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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daCoreana Nov 06. 2018

나는 다양한 나라 동료들과 복권계를 한다.

스페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기 #14 복권계 모임

‘계 모임’이라고 하면 지극히 한국적인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한국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 곳 스페인에서도 계모임 비슷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을 모아서 몰아주는 개념의 계가 아니라 연말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복권계 모임이다.


스페인의 대표 복권 - 크리스마스 복권(Lotería de Navidad) 


스페인에는 크리스마스 복권이라는 것이 있다. 1장당 20유로이고 12월 22일 날 추첨을 한다. 1등에게 1인당 약 수억여원이 돌아가는 복권으로 금액은 다른 여타의 복권들과 비교해서 많지 않지만 많은 사람에게 해택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복권의 가장 큰 특징은 친구들끼리, 술집 단골들, 회사 동료들, 마을 사람들끼리 함께 정해진 한 번호의 복권을 산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스페인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각종 바에 우리 지역의 복권 번호, 우리 바의 복권 번호라고 붙여 놓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몇 년 전에는 한 마을 전체가 같은 번호를 샀고 그 복권이 1등에 당첨돼서 그 마을에서 복권을 산 모든 사람들이 1인당 5억씩 받은 경우도 있었고, 나도 2년 전에 회사에서 같이 산 복권으로 100유로가 당첨된 적이 있었다. 회사 사람 모두가 한 번호를 샀으니 그때 2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모두 각 100유로씩 받았었다.


9월에서 10월쯤 되면 여러 회사에서 올해의 회사 크리스마스 복권 번호를 알려주고 대규모 공동 구매를 시작한다. 혼자 20유로를 내고 한 장을 구매해도 되고, 네 명이 5유로씩 내서 1장을 구매해도 되고,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많은 사람이 사면 더 해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는 너도나도 없이 복권을 산다. 


아는 지인의 지인은 친구들, 바 단골들, 가족, 회사 등 모임마다 있는 크리스마스 복권을 사고 나니 1000유로가 훌쩍 나갔다고 했다. (인간관계가 참 넓은 사람인 듯… ) 그리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외국인인 나도 보통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약 100유로 정도를 지출하니까 마당발인 스페인 사람의 경우에는 이 시즌에 1000유로 이상이 나갈 수도 있을 듯 하다.


어찌 보면 허황된 꿈일 수도 있고, 낭비일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복권은 다른 의미로 친구, 가족 그리고 동료들과의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의 번호를 여러 명이 같이 사서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고, 서로 당첨되면 뭘 할 건지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공동체가 당첨되면 그 공동체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혼자 하면 1주! 열명이서 같이 하면 10주!


언젠가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하다가 스페인의 집값 상승, 물가, 오르지 않는 건 우리 월급뿐이라는 이야기 등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할 고민들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답은 복권뿐이라는 결론으로 흐른 적이 있다. 그때 크리스마스 복권의 개념에 착안해서 복권계를 해 보는 게 어떨지를 제안 했었고, 모두가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결국 직장 동료들과 유로밀리언 복권계를 결성하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복권을 참 좋아한다. 프리미티바, 롯데리아 나시오날, 보노로또 등 한주에만 수십 가지의 복권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유로밀리언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당첨 금액이 커서였다. 유로밀리언은 유럽 전체가 참여하는 복권으로 기본 당첨 금액이 꽤 크다. 얼마 전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미국의 메가밀리언? 같은 복권으로 당첨 금액이 기본 17,000,000유로로 시작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220억 정도이니 10명이 나눠도 기본 20억씩은 가져갈 수 있다.


원리는 간단했다. 일주일에 유로밀리언 2개를 사기 위해서 혼자는 10유로를 투자해야 하지만(일주일에 두 번 추첨을 하고 한 번에 한 장에 2.5유로이다.) 여러 명이서 하면 똑같은 10유로로 여러 주에 걸쳐 유로밀리언 2개를 살 수 있기에 여러 명이서 하는 게 이득이다. 그리고 '나는 횡재운이 없을 수도 있지만 10명 중 횡재 운이 있는 사람이 하나는 있겠지', '또 1명이 소원하는 것보다는 10명이 소원하면 더 잘 이루어질 거야' 뭐 그런 잡다한 희망을 바탕으로 이 복권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같이 밥 먹는 동료 몇 명이서 조촐히 하려고 했던 것이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결국에는 7개국이라는 다양한 국적은 물론 팀장, 부서장 등 다양한 직급의 동료 10명과 최종적으로 복권계를 하게 되었다. 물론 계주는 말을 꺼낸 내가 되었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복권 가게를 간다.)


나보다 월등히 많은 연봉을 받는 부서장조차도 복권을 희망으로 한주, 한주 산다는 팀장과 부서장의 대화를 전해 듣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복권계가 적어도 이 10명에게는 매주 희망을 주고 있구나' 하는 보람찬(?) 기분도 느끼고 말이다. 


부서장: 난 요즘 매주 Lotería 대화 창 확인하는 낙에 살아. 

(스페인말로 복권을 롯데리아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아는 그 롯데리아와 똑같아서 한참을 웃었다.)

팀장: 무슨 소린지?

부서장: 유로밀리언 말이야. 그게 되면 뭘 할까 그 생각에 매주 즐겁다고나 할까? 넌 되면 뭐할 거야?

팀장: 아… 나도 그래! 난 되면 집을 사고 blablabla 



우리는 그렇게  1인당 10유로씩 내서 10주 동안 유로밀리언을 꾸준히 사고 있다. 당첨액이 1000억이 넘는 주에는 당첨되면 1인당 100억이라면서 조금 더 들떠서 이야기하고, 안되면 다음 주에는 되겠지라고 웃으며 위로하며, 우리는 매주 언젠가는 당첨이 돼서 모두 다 밀리어네어가 될 그날을 꿈꾼다. 그리고 아무 소득 없이 10주가 지나면 또 다시 같은 희망으로 10유로씩 모아서 복권계를 지속한다.


소소하게 몇 번 당첨되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는 밀리어네어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해서는 평생 가야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스페인의 현실을 감안하면 어차피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10유로를 투자해서 10주 동안 행복할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10유로는 그 값어치를 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피부색도, 인종도, 성별도, 국적도 모두 다르지만 작은 희망에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는 유로밀리언이 당첨될 수 있으려나??


By.라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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