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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Oct 19. 2021

질환 뒤에 사람 있어요  

아토피 환자가 자주 듣는 말 베스트 3


어린이 아토피안 시절. 어른들은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에구, 피부가 어쩌다가 저렇게 됐나. 에미가 관리를 잘해줬어야지. 애를 깨끗이 잘 씻기고 해야지. 졸지에 나는 부모의 살뜰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피부병을 얻은 가엾은 아이가 되고, 엄마는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양육자가 되어 버린다.


'식사하셨어요?'가 그 시절 어른들의 안부인사라면, 엄마의 지인들은 엄마 옆에 달라붙어 있는 어린 나를 보며 '애 피부가 많이 깨끗해졌네?' 혹은 '애 상태가 더 안 좋아졌네?'를 안부인사로 건넸다. 네,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 네, 환절기라 갑자기 나빠졌나 봐요. 엄마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적당히 대꾸해주고 내 손을 끌고 지나쳤다. 내가 좀 더 평범한 체질로 태어났더라면 엄마가 저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무례한 어른들을 미워하는 대신 나를 탓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게 제일 편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그 질환 자체로 본다.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함부로 질환과 그 사람을 동일시한다. 그들 마음속에서 아토피 환자는 '환자'가 아니다. '아토피'다. 나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토피 자체가 되어 사람들 눈에 판단당한다. 왜 그렇게 됐죠? 왜 낫질 않죠? 이걸 해보세요. 저게 좋다더라. 이봐요, 모태 아토피 환자인데 내가 아직 그걸 안 해봤을까 봐.


피부가 이토록 무참하게 얼룩덜룩하고 상처가 많은 것은 눈에  띄는 특징이다.  아토피를 한눈에 알아차렸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 전체를 한눈에 알아차린 것은 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토피가 나를 특징짓는 가장  정체성은 아니다. 내가 아토피 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나에 대해서 거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나랑 가깝거나 친하다고 믿는다. 옆집 강아지 보듯이, 앞집 베란다에 내어놓은 다육이 보듯이 쉽게 말을 걸고 참견한다. 심지어 다른 가정의 반려동물, 반려식물에게도 함부로 대해서는  되는  아닌가. 강아지를, 다육이를   수도 있지만 ' 강아지', ' 다육이' 키우는  이웃들만큼    있을까.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아토피가 아닌 다른 질병에게도 그렇게 쉬운 말로 물어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질문 방식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서두를 시작하는 것이다.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내 착각일 수 있고, 상대방의 기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하물며 내가 잘 모르는 분야는 상대방이 괜찮다고 해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네가 가진 질환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게 좋을까?"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너를 대할 때 꼭 알아야 하거나 조심할 부분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는 나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오해하고 싶지 않다는 따듯한 사려 깊음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내 희망사항과 정반대로, 살면서 자주 듣는 말은 나를 더 잘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위한 말인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본인들도 모르는 것 같다. 내 기분을 알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표적으로 자주 듣는 말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긁지 마. 피나잖아. 좀 참아봐."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어딘가를 긁은 모양이다. 대화를 나누던 친구가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이거봐라 또 긁지! 이거 버릇이야. 앞으로 어디 긁으려고 하면 내가 중지시킬 거야. 가려운 게 뭐가 대수라고. 날 생각해서 한 행동이겠지만 기분이 나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이 싫어 친구를 따라 같이 깔깔 웃었지만 뒤돌아 올 때 입맛이 썼다.


모기 물린 데가 가려울 때 손톱으로 꾹 눌러 '십자가'를 만들면 가려움이 한결 나아진다는 낭설이 있다. 과학적으로는 잘못된 방법이다. 그만큼 모기 한방이 내 피부를 얼마나 가렵게 하는지 한시바삐 가려움을 완화시키려고 필사적으로 '십자가'를 눌러 새긴다. 겨우 모기 한방에도 온 신경이 그곳에 쏠릴 정도로 성가시다.


모기 물린 곳에 손을 가져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모기떼의 습격을 받아 온몸을 구석구석 뜯겼다고 상상해보면 조금 이해가 될까. 아토피 환자는 그런 가려움이 일상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목덜미, 등, 앞가슴, 허리, 허벅지, 무릎 뒤, 종아리, 발목, 발등, 인중, 귀 뒤에 자리잡은 생명체같은 가려움증이 꼼꼼하게 문을 두드린다. 모기 대여섯방이 아니라 '팔에 백방, 다리에 이백방 '물린 정도로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절망스럽게도 절대 낫지 않는다. 아토피 환자에게 피부를 긁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콧구멍을 깃털로 살살 간지럽히는데 재채기를 참으라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다는 일이다.


