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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Oct 12. 2018

스페인에서 나는 나이를 잊고 산다.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10 나이는 숫자일 뿐

스페인에 오고 나서부터 나는 때마다, 철마다 내 나이를 상기시키는 우리 부모님과의 통화가 아니라면 거의 내 나이를 잊고 산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내가 몇 살인지 묻지도 않고,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의 나이 이야기를 할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생년월일과 나이를 적어야 할까?


작년이었나?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공공기관 채용 시에 나이 제한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었다고 들었다. 이곳 스페인에도 동일한 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선 이력서에 생년월일과 나이를 거의(?) 적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처음 스페인에서 직장을 찾던 시기에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력서 폼을 수정해서 내 이력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이와 생년월일을 당연하다는 듯 적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인 마인드가 훨씬 강했었으니까...


그때가 갓 서른이 된 시기였기에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내 나이는 절대 적은 편은 아니었다. 첫 직장이 아니라는 걸 변명처럼 내세울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그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지원했다면 인터뷰에서 들을 수도 있는 나이 관련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준비했었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이 직무에 새롭게 지원한 이유가 있나요?”

“ 첫 직장 퇴사 후 3년이라는 쉬는 기간이 있는데 무엇을 했나요?”

“실례가 안된다면 결혼 유무를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결혼 계획은 있나요?”


하지만 세 번에 걸친 면접에서 내가 예상했던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예 나이 혹은 가족관계와 관련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가 나에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직무 관련 경험과 경력이었고, 그에 대해 상세히 알기를 원했을 뿐, 직무 또는 직장생활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은 요즘 말로 1도 없었다.


그때는 좀 얼떨떨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다.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 걸맞은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의 나이, 결혼 여부, 가족관계가 그 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 말이다. 결혼을 했다고, 나이가 많다고 하루 8시간 근무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 그대로 일의 성과는 지원자가 가진 능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기에 능력을 최우선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팀에 공석이 생겨서 여러 번의 면접을 해야 했던 내 경험에 기반해서 말하자면 내가 받은 그 어느 이력서에도 지원자의 나이와 결혼 여부가 표시된 것은 없었다. 이들에겐 이력서에 생년월일, 나이를 기재하고 안 하고는 고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냥 기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일 뿐.


나이가 직장 상사 혹은 직원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보통 스페인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22~23살이다. 혹은 더 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1년짜리 대학원이 많기 때문에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도 나이에는 별 차이는 없다. 그에 반해 내가 인턴을 지원할 때 나는 서른이었다.(그것도 만 나이로...) 당연히 내 동료나 상사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경력직으로 입사에 나이가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정말 극소수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난 인턴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나이를 정확히는 몰랐다. 그저 얼굴을 보고 나보다 적겠구나, 많겠구나, 비슷하겠구나라고 짐작했을 뿐. 지금은 그때보다는 좀 더 알고 있지만, 그들의 나이를 물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생사 이야기하다가 나온 부분으로 대략의 나이를 짐작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들도 내 나이에 대해 모른다. 서로 묻지 않으니까. 가끔 나보다 한참 어린애가 친근함의 표시로 “Mi niña”라고 할 때가 있다.(스페인어로 "미 니냐"는 내 애기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그게 사랑을 담은 친근함의 표시하는 걸 안다. 그리고 많은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은 동안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어 보인다는 데 싫어할 사람 있을까? 그러니 진짜 자기보다 어리게 생각했다 해도 바로잡을 생각은 없다. 주어진 복을 걷어찰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업무적인 의사소통을 할 때 나이에 맞게 존칭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그냥 모두 이름을 부른다), 나이가 그 사람을 일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대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나이를 묻지 않는다. 지금 일하는 팀에도 나이가 나보다 많을 수도 있는 몇몇이 있지만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그냥 서로에게 상사와 동료 혹은 부하직원이라기보다는 모두가 동등한 회사의 직원이고,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인식이 강해서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이로 인해 직장 동료들과 불편했던 경우라던가 혹은 나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로의 나이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술자리에서, 혹은 생일파티같이 사적으로 이야기할 때이다. 그마저도 ‘내가 서른이라니 너무 시간이 빨리 가’, 혹은 ‘난 서른이 되면 xx를 꼭 하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자진해서 말할 때뿐이다. 그렇게 나이를 아는 경우는 있어도 처음 통성명을 할 때 몇 살이세요?를 물어서 아는 경우는 없다.

 



이는 직장뿐만 아니라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 친구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이곳 친구 중에는 내 동생보다도 어린 친구도, 그리고 우리 엄마뻘인 친구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친구는 나이를 이유로 나를 어리게 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나이가 어린 친구에게서 인생을 배울 때도 많다. 그저 우린 친구고, 동등한 사람일 뿐이기에 나이 상관없이 친구로서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스페인 유학 혹은 스페인 취업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이 때문에 조급해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한 살 더 많고 적고는 크게 문제가 안된다고. 이 곳에는 어떤 나이 대에 꼭 해야 하는 일 같은 것들이 없기 때문에 정말 하고 싶다면 지금 당신의 나이가 가장 좋은 나이니까 걱정 말고 도전해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by. 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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