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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13. 2024

내 나이가 어때서

부산락페스티벌을 다녀오고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서서 15분 남짓 남은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그때 옆에 선, 사귀는 사이인 듯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여기는 연령대가 높네.”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했다. 영국 록밴드 ‘스타세일러(starsailor)’가 나오는 무대를 두고 한 말이다. 우습기도 하고,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워낙 이번 부산국제락페스티벌에서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젊음을. 그만큼 내가 나이 들었다고 느꼈다. 

부산을 자주 가긴 했지만, 락페스티벌에 가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나오는 밴드에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시간이 안 맞아서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우연히 올 부산락페에 ‘카사비안’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10월 4일 재량휴업일이다. 몇 년 전에 펜타포트에 오고 두 번째로 한국에 온다. 나로서는 처음보는 기회다. 놓칠 수 없었다. 


목요일 아침 8시에 떠나서 12시 조금 넘어서 부산에 닿았다. 이젠 멀리 운전하는게 힘들다. 허리가 튼튼하지 않아서 한 시간 남짓 운전하면 휴게소에서 쉬어야 한다. 아프지 않아도 부러 쉬어간다.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면, 나중에는 할 수 없게 된다. 알게 된 지도 이제 7년이 넘어가는 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산역 앞 동네에서 카레를 만들어 판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이제 1년이 넘어가는 가게 사장님 노릇이 몸에 익기도 하지만, 손목이 아파서 고생하시는 샘. 할아버지부터 쭉 부산에 살아 온 토박이로, 오래된 가게, 새로 생긴 카페를 내려갈 때마다 알려주신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샘이 알려 준 새로 생긴 카페에서 놀다가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가게 문을 닫은 샘과 만나서 남포동 BIFF거리도 구경하고, 40년이 지난 돌솥밥집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다음날은 숙소 앞에서 8번 버스를 타고 35분 남짓 달려서 삼락생태공원으로 갔다. 부산국제락페스티벌 첫날이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터에 가까운 넓은 공원에 ‘삼락스테이지’, ‘그린스테이지’, ‘리버스테이지’, ‘히든스테이지’ 이렇게 네 개의 무대를 세웠다. 전날 비가 내려서 땅이 질었지만, 하늘이 맑게 갠 날씨였다. 키오스크로 굿즈를 주문하고, 옆에서 굿즈를 받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럴거면 주문과 수령을 왜 따로 하는 건지 너무 답답했다. 굿즈를 받을 때 보니, 주문한 큐알코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큰 소리로 물건 이름을 외치면, 뒤에 서 있는 두 세 사람이 서둘러 굿즈를 건네주는 식이었다. 이러니 도통 줄이 줄어들지 않았지. 하이고. 


햇살이 무척 뜨거워서 타올을 머리에 두르고 점심부터 먹었다. 김치말이국수를 후루룩 먹고, 삼락스테이지에서 공연 몇 개를 봤다.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은 순서대로 2시에 이상은, 글렌체크, 실리카겔, 스타세일러, 카사비안이다. 주로 삼락스테이지와 그린스테이지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지만 여러 밴드의 음악을 함께 즐겼다. 작년 오사카 썸머소닉 이후로 일년 만이고, 우리나라에서는 8년만에 락페스티벌이다. 2016년 지산밸리 락페스티벌이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둘레에 사람들이 너무 젊었다. 거진 이십대 초중반인 느낌이었다. 서울재즈페스티벌도 해마다 가지만, 내 나이 또래나, 아이들을 데려온 부부도 많았는데, 역시, 락페스티벌이라 그런지 진짜 젊디 젊었다. 새삼스럽게 그들의 젊음에 놀라운 터인데, 곁에서 ‘연령대가 높다’는 소리가 들리니, 그 소리가 곱게 들리진 않았다. ㅋ


곁에 선 남자가 “아니야. 이 앞에는 다 어려. 스타세일러가 와서 ‘왠 애기들이 왔나.’ 하겠다.” 한다. 삼락스테이지 공연이 끝나자 그린스테이지에 사람이 꽉 찼다. 거진 15, 6년만에 내한이지만, 스타세일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나 많다. 무대에 등장한 제임스는 부쩍 늙었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했다. 오랜만에 내한, 오랜만에 무대라 어색한지 (아무리 봐도 극 내향성 인간이다.) 뻣뻣한 모양새였는데, 사람들의 호응과 환호, 떼창에 점점 더 긴장이 풀리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공연 시간이 길지 않으니 이름난 곡들을 잇달아 불러주었다. 워낙 좋아하는 밴드라 가사까지 다 아는 곡들이어서 함께 불렀다.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섰으니 무대에서도 따라 부르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입을 더 크게 벌리곤 했다. 그린 스테이지를 꽉 채운 관객들도 스타세일러의 무대를 즐기며 열정을 뿜어냈다. 그래, 나이가 무슨 큰 차이라고. 즐기면 그만이지. 나는 십 수년 전부터 이 밴드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젊은이들도 몇 년전부터 또는 이번 락페스티벌로 알게 되고, 좋아했을 수도 있지. 


그런 마음을 먹고 실리카겔의 무대를 본 나는, 또 다시 나이 탓을 하고야 말았다. ㅋ 이름난 건 알지만, 음악은 들어본 적 없었는데, 곁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의 떼창을 보며 그저 나이차이를 떠올리고야 말았다. 마지막 카사비안의 무대는 나도 뛰면서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무릎이 아파서 오래 뛰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Fire를 내지르며 부산락페스티벌을 마무리했다. 락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나도 즐길 수 있다! 라고 소심하게 외쳐본다. 락 앤 롤 포에버! (202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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