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봉아, 대학가자.
2016년 5월에 기르던 강아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는 안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다. 말티즈였는데, 한 배에서 태어난 새끼 가운데 제일 작은 무녀리였다. 다 커도 2킬로그램을 겨우 넘었던 녀석. 마지막에 나이가 들면서 살이 쪘을 때에야 겨우 2.7킬로그램이었다.
강아지를 키워 본 적 없던 식구들도 마음으로 한 가족이었다. 어느새. 그럴만도 하지. 11년이나 같이 살았다. 대학교 졸업 전에 1년 먼저 키우고 졸업하며 집에 데려와 11년을 살았다. 동생이 키우던 개인데 어느새 우리집 개가 된 녀석.
부모님 집에 살 때는 내 방과 동생방이 마주 보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늑대과의 습성이 남아있어서 자는 동안 꼭 무리를 살펴야 한다. 녀석은 꼭 자다 일어나서 가족들의 방에 들어가 잘 자는지, 살아있는지를 확인했다. 동생과 자다가도, 어느새 열려있는 문으로 나와, 마찬가지로 열어놓은 내 방 문으로 들어와서 내 곁에서 자곤했다. 팔베개를 하고 자길 좋아해서, 코로 이불을 들추며, 킁 소리를 내고는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곤했다. 녀석이 떠났을 때 가장 그리웠던 게 이거였다. 겨드랑이 사이에 조그마한 얼굴을 묻고, 포옥 하고 내쉬던 한숨과 콧바람.
어찌된 일인지, 동생보다 나를 더 좋아해서 결국 나와 자는 날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동생은 녀석이 싫어하는
발톱깎기, 목욕, 온갖 자질구레한 돌봄을 했으니, 말하자면 엄마같은 사람이고. 나는 뭐든 다 해주는 이모같은 사람이었던게지.
몇 년이 지나도 마지막을 잊을 수는 없다. 천천히 식어가며 굳어가던 몸과 윤기를 잃는 털 같은 것들. 다시는 볼 수 없는게 죽음이지.
그래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엉엉 울었다. 산책하는 개와 사람을 봐서. 고개를 들고 울어서 목 둘레에 눈물이 목걸이처럼 젖어있곤 했다.
그런데, 동생이 키우고 싶어했다. 반대했지만, 한 번만 같이 보러가자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나섰다. 물론, 나서면서 알았지. 보러가면 안 데려올 수 없을 거란 걸. 갈색 푸들. 너는 그때 우리집에 와서 올 8월에 아홉살에 들어섰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손바닥 위에 올라갈 정도로 작았다. 너무나 가벼웠던 녀석은 처음부터 견성이 뚜렷했다. 안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팔을 베고 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영역이 확실하면서도 끊임없는 애정과 손길을 갈구했다. 푸들종특이라는데 솔직히 제멋대로 왕자님이다.
말티즈를 보낸 지 얼마 안 지나서, 자꾸만 견주게 되고 정이 안 갔다. 석달은 그저 조그만 강아지, 정도였다. 그러다 점차 녀석을 알아가며 정이 들었지.
요즘 소리 내서 묻는다.
“너 몇 살까지 살거야?“
말티즈가 12년 살았으니, 이 녀석도 그 정도 산다치면 이제 3년 정도 남았나. 그리 생각하면 참으로 짧은 생이다. 그래서 도대체 몇 살까지 살 건지, 자꾸만 소리내어 묻게된다.
아마 이 녀석을 보내고 나면, 다시는 기르지 않겠지.
너무 더워지기 전에 마지막 강아지를 기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산책을 거르지 않도록, 날마다 데리고 나갈 수 있도록. 대학 들어갈때까지 한 번 살아볼테야, 달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