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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 Oct 21. 2021

아토피 있는데 타투 가능해요?

문신 토시로 만족하지 못해서 직접 해봤습니다

처음 '문신 토시'라는 걸 보고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문신 팔토시. 개그 소품 같은 그걸 누가 실제로 착용하고 다닐까. 실제로 문신 토시를  사람을 봤는데 우습거나 가짜 같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차면 문신 끝의 어색한 부분이 보이지 않아서 실제 문신을  팔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문신 팔토시가 갖고 싶었다. 효과적으로 내 아토피를 가려줄 수 있고 더불어 나를 무례하게 쳐다보는 상대방에게 약간의 두려움과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소품. 진정으로 무섭다기보다는 어떤 가사를 빌려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느낌을 줘서 오히려 웃음이 나는 물건. 그런데 왜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것일까.


문신은 좋다. 팔에 새긴 무늬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준다. 아토피와 완전히 반대다. 아토피는 날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날 공격해도 좋다는 엉뚱한 신호를 준다. 어딘가 잘못된 사람, 부족한 사람, 저주받은 존재라는 눈으로 나를 보도록 허락하는 무늬다. 이레즈미(야쿠자 문신)가 가득한 팔을 볼 때의 그 공포심과는 결이 다른, 메스꺼움과 혐오가 점철된 시선이다.


내 팔다리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원들이 검붉게 착색된 아토피 흉터가 아닌, 똑바로 쳐다보기 다소 조심스러운 화려한 문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뭔진 잘 모르겠지만 무서우니 가까이 가지 말자는 느낌을 주는 건 문신도 아토피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외양을 보고서 더럽거나 우습게 여겨서 피하는 게 아니라, 무섭고 '쫄려서' 피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성인이 되면 노출된 팔다리에 아토피를 뒤덮는 화려한 타투를 꼭 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내 아토피를 '무늬'라고 부른다. 다양한 무늬. 검은 무늬. 빨간 무늬. 하얀 무늬. 피나고 진물 나는 무늬. 가려운 무늬. 아픈 무늬. 모기에 물린 건지 헷갈리는 무늬.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무늬. 내 무늬.


문신도 의미 있는 무늬를 내 몸에 새겨 넣는 행위다. 아토피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무늬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 수 없고, 관리가 까다롭고, 다스리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문신보다는 조금 귀찮다. 때로는 아토피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마치 내 본체는 따로 있고 그 위에 아토피 증상을 장착한 어떤 내복을 늘 입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간절기 카디건을 벗듯이 경량 패딩을 벗듯이 그렇게 벗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내 두꺼운 피부 위의 무늬들. 문신 토시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아토피 토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어마어마한 토시를 벗으면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맨살이 드러나서 웃음을 줄 것이다. 나는 아무 무늬도 없는 깨끗한 팔을 가진 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어느 날. 타투를 하기로 마음먹은 뒤 본격적으로 시술할 곳을 찾았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여자 타투이스트일 것. 집과 가까운 곳일 것. 타투샵을 금세 찾았고, 문자로 상담을 한 뒤 시술 날짜를 잡았다. 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도안을 찾는 것도, 시술 날짜를 잡는 것도 금방이었다.


나는 모태신앙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종교적 의미가 있는 형태를 새기고 싶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같은 구절을 레터링 문신으로 새겼다간 나이가 들어 후회할 것 같아서, 얇은 십자가를 윗 팔에 새기기로 결정했다(기독교인이 문신이라니 발랑 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앙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타투 예약 날이 되었다. 미리 보낸 도안으로 겨드랑이 안쪽에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타투이스트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아파서도, 시술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살이 찌기 쉬운 부위다. 시간이 지나면 그림이 휠 거다'라게 이유였다. 세상 어떤 설명보다 빠르게 이해하고 납득했다. 팔꿈치 아래, 즉 아토피가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부분에도 바늘을 대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것 역시 시술이 어렵거나 통증이 심해서가 아니었다.


"인생 처음 타투는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하시는 게 좋아요."

"왜요?"

"백 퍼센트 후회하시거든요. 첫 타투는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해보세요."


