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랑 May 16. 2022

만두를 빚는 밤

<물냉이>, 안드레아 왕 글, 제이슨 친 그림, 다산기획(2022)

닭만두. 어렸을 때부터 닭만두를 빚는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배운, 닭을 뼈째 갈아 넣어 빚은 만두다. 토종닭을 넣으면 노오란 기름이 동동 뜬다. 언제나 맛있지만 1년 가운데 으뜸으로 맛있는 때는 김장김치가 익었을 때다. 다섯 식구가 매달려 담근 김장김치가 익으면 어머니는 닭만두부터 빚는다. 소소한 집안 행사나 마찬가지다. 작년 12월에도 그랬다. 나는 마침 친구들과 노느라 첫 닭만두를 못 먹었다. 그 다음 주에 집에 가서 물었다.

“만두 있어?”

“없어. 네가 빚어 먹어.”

“얼려 놓은 것도 없어?”

“없어. 반죽한 거랑 속이랑 가져가서 빚어. 소주병 있어?”

“없어. 마늘 빻는 거는 있는데.”

“그걸로 밀어서 빚어.”

“잘 할 수 있을까?”

“맨날 하는 건데 왜 못해.”     


마늘 빻는 공이는 배불뚝이라 반죽이 잘 밀리지 않았다. 겨우 몇 개 빚어서 끓여 먹었다. 밀가루 반죽이 두꺼워서 수제비를 뚝뚝 씹어먹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은 얇게 밀어서 먹으리라 다짐했다. 마트에 들려 홍두깨를 샀다. 과연 홍두깨로 밀었더니 삭삭 잘 밀린다. 어머니는 1미터쯤 되는 홍두깨로 이불처럼 넓게 반죽을 밀었다. 둥그렇던 반죽이 밀면 미는대로 죽죽 늘어나다, 야들야들, 얇아지는 과정은 언제봐도 신기했다. 아기 담요만큼 큰 반죽에 주전자 뚜껑을 꾹꾹 눌러 동그란 만두피를 만들었다. 열 살을 넘어서부터는 곁에 붙어 앉아, 어머니가 옆으로 휙휙 던지는 만두피를 받아 만두를 빚었다. 어머니처럼 딴딴하게 빚지 못했지만 나름 야무지게 일손을 보탰다. 가끔은 너무 욕심을 부려 속을 많이 넣어 터지기도 했다. 둥그렇게 피를 떼어내고 나면 세모난 꼴로 피가 남는다. 어머니는 남은 피도 만두국에 넣어서 끓였다. 홍두깨로 잘 민 반죽이라서 입으로 후룩, 하고 들어가는 매끄러운 느낌이 좋다. “만두 몇 개?” 하고 물으면 언제나 “너부데기 많이 줘.” 했다. 너부데기. 사전으로 찾아봐도 없는 말. 어머니는 만두피의 남은 부분을 너부데기라고 불렀다. 뭔가 너불너불한 느낌이라서 그런가.    

 

물냉이. 매운 맛이 나는 미나리에 가까운 맛인 것 같다. 《물냉이》는 드넓은 옥수수밭을 달리는 낡은 폰티악 자동차를 저 멀리서부터 그려낸다. 옥수수밭과 곧이어 나타나는 미국 국기. 자동차 안에 탄 아이들의 외모로 동양에서 이민 온 가족임을 눈치챈다. 달리던 차는 물냉이를 알아본 어머니의 외침에 멈춘다. 옥수수밭 옆 도랑에서 자라는 물냉이를 뜯으며 부모님은 떠나 온 고향을 떠올린다. 그림 작가 제이슨 친은, 이 장면에서 옥수수와 대나무를 가운데 두고 자연스럽게 과거를 보여준다. 글이 수다스럽게 전하지 않아도, 그림으로 다다르는 과거. 종이봉투에 물냉이를 뜯어 집으로 온 가족은 마늘과 기름을 넣어 저녁으로 먹는다. 그림책 속 화자인 딸은 진흙과 달팽이가 붙어 있던 물냉이를 단 한 입도 먹고 싶지 않다. 공짜로 얻은 터라 더 그렇다.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남동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은 비로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쌉쌀한 물냉이를 먹는다.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린 두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물냉이’라는, 고향을 떠올리게 만드는 식재료는 이민자의 삶을 보여준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미나리’가 떠오르기도, 어머니를 잃고 한국 음식에 대해 쓴,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도 떠오른다. 이 책은 그 해 미국에서 출간한 어린이 그림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주는 칼데콧 상을, 또 그해 가장 뛰어난 어린이 작품 글 작가에게 주는 뉴베리 영예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만큼 미국 사회가 아시아 이민자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쏟는 모양이다.  

    

《물냉이》를 읽고 자연스럽게 우리집 만두가 떠올랐다. 따로 사는 딸들을 위해 넉넉히 만두를 빚어 놓았던 어머니는, 손주를 보고 나서 다른 일은 조금 귀찮아진 것 같다. 작년 첫 만두가 그랬다. 당연히 내 몫이 냉동실에서 기다릴 거라고 여겼는데, 빚어 먹으라니. 만두피를 밀어 본 적이 없어서 수제비 같은 만두를 먹으며 조금 서러웠다. 서러운 생각이 드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다. 이 나이 먹어서 어머니가 만두 안 빚어줬다고 서럽다니…. 손주 돌보는 일에 지친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다 빚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날, 만두 속이 쉬기 전에 빚어야 해서, 피곤하지만 세계테마기행을 보며 만두를 빚었다. 미룰 수 없는 일들. 다 빚고 나니 네 번은 먹을 양이었다. 혼자서 만두피 밀고 빚으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누군가랑 같이 빚었으면 더 빨랐겠지. 텔레비전 속, 다 말라가는 아랄해에서 여전히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물고기가 잡히나요?” 물었더니, 잡힌단다. 어부는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은 잡아요.”하고 환하게 웃는다. 그 모습에 왠지 또 울컥해서 ‘가족이란 뭘까’ 생각하는 밤이었다. 김장하는 법도, 만두피 반죽하는 것도, 속 만드는 것도 다 배워둬야 하는데…… 생각만 하는, 김장김치가 익어서 만두를 빚은 밤이었다.


*표지사진: 알라딘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이런 벚꽃은 올해가 마지막 일지도 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