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첫 혐오의 추억
"에이즈인가요?"
작성이 끝난 근로계약서를 받아 든 손끝에 힘을 주며 여자가 물었다. 십 년 전(2011) 여름, 가난하고 한가한 대학원생이던 나는 주말 동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본 뒤 막 채용된 참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채우고 마지막 줄에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는 나를, 정확히는 내 손등과 팔목의 검붉은 상처와 거친 피부결을 유심히 지켜보던 여직원이 입을 열었다. 면접 초반 내내 화기애애했던 그와 나 사이의 공기가 서서히 달라졌다. 냉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빠르게 굳는 분위기.
"네?"
"팔에 그 상처요. 에이즈예요?"
"...... 아토피인데요."
음. 내 말을 듣고 직원은 '잠시만요'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관계자 외 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은 창고 문을 우당탕 열고 들어갔다. 매니저님! 창고 안쪽에서 여자와 남자가 빠른 속도로 대화하는 소리가 진동음처럼 웅웅거린다. 작은 실랑이가 오간 후 어떤 남자가 상기된 얼굴로 튀어나왔다. 흰 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특징 없는 벨트를 하고 슬림한 세미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 여자보다 직급이 높은 것 같은 남자는 구두 소리를 뚜벅뚜벅 내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깐 실례합니다."
'매니저'라는 남자는 주사를 맞히려는 간호사처럼 내 손목을 잡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렸다. 여러 갈래로 주름져 허옇게 들뜬 각질을 보습제로 진정시켜놓은 살결이 드러났다. 팔뚝의 아토피 흉터를 본 남자는 지체 없이 이마를 구겼다. 나는 로드킬 당한 동물이 된 듯 과속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다. 노골적인 경멸은 자주 당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이래선 저희 가게에서 일하시기 어렵겠습니다."
"네? 제가 아토피라서요?"
남자의 볼에 패인 여러 깊이의 곰보자국을 헤아리며 내가 물었다. 남자는 흐릿한 눈으로 내 말에 대꾸했다. 아무래도 저희 브랜드가 밝은 이미지이고, 반팔 유니폼을 입기도 하니까요. 남자는 공연히 왼쪽 팔을 흔들어 손목시계를 찾았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몸짓. 아토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채용했으니 이건 무효한 일이라는 듯이, 사인까지 끝낸 근로계약서를 완전히 없었던 일로 합의를 보고 싶다는 듯이. 한시바삐 이 아토피 환자를 내 아이스크림 가게 밖으로 쫓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몸짓이다.
"아토피가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푸는데 문제가 되나요?"
내가 다시 물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남자는 초침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기억하려는듯한 연극적인 눈빛으로 손목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손님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을 하지 않고 말하는 건지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띄어쓰기다.
"기분 좋게 고급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들어왔는데 내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직원의 팔에 그런 게 있으면......."
그런 게? 그런 거라뇨. 그게 뭔데요. 있으면 안 될 혹이라도 달고 있다는 겁니까. 아토피 흉터가 보석처럼 영롱하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쳐서 계속 보고 싶고 호감이 가는 그런 성질은 아니긴 하죠. 나는 소리내지 못하는 말을 마음속으로만 외치면서 입을 다물고 남자를 마주 본다. 다소 분주하게 깜빡이는 남자의 눈은 가사를 잊어버린 오페라 가수처럼 처연하다. 숱이 휑한 정수리를 굳이 확인시켜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남자는 자신 없는 노래를 이어갔다.
"그 아이스크림 먹기 싫잖아요."
'에라 모르겠다 말해버리자'라는 태도로 남자는 말을 던졌다. 나는 빙긋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웃었는지 모르겠다. '네? 뭐라고요? 대체 무슨 개똥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고 눈알을 부라리며 화를 냈어야 하는 건데. 살면서 아토피 피부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나오는 오해와 편견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그 혐오가 정당하다는 것도 아니었고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거듭 찢어지고 아물었던 곳이라면 굳은살이 배겨서 단단해질 법도 한데, 뾰족한 말에 찔린 마음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새로 돋은 연한 새살이 쓸리고 베이고 찔리는 기분이다. 상처는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해요."
나는 옷소매를 끌어내려 팔을 가리면서 은은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술 끝을 양옆으로 당겨서 이를 보이지 않고 광대를 눈 가까이 올리면서 웃어 주었다. 당신은 무지와 혐오에 물든 인간이지만 나는 우아하게 응수하겠다는 듯이. 똑같이 머저리처럼 저급해지지는 않겠다는 듯이. 너는 아픈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무지한 당신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고, 적어도 당신보단 더 나은 인간이라고 확신하듯이. 사인한 근로계약서를 돌려주고 나는 몸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다른 기회에 뵙겠습니다."
"네. 안녕히 계세요."
이해해요. 미래의 당신에게 갈지 안 갈지도 모를 만약의 손해를 봉쇄하기 위해서 현재의 나에게 자명한 상처를 주었군요. 이해해요, 이해해. 자본주의가 그렇잖아. 더러운 내 피부를 보고 손님이 기분을 잡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다잖아. 모든 나쁜 가능성은 안전하게 잘라내야지 안그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게 매출과 고객 평판에 직결과는 직원의 산뜻한 외모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내 아토피 피부염보다는 매니저라는 남자 얼굴의 곰보자국과 심각한 탈모 상태에 더 주목하고 그것을 개선해야 할 것이었다.
딸랑, 방울 소리를 내며 가게문을 열고 나왔다. 마시멜로우를 닮은 폭신한 흰색 배경에 달콤하게 흘러내리는 연한 분홍색으로 치장된 아이스크림 가게의 간판.
나는 아이스크림 같은 걸 먹어서는 안 된다. 버터와 우유, 설탕, 계면활성제, 증점제, 합성착향료가 범벅된 이 사랑스러운 식품을 먹으면 아토피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색깔, 달짝지근한 맛과 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그 성분은 궁극적으로 몸을 망치고 건강에 해로운 것들 뿐이다.
당신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고 생각했겠지만 태도가 어찌 됐든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 내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댄 것도 예민한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고용 취소를 부득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속 깊은 매니저의 결단인 척한 것도 죄송하다는 오만한 그 사과까지 모두 다 틀렸다. 차별없이 나를 고용하면 되는 일이고, 내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그때 고용 중단을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피부가 곱지 않다는 이유로 시작도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에서 잘리다니 허탈함에 웃음만 나온다.
무엇이 더 혐오스러운가. 아토피를 앓는 내 몸인지, 입 속에 들어가는 이 복잡한 음식인지, 입이 뚫린 김에 아무렇게나 나오는 당신의 말인지. 답을 알 수 없을 때 문득 팔뚝에서 가려움이 차오른다. 북북 긁었다. 시원해질 때까지. 가려움이 맺힌 곳이 터져 뭉그러질 때까지. 오랫동안 긁고 또 긁었다. 열 개 손톱 끝에 피딱지가 끼었다. 글쎄, 당신의 혀보다는 불결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