가려움은 '두더지 게임' 속 두더지처럼 내 피부 위를 드나들고 있다. 나는 손톱이나 손바닥을 갖다 대서 긁거나 때리며 그 두더지 같은 가려움을 가라앉힌다. 이 가려움 괴물은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하는 고약한 녀석이다. 시험기간이라고, 회사 면접이라고, 소개팅을 하고 있을 때라고, 밤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피곤에 절어서 침대 위에 쓰러진 상황이라고 해서 사정 봐주지 않는다. 피가 나고 진물이 나도록 긁어야 시원해진다. 긁지 않으면 가렵고,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없이 긁다가 손을 멈추면 고통이 찾아온다. 열로 붉게 물든 피부를 진정시키려고 찬물 샤워를 하면 마치 찢어진 상처를 벌리고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온다. 더운물로 샤워를 하면 온도의 두 배는 더 높은 온도인 것처럼, 끓는 물을 붓는 것처럼 더 고통스럽다.


직접 겪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고 해도 사람마다 그 고통의 농도가 다를 것인데, 아토피의 가려움을 피부로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깨끗이 좀 씻어. 머리도 감고 나서 잘 말리고. 각질 떨어진다."


중학생 때였다. 만성적인 가려움으로 나도 모르게 등으로, 허벅지로, 머리카락으로 덮인 목 뒤로 손이 갈 때가 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가려운 곳을 긁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지나가다 그렇게 농담을 던졌다. 야, 긁지 말고 좀 씻어. 샤워 좀 하고.


외모에 한참 민감한 사춘기 시절, 실제로 매일 씻고 구석구석 닦는 청결한 성격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아토피 피부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나를 오해하는 것이 괴로웠다. 할머니 피부처럼 쪼글쪼글하게 태선화가 진행된 회색 팔꿈치를 보고 때 좀 밀으라고 타박하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가깝고 친한 사이에서 장난치는 말인걸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속상할 수 없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단했다. 때를 너무 심하게 밀었거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거나 술을 마셔서 얼굴과 몸이 붉게 달아올랐거나 불량 청소년에게 걸려서 담뱃불로 지져졌거나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해서 멍이 생겼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저주를 받았거나. 아토피 상처는 빨간 반점과 허옇게 들뜬 각질, 검고 회색인 얼룩덜룩한 원형으로 나타났다. 그 아래 상처가 없는 맨살은 흰 편이어서 아토피 상처가 더욱 생생하고 심각해 보였다.


여자애가 관리 좀 해라. 한창 예쁠 때인데. 지나가다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나는 오늘 왜 겉옷을 챙기지 않았을까 자책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팔다리를 드러내서. 왜 목덜미와 발목을 드러내서 그런 공격을 받았을까. 생각 때문이 아니라도 아토피 가려움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단골손님이다. 그날의 나쁜 일을 곱씹다가 손톱으로 가려운 곳을 긁었다가 밤을 이루지 못하며 몸부림치다가 지쳐 잠이 든다. 미처 피곤함을 씻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야속하게 새하루 아침해가 밝아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턴다. 밤새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이불과 침대 매트리스 위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샤워도 아침저녁으로 한다. 대신 적당한 온도로 짧게. 너무 뜨거운 물이나 긴 시간 동안 하는 샤워는 아토피 피부염에 좋지 않다.


아토피 환자는 씻지 않은 것처럼 피부가 거뭇거뭇해 보일 수도 있다. 제때 목욕을 하지 않아 때가 낀 것처럼 피부 각질이 허옇게 일어나 있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닌 것처럼 몸을 긁어댈 때도 있다. 그러나 아토피 환자들은 누구보다 철저히 자기 몸을 챙기고 있다. 아토피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청결하게 씻고 닦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피와 진물, 각질로 범벅된 피부가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3. 이거 옮는 거야?


뭐 잘못 먹은 거야? 알레르기야? 내 피부가 왜 이런 상태인지 잘 모르고 궁금하니까 물어볼 수 있다. 잘 모르고 궁금하지만 물어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바이러스도 아니고 옮느냐고 물어보다니.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앓던 병이니까 친숙하고 자연스럽지만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접촉으로 옮기는 병일까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는 물론이고,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들어본 적이 많다.