그리고 그곳이 마음에 들면 차차 눈에 띄는 데로 내려오시고요. 그렇게 설명해주셔서 나는 또 납득을 해버리고는 추천 부위를 덥석 받아 시술에 들어갔다. 시술 예약을 잡기 전 아토피 환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했고 피부 상태도 보여드렸다. 피부가 얇다. 상처가 많다. 흉터가 지면 검게 착색된다. 그게 온몸에 있다. 피부가 연약해서 그런 거라는데 부작용은 없을까요?


아주 간략하게 답장이 왔다. '아토피랑 타투랑 아무 상관없어요.' 나는 그 말만 믿고 왔다. 시술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도 묻지 않고 가장 빠르게 시술 가능한 날짜로 예약을 잡았던 것이다.


미리 보낸 도안을 뽑고 팔에 부착한 뒤 떼었다. 파란 잉크로 밑그림이 그려졌다.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안쪽으로...... 여러 번 자리를 잡았다가 지웠다. 샤프심처럼 가느다란 줄 두 개로 만든 십자가. 마음에 딱 드는 곳을 결정했다. 마취크림을 바르고 시술대에 누웠다. 지지징. 시술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이제 시작인가요?"

"네, 걱정 마세요. 안 아플 거예요. (피부에 댄다)어때요? 요정도."

"아, 안 아파요."

"내가 안 아프다고 했죠? 그럼 갑니다."


타투이스트는 능숙하고 빠르게 내 피부에 무늬를 그려 넣었다. 살 타는 냄새인지 모를 독특한 냄새와 기계의 진동소리, 잉크 냄새 같은 풋내가 섞여 났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말했다. 별 것 아니네. 이걸 이렇게나 미뤄왔다니. 윙윙윙. 이제 마무리합니다.


"어때요?"

"우와...... 예뻐요."

 

예뻤다. 거울에 비친 진한 검정 잉크로 새긴 십자가 무늬는. 발진이 일어난 부위를 피해 되도록 건강하고 상처 없는 피부를 도화지 삼아 그린 십자가. 나는 해냈다는 마음이 들면서(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 울컥했다.


"선생님, 이거 생각보다 할만한데요."

"그렇죠? 문신, 별거 아니에요."

"저 아토피 위에 이레즈미 할 거예요. 막 용 문신, 호랑이 문신. 다 덮어주세요. 가능할까요?"

"후훗.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렇게 내 첫 타투는 끝이 났다. 한동안은 운동과 목욕을 조심하고, 바셀린을 발라주며 잘 관리했다.


6개월 뒤에 느낀 것은 이렇다. '첫 타투는 반드시 후회하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곳에 하는 게 좋다'던 타투이스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것. 나는 타투를 새긴 것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타투에 흥미를 잃었고, 눈에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타투를 더 새기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다. 아토피 피부 위에 타투 잉크가 아무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문신 토시'를 착용한 것처럼 두 팔에 화려한 예술행위를 펼치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버킷리스트'처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이다.


더 이상 어릴 때처럼 아토피 때문에 타인의 공격을 받는 일도 없고, 받는다고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유쾌하게 넘기고 더 곱씹지 않거나, 뼈 있는 말로 돌려 깔 줄 아는 강한 삼십 대 여자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리를 잘한 덕택인지 문신은 아무 부작용 없이 예쁘게 자리 잡았다. 샤워를 할 때마다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랐던 윗 팔 부분의 문신이 이제는 원래부터 내 몸에 있던 기관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모양도 색깔도 영향력도 아토피가 더 큰데도, 이 조그만 문신이 아토피를 다 이겨내 줄 것 같은 좋은 기운을 준다.


문신이 예쁜 것처럼 내 아토피도 예쁘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 무심코 팔을 쳐들 때마다 옷이 흘러내리며 드러나는 내 아토피 흉터에 상대방이 움찔 놀라는 것도 마냥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 아토피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문신이 예뻐서 놀란 게 아닐까? 하고 정신승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신은 한 번도 내 속을 썩인 적이 없다. 늘 아토피가 문제다.


내 몸에 있는 아토피와 문신이 꼭 티격태격하는 자매처럼 느껴진다. 두 팔을 교차해서 내 몸을 감싸고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내 무늬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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