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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rewhyire Feb 01. 2022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 같은 어른이 되자!

  작년 말에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지인을 만났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쾌한 그녀는 그 사이 결혼도 하였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대학시절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던 기억이 났다. 그때 그래서 고마웠다고 했더니 그녀는 나에게 과거에 자신이 했던 말들이 부끄럽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그녀는 뭣도 모르면서 했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며 웃었다.


 소크라테스는 물음표 살인마였다.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누군가 말 한마디 잘못 꺼내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질문을 해댔다. (ex. 덕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계속 질문을 하여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명 '산파술'(소크라테스식 문답법,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돕는 산파처럼 참된 지식을 산출하는 것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산파술)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대개 질려서 도망치거나  혹은 그와 끝까지 남아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깨달은 것은 사람들 뿐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도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결국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왠지 소크라테스는 아마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혹은 '내가 저 사람에게 무지라는 큰 깨달음을 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질문을 시작했을 것 같진 않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순수하게 정말 확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배우고자 물어본 것일 것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을까?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명확한 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답답해했다. 내 눈에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라면 저러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도 했고 세상과 타협한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을 속으로 비웃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말도 많았었다. 마음 저 밑바닥에는 '나는 어린데 이만큼이나 알아요'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원래 말이 없나보다 했던 '진짜' 어른들은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 나를 그 순간 이해해주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자신이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던 때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진짜'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아는 것을 안다고 자부하면서 거들먹거리거나 가르치려들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아테네에서도 이미 유명했던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질문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물었던 것들은 아마 소크라테스도 자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다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르치지 않고 물었다. 가만히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진짜' 어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가 그저 그런 아테네의 꼰대가 아닌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된 이유는 아마 그의 순수한 겸손에 있지 않았을까.


 나도 소크라테스처럼은 아니어도 적어도 꼰대는 되지 않기 위해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해야겠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진정 아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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