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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20. 2024

너에게 주고 싶은 것

조카바보이모

2020년 12월 생. 

너는 한 살 손해보면서 우리에게 왔다.

이제 곧 만 네 살이 되는 너는, 친구들보다 11달이나 손해를 봤지만,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 나이 또래만큼만 자란다. 


모든 아가들이 그렇겠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알록달록한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너는, 내가 입은 티셔츠가 조금이라도 화려하면 내 품에 안겨서 옹알이를 하며 옷에 그려진 폴 매카트니, 푸 파이터스 같은 락밴드 그림을 쥐어뜯곤 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밴드에 관심을 가지는 아기가 너무 신기했지. 


2020년, 네가 오기 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떠났던 마지막 여행인 뉴질랜드에서 담아온 향유고래 영상을 좋아했다. 말이 통하기 전, 아직 걸음마를 떼기 전이고 내 어깨를 짚은 채로 흔들흔들 서서, 곁에서 향유고래가 물 속으로 들어가며 커다란 꼬리가 나온 영상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던 너.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꼭 너와 함께 그 고래를 보러가자고 속으로 다짐하고, 너에게 소리내어 말하기도 했지.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이모랑 가자. 깊은 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고래에게 인사하러. 


평창 계촌 클래식 축제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온다고 해서, 두 돌이 채 안 된 너를 데리고 갔다. 과연 집중해서 볼 수 있을지 걱정을 했지만, 너무나 놀랍게도 음악에 빠져들던 조카. 조카는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두 돌이 지나고 나서는 서울재즈페스티벌도 같이 놀러간다. 엄마와 이모가 해마다 가는 페스티벌인데, 한 번 시도해볼까? 하고 데려갔더니 세상에. 너무나 잘 논다. 올해도 하루 잘 놀고 이모는 하루 더 보고 간다고 하자, 차 안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더랬지. 자기도 더 보고 싶다고. 


말문이 트이고, 너와 내가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게 되면서, 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 집에 놀러오면 먼저 여행에서 사 온 마그넷을 가지고 놀았다. "이건 어디야?" 연거푸 묻는 너는, 이모가 다녀온 모든 나라에 가 보겠다고, 가고 싶다고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럼, 이모랑 같이 가야지." 하면 딱히 좋아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 아이인 내 조카. 당연하다는 듯이 금세 다른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곤 한다.  


항상 거실에서만 놀다 가던 조카가, 그날따라 유독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내 곁에서 놀다가, 전면 책장 맨 위에 올려두었던 만화 원피스 피규어를 발견했다. 예전에 한참 만화책을 볼 때 사두었던 고잉메리호 피규어인데, 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더니 조카의 눈에 띄어버렸다. "이게 뭐야?" 라는 말을 엄마, 아빠 다음으로 한 녀석이라, 돌이 지나서부터 "이게 뭐야?" 집게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물어봤다. '원피스'라는 만화가 있다, 주제곡은 이거다, 하면서 코요테가 부른 주제가를 들려주었더니, 계속, 계속, 계속 들려달라했다. 그러더니 며칠만에 노래를 다 외웠다. 원피스 캐릭터와 능력을 설명해주었더니 그것도 다 외워서 이야기를 만들면서 논다. 차를 타고 어디로 갈 때는 동생, 나, 조카가 있는 힘껏 노래를 한 번은 불러야한다. 만 삼 세 어린이와 원피스 주제가를 목놓아 부르는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 웃겼다. 지금은 오히려 더 신이 나서 부르곤 하지만. 


언젠가 조카가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면 보여주려고 사 놓은 책이 많다. 얼마 전에는 원피스 만화책도 샀다. 눈치 빠른 조카가 덕질방에 들어가더니 투명한 상자에 든 원피스 만화책을 알아보고는 얼른 꺼낸다. 글씨를 못 읽는 까막눈이지만, 뭐라 뭐라 이야기를 만들며 논다. 정말 웃기는 녀석이다. 


조카는 콜드플레이도 좋아하는데, 이건 동생의 영향이다. 차에서 음악을 듣다가 어른 노래로 넘어가는데 그 첫 곡이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이다. 2월에 태국에서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고 왔다. 내년 4월에 우리나라에도 오지만, 전세계를 다 돌겠다는 기세로 투어를 하는 콜드플레이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안달이 나서 태국까지 쫓아가서 공연을 보고 왔는데,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조카의 눈에 굿즈 티셔츠가 꽂혀버렸다. 당장에 왜 자기 거는 없냐고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몰랐는데, 굿즈 티셔츠를 내놓으라니. 그때부터 조카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 티셔츠 어디 있냐고 물어서, 결국 공식홈페이지에서 주문을 했다. 영국에서 비행기타고 온 콜플 티셔츠를 입어 본 조카는 딱 한 마디를 했다.

"너무 커. 작은 거."  (그래도 이모랑 같이 입으려고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와서 잠깐 입었다.)  


네가 커갈수록,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겠지.

지금은 온 세상이 다 자기 천하라서, 듣고도 못 듣는 척 하는 일이 잦은데, 조금 더 크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조금 더 크면, 이모가 다녀온 여행지를 같이 가겠다고 나서겠지. 지금도 말로는 '이모네 집에서 잘래.'라고 하지만, 아직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도 내년에는 잘 수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 앞으로 같이 할 일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들,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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