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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Sep 08. 2018

아프면 쉬어야 하는 거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03 병가

혼자 타향살이를 해서인지 몰라도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감기 몸살로 호되게 아프다. 한국에서는 아파도, 슬퍼도, 힘들어도 회사라는 곳은 꼭 가야 하는 곳이었고, 병원은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다녀와야 하는 곳이었다. (물론... 이건 약 10년 전에 필자가 경험한 것이니 지금은 많이 바뀌었으리라 믿는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스페인의 병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스페인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4년 정도 놀다가 일을 시작해서인지 감기가 걸렸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습, 아파도 회사는 가야 하는 곳이라는 것과 회사생활을 새롭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아프다고 하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로 갔다. 그런데 출근과 동시에 열이 나는 내 얼굴을 본 상사의 말이 생각 외였다. 


팀장: 너 괜찮니? 열나는 것 같은데?

나: 어... 감기가 걸린 거 같아. 그런데 괜찮아.

감기 몸살이라고는 하지만 초기였고 독감이 아니라 보통의 감기였다. 충분히 일할 수 있었다. (한국인 기준)


팀장: 괜찮다고? 아닌 것 같은데 아프면 쉬어야 하는 거야. 버티고 일하는 게 아니고,

나: 괜찮아. 내가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있어.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아마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도 일이 생겨.. 그리고 내가 안 하면 누군가는 피해를 봐…’ 였던 것 같다.


팀장: 오늘 아니라 내일 해도 돼. 그러니 집에 가서 쉬고 다 나으면 다시 출근해. 

나: 어? 괜찮은데... 

‘왜 이렇게 집에 못 보내서 안달이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재채기가 나왔고 팀장 왈,


팀장: 이건 널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남은 팀원들을 위해서이기도 해. 그러니 집에 가서 쉬고 완전히 나으면 다시 사무실로 나와. 

나: ...?...


이건 무슨 말? 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내 일을 해야 할 텐데.. 왜 다른 팀원들을 위한 거라는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 감기는 전염성이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도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집에서 쉬라는 거였다. 절반은 나를 위한 그리고 절반은 다른 이들을 위한 충고와 배려였던 것이다.


‘이건 뭐지’라는 찜찜함이 있었지만 쉬라니까 쉬어야지.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다음 날까지 이틀 연속을  병가로 쉬었다. (그다음 날에도 아프면 쉬어도 된다는 팀장의 문자가 와 있었다.) 너무 과한 배려에 솔직히 좀 불안했지만 뭐 눈치 주기보다는 과한 배려를 해 주었고, 아픈 건 사실이니까 쉬었다. 


병가? 진단서? 휴식?

나중에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스페인의 병가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나니 왜 그때 우리 팀의 팀장이 그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3일 이하로 아플 때는 회사 재량으로 진단서(Justificante de médico)가 없이도 병가로 쉴 수 있다. 
그리고 3일 초과부터는 주치의가 발행한 병가 진단서 (Justificante de baja)를 회사 인사팀으로 전달하면 주치의가 권한 날짜까지 유급 병가를 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팀장 권한 대한으로 근무할 때 팀원 중 한 명은 감기, 눈병, 근육 파열 그리고 최후에는 공황 장애를 이유로 꽤 자주 회사 재량의 병가, 그리고 공식적인 유급 병가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페인의 이 좋은 근로자 복지가 잘못 악용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 에피소드로 세세히 적어보겠다.)


문. 화. 충. 격.

노동법과 기준은 종이에 적힌 것일 뿐 준수하지 않던 것을 너무 많이 봐 왔던 나로서는 신선한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들의 방법이 건전하게만 사용된다면  훨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아픈 사람이 나와서 일을 한다고 100프로의 생산성을 낼 수 없을 것이고, 일하면서 쉰다면 회복하는데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까지 걸릴 텐데 그동안 그 사람의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병에 걸리면 또 다른 노동력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니 아픈 사람은 애초에 의사의 처방을 받고 집에서 편히 쉰 다음에 100프로 회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직원에게도 회사에게도 윈윈인 것이다. 이것이 선순환이고 노동자와 회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선순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생상선, 효율성 향상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그 누구도 아플 때 병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고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도 않았고, 병가를  쓰는 사람들도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사용하는 문화가 잘 정립되어 있었다. 또한 팀장이 권유하기 전에 알아서 병가를 다들 잘 신청한다.


쭈뼛거리면서 병가 쓰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필자와 같은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뿐이었다. 물론 필자도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이제 무엇이 더 이득인지,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아프면 병가를 신청해서 쉬고 100프로 낫고 나서 회사로 다시 출근을 한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스페인의 복지를 100프로 누릴 수 있는데 잘 아프지 않다…)


일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놀랐던 것은 산전 병가였다. 필자는 아직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없지만 필자의 팀에서만 적어도 3명이 출산 휴가와 산전 병가를 사용했기에 이 부분을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안다. 스페인은 법적으로 16주 간의 유급 출산 휴가가 있다. 그리고 15일간의 모유 수유 휴가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과 휴가를 합치면 약 5개월을 유급으로 쉴 수 있다. 물론 무급은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고 말이다. 


임산부와 태아는 절대 안정!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 이외에도 산전에, 입덧, 혹은 허리 통증, 등등 임신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경우, 태아와 산모에게 무리를 줄 수 있는 경우에는, 아주 쉽게 산전 병가 (일반적인 병가지만 예민한 임산부이기에 더 쉽게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한 다리 건너 아는 스페인 지인은 임신 5개월로 접어들었을 때 경미한 허리 통증이 있었고 병원을 가니 주치의가 바로 병가를 줬다고 한다. 임산부는 무리하면 안 된다면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극심한 입덧으로 병가를 내고 싶었지만 상사와 주변의 눈치로 퇴사를 해야 했던 필자의 한국 지인이 생각나서 마음이 참 씁쓸했다. 말뿐인 출산 장려정책이 아닌 스페인처럼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대로 자리 잡은 출산 장려 정책이 한국에도 어서 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스페인의 병가 이야기를 하다가 출산 장려 정책까지 흘러갔는데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오면 스페인의 병가는 남녀노소, 내국인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를 막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복지 제도이며, 건전하게 사용했을 때 근로자와 회사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아주 멋진 복지 제도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언젠가는 이 좋은 제도가 고작 종이에 적힌 법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한국에게도 정착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글을 마친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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