위험이 아니라 큰 위험이라서 약간 앞당긴 출산 예정일까지 유산을 막기 위해 병원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입원해 있었다.)


설마 너... 너도??


위의 동료가 갑작스럽게 병가를 내고 쉬게 되면서 대체 인력을 빨리 구할 수 없어서(업의 특성상 단기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쉬운 직종이 아니기도 했다.) 팀원들 간의 업무량 조정을 통해서 저 동료의 핵심 업무를 배분했었다. 저 친구의 출산 휴가로 인해서 업무량이 조금 더 늘어난 것은 있지만 다른 유럽과 남미팀 직원들까지 힘을 합쳐서 내가 속한 아시아 팀을 도와주면서 팀원들의 업무량이 크게 늘지는 않았었다.


다만 이 어려운 시기와 병가를 악용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병명으로 병가를 낸 직원이 있어서 한 순간 팀에 위기가 오기는 했지만... 그건 임신한 직원의 탓이 아니니까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말 스페인의 복지 시스템을 너무 빠삭하게 알고 악용한 저 직원만 생각하면 아직도 혈압이 오른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물론 인사팀마저도 혀를 차게 만든 그 길고도 기가 막힌 스토리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도 한 번 풀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팀장 대행직은 여러 암초는 있지만 그럭저럭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직원이 면담을 신청했다.


직원: 시간 될 때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나: 그래. 점심 식사 후에 어때?

직원: 좋아

(점심 식사 후 회의 실로 들어가며)

나: 무슨 일이야? 설마 너도 임신한 거야? ㅎㅎㅎ(사실 이때만 해도 난 업무량이 많아서 그에 대한 컴플레인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정말 순수한 농담으로 임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직원:... 어! 그게 애를 가지려고 몇 년 전부터 많이 노력을 했었는데... 안되다가 이번에 정말 극적으로 임신에 성공했어. 어쩌고 저쩌고...

(솔직히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한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어.. 너.. 너도? ㅎㅎㅎ 축하해!! 오래 원했는데 임신이 돼서 정말 잘됐다!!

직원: 지금 팀 사정에 인원이 부족하지만 난 이제 임신 초기고 뭐 아직 출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ㅎㅎ 난 막달까지 일하다가 출산휴가 갈 거야~


어쩌면 말로는 축하를 했었지만 당황스러운 마음과 걱정이 내 얼굴에 표가 났을 수도 있다.(솔직히 좋게 말해 다이내믹한 회사생활이었지 인원이 3명이나 줄어든 팀을 이끌어 가는 것은 매 순간이 도전이고 위기였었기에...) 그래서인지 그 직원은 오히려 자신은 튼튼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며 나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당황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는 생각과 미안한 마음에 나도 괜찮다고,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뭐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가서 쉬라고 하며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게 어디 사람 마음처럼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이던가... 튼튼하다고 했던 그 직원은 과도한 입덧으로 일명 Reposo(휴식, 안정)을 일정 기간 취해야 했고, 그래서 짧은 병가와 단축 근무, 재택근무를 번갈아 가면서 했어야 했다. 아예 쉬어야 하는 병가가 아니라 잠시 쉬는 거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왜 내게 이렇게 한꺼번에 이런 시련이 오는 거냐고 해야 할지... 참.. 그래도 정말 고맙게도 그 친구는 출산 한 달 전까지는 버텨(?) 줘서 그 친구의 출산 휴가 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었다.


내가 혹시 삼신인 거야?


이렇게 내 주변 가까운 동료 3명의 임신과 출산 휴가를 경험하고 나니 유독 내 주변에서만 임신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스쳐 지나갔다. 물론 한창 출산할 나이 때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같은 나이 때의 다른 팀 직원들은 이렇게까지 임신이 한꺼번에 닥치지는 않았으니까... 이때 우리 부서장은 내가 말을 걸면 불안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합 10명도 안 되는 우리 팀 내에서 임신 3명에 병가 1명 그리고 곧 해고될 일을 너무 못하는 인턴 1인까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게 우리 팀에서 나와 같이 일하던 3명이 연달아 임신을 하고 좀 잠잠해진 후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즈음해서 우리 팀에서 또 2명이 동시에 임신을 알려왔다. 그뿐만 아니라 옮긴 회사에서도 일을 시작한 첫 주에 내 상사가 자기 임신했다고 나에게 알렸다. 그래서 그때 나는 임신하고 싶으면 날아 같이 일하자고 우스겟 소리로 말하고 다녔다.