나 외에는 부모님도 언니도 일가친척 그 누구도 아토피 환자는 없다. 나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가족 중 누구도 아토피에 전염된 사람이 없다. 그런 근거로 바이러스처럼 감염병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토피가 옮길 수도 있으려나. 나도 누구에게 옮았으려나. 태어나자마자? 그런 생각은 옮느냐고 물어보는 사람 덕택에 처음 하게 되었다. 생각의 전환을 일으켜 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 말을 들은 뒤로 아토피가 생소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해준 말은 '이거 안 옮아요'였다. 상대가 궁금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실례가 될까 봐 물어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일부러 선수를 친건 나에게 다가오는 걸 주저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나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옷 사이로 보이는 내 피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보일때 상대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아토피 이야기를 꺼낸 적도 많다.


어떤 날은 교회 안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집사님 한분이 내 아토피를 궁금해하시는 듯 나를 지긋이 보고 계셨다. 연세도 많으시니 아토피를 모르실 것 같아 이야기했다.


"이거 아토피라는 피부병이에요. 옮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내 손목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그분께 웃으며 말했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것 때문에 쳐다본 거 아니야. 손목이 가늘고 예뻐서 봤어. 피아노를 치는데 손이 참 작고 가냘프다 싶어서. 얼굴이랑 하고 다니는 건 선머슴처럼 털털하면서 손은 귀여운 아가손이네."

"아...... 감사합니다."

"항상 참 잘한다고,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손가락, 손등, 손목, 윗팔 할 것 없이 아토피로 얼룩져 있던 내 손을 보고 그렇게 말씀해주신 분이 계셔서 나는 교회에서 피아노를 계속 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아토피가 있는 불쌍한 애, 잘 씻지 않는 것 같고 늘 음침하고 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덧입는 이상한 애가 아니라 기특한 짓을 하는 보통의 중학생으로 봐주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어쨌거나 나를 아는 사람 중에 내가 아토피 환자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와 직접 대면하지 않았거나 친구의 친구 등으로 간접적으로만 아는 사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다녔던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대학원, 어쩌면 직장에서까지도 아토피라는 질병을 알리는데 나라는 존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나를 통해서 처음 아토피를 알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나의 사례가 '내가 아는 어떤 아토피 있는 사람'이라는 지식을 추가시켜서 아토피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토피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가려움증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내 질병을 뭐라고 오해하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가려움증이 가장 고통스럽다. 그 뒤로도 힘든 것은 가려움증으로 수반되는 다른 증상들이다. 가려움증으로 긁다가 피와 진물이 나서 속옷과 겉옷, 이불과 베개를 더럽히는 것. 가려움증으로 숙면하지 못하는 것. 학교에서는 학습 능력 저하를, 회사에서는 업무 생산성 손실을, 대인관계에서는 자주 마찰과 우울감을 겪는다.   


그런데 이 고통은 의사도 스테로이드제도 자연 산림욕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애인도 아토피 환자의 고통을 나눠질 수 없다. 오직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아토피는 이유 없이 나빠졌다가 제멋대로 좋아진다. 피부과나 한의원도 바짝 치료에 매진할 때만 잠깐 호전된다. 시간과 돈과 마음을 다 써도 정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전국 100만 아토피 환자들이 겪는 고충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만 해도 마음속 따가움이 진정될 것 같다. 무지에 의한 황당한 말이나 생각해준답시고 건네는 무심한 아픈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많은 사람들이 아토피를 정확히 알게 되고 인식이 달라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몸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몸이 탐나더라도. 주어진 질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태어난 나를. 이렇게 길러진 나를. 이렇게 된 원인이 뭔지 이미 샅샅이 뒤져 보았을 테지만 어쨌든 완전히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답이 없는 고통에 손쉬운 오답을 던지며 왈가왈부하는 타인의 가벼운 입술이 밉다. 내 고통을 당신이 아느냐고 따져 묻고 싶지만 남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서 관심이 없다. 아는척하거나 조롱하고 싶을 때만 고개를 들고 마이크를 잡는다.

 

아토피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아토피는 평생에 걸쳐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제멋대로인 성격의 짓궂은 질환이다. 그러나 그 질환 뒤에 사람이 있다. 아토피에 아파하고, 아토피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고, 아토피와 싸우고, 그러나 아토피가 내 전부인 것만은 아닌 사람이. 아토피가 안겨 주는 좌절감에 마냥 쓰러져 자신을 동정하며 누워있지만은 않은 사람이. 연약하지만 강하고, 내 고통이 괴로운 만큼 타인의 고통을 더듬을 줄 아는 예민한 사람이 있다.


견디고 버티는 우리는 모두 대견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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