'이 건 뭐.. 내가 임신의 기운을 몰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내 주변에서만 이렇게 임신이 잘 되는 건지ㅎㅎㅎ 혹시 내가 전생에 삼신이었나?'


옮긴 회사의 팀장은 첫 임신이라고 하길래 그동안 나의 임신한 동료들과의 경험을 주욱 이야기해주면서 스페인에서의 출산 휴가 시스템과 임신 중 누릴 수 있는 해택들을 나열해 주었다. 한국인이 스페인 사람에게 스페인 출산 휴가와 관련된 설명을 해 주는 아이러니라니....




이렇게 연달아 닥친 3명의 임신과 출산 휴가로 인해 나는 애도 없고, 미혼이면서, 한국에서도 여기서도 출산 휴가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휴가에 대해 반 전문가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도 경험이고 지식이니 좋은 것을 배웠다고 좋아해야 하는 건가... ㅎㅎㅎ


대충 법적으로 정해진 스페인의 출산 휴가 기간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출산 휴가 16주 + 모유 수유 휴가 15일(평일 기준)로 약 4달 반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출산 휴가 16주 중 첫 6주는 의무 사용기간이라서 출산 후 바로 복귀할 수는 없다.
1년에 쉴 수 있는 휴가를 모아서 출산 휴가 이후에 같이 쓰면서 출산 휴가를 연장할 수도 있다.
첫 출산이 아니라 둘째 출산일 경우에는 매 출산마다 2주씩 출산 휴가가 늘어난다.(아마도 출산 장려 프로그램의 일환이지 않을까?)
막 취업한 경우가 아니라 일정한 기간 일하면서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면 (나이별로 세금을 내야 하는 기간이 다르다.) 법정 출산 휴가 4개월 동안은 기본급의 100%에 해당하는 급여가 세금도 떼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회사가 세금을 부담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외에도 아이와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면 무급으로 최대 2년까지 출산 휴가를 연장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로 복귀 후에도 아이가 9개월이 될 때까지는 매일 1시간씩 수유 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물론 이건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잘 없어서 정확하지 않다.)
임신 기간 전에도 태아에게 약간의 위협이라도 있을 경우 주치의 소견 하에 일반 병가? 산전 병가를 신청할 수 있고, 병가까지는 아니지만 하루 이틀간의 안정을 자유롭게 취할 수 있다.
임신 기간 동안의 정기 검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산모 수업? (일종의 산모 교실 같은 엄마가 되는 기초 교육이다.) 등등은 회사에 미리 알린 후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며 회사는 이 시간을 업무 시간에서 차감해 줘야 한다.
그리고 덤으로 2018년까지는 스페인에서 아빠의 출산 휴가는 4주였지만 2019년에는 8주, 2020년에는 10주, 그리고 내년부터는 엄마와 동일하게 16주가 될 거라고 한다. 아빠도 같은 부모니까...(물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이기에 크게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면서 산모와 아기를 함께 돌볼 수 있다.)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면 스페인은 참 임신을 장려하는 나라이고 임신부를 배려하는 나라처럼 느껴진다.(지금의 한국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국의 내 지인 중 한 명은 과도한 입덧으로 병가를 내고 싶지만 그게 불가능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만 했었다..) 물론 이 느낌은 비교 대상에 따라서 달라진다. 왜냐하면 다른 유럽 국가 혹은 복지가 잘된 국가와 비교하면 스페인의 출산 휴가는 그저 정말 기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은 모르지만 영국인가 호주인가에서 일하던 동료 중 하나는 유급 출산 휴가를 1년인가 간다고 해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이 있지만 대충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스페인의 출산 휴가는 위와 같은 특징들이 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스페인에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된다면 나는 출산 휴가 하나는 정말 잘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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