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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Apr 16. 2018

[메트로폴리탄_3] 물 주전자를 든 여인 by 베르메르

렘브란트가 화려한 빛과 그만큼 깊고 어두운 그림자, 즉 강렬한 명암 대비의 대가라면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창, 그것도 주로 화면 왼쪽으로 난 창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빛의 화가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감상하던 어떤 이가 그의 그림을 비추는 빛이 어디 있는지 보고자 그림 뒤를 뒤집어 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의 빛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우리가 매일 보고 느끼는 일상의 빛이다. 이처럼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빛의 효과를 내기 위해 베르메르는 '푸앵틸레'(pointillés)라고 하는 일종의 점묘법을 이용했다. 푸앵틸레는 작은 점들을 매우 엷게 점점이 칠하는 기법으로, 이를 통해 그의 작품 속 사물들은 청명한 빛으로 자연스럽게 반짝일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작품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내를 비추는 자연스럽고 은은한 빛'만이 베르메르 그림의 매력 전부는 아니다. 그의 그림에는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대체로 왼쪽으로 난 창에서 햇빛이 스며들어 실내를 맑고 청량한 공기로 채우는 가운데 1명 내지 2명의 인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이 묘하게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 당겨서 유독 더 많이 집중하게 만든다. 이유는 시점에 있다. 베르메르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림 속 모델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앉아서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럴 경우 모델을 우러러보게 되고, 그 결과 모델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베르메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소실점이 모델의 눈 높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도록 배치함으로써 모델이 너무 과하게 과장되지 않도록 조절했다.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매우 주도 면밀하게 의도된 배치이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알 듯 모를 듯한 매력으로 관람자를 사로잡는다. 이 작품, <물 주전자를 든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관람자인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작품 속 모델의 행동에 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저 여인이 창문 밖으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호기심이 일고 고개를 돌려 같이 창밖을 내다보고 싶어지게 된다. 


[ 물 주전자를 든 여인 ]

다만 베르메르의 창문은 열려 있는 상태로 표현된다고 해도 관람자는 그 창을 통해 밖의 거리를 볼 수 없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여인이 문을 살짝 열고 있는 순간을 포착해 내고 있지만 그녀가 보는 거리를 우리는 볼 수 없다. 사실 베르메르의 창문은 관람자의 입장에선 또 다른 벽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빛으로 이루어진 벽일 뿐이다. 게다가 여인의 앞으로는 두꺼운 카펫이 깔린 탁자가 놓여 있어 정면조차도 관람자와 그림 속 모델 사이의 시야가 자유롭지 않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대다수는 관람자의 시선을 막는 방해물이 항상 그림 전면에 배치되어 관람자가 작품 속 공간을 마음껏 들여다보는 것을 막고 있다. 그 결과 작품 속의 공간은 온전히 여인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이 된다. 베르메르의 다른 몇몇 작품과 같이 이 작품도 남성이 같이 묘사되었다면 그는 작품 속 여인의 내면에 있는 남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 부재한 작품에서는 편지나 지도와 같은 소품이 그를 대신한다. 이 작품에서는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지도는 바다에 눈을 돌렸던 당시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 속 여인이 마음에 담고 있는 남성과 관련된 외부 세계를 뜻한다.    


이 작품, <물 주전자를 든 여인>에서는 남성이 없이 여인 혼자 있지만 그녀는 분명 누군가를 기다리며 몸단장을 하고 창밖을 살피는 중이다. 물병과 대야 그리고 어깨에 두른 망토는 여인이 씻는 중임을 말해준다. 즉 여인은 작품 화면에는 없는 남성을 기다리며 몸단장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베르메르는 단순히 일상생활의 한 단면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숨은 의미를 담았으며, 언제나 은유의 장치를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그림의 해석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씻다’라는 주제는 순결함과 순수함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주전자는 도덕적 정화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에로틱한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순수의 상징인 물을 따르는 주전자는 정신세계를, 테이블 위의 보석 상자와 벽의 지도는 세속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색의 조화에 대해서도 한번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균형 잡힌 구도, 유리창을 통과하여 여자의 얼굴과 벽 위에 반사되는 청아하고 밝은 빛 외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보색 조화 역시 이 작품이 가진 두드러진 매력이다. 베르메르는 노란색(또는 황토색)과 파란색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란 빛이 도는 벽과 여인이 입은 옷에서 빛을 발하는 파란색의 어우러짐이 강렬하면서도 조화롭다. 그는 극단적으로 먼 색조를 함께 사용하는 대담한 채색으로 시선을 잡아당기면서도 세련되게 어울리게 할 줄 아는 재능이 반짝이는 화가였다. 


[ 같이 보면 좋아요 ]

[ 신앙의 알레고리 (Allegory of the Catholic Faith) ]

일반적인 베르메르의 화풍과 달리 매우 크고 명암 효과도 강한 작품으로, 베르메르 말기, 화가로서의 역량이 집대성된 걸작이다. 
은유와 상징의 대가의 말기 작품답게 이 작품에 표현된 모든 것은 각자의 뜻이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지구본 위에 발을 얹고 눈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여인은 지상에 발을 딛고 천국을 향한다는 의미이다. 여인은 지구, 세속적 욕망을 딛고 진리를 따르려 한다. 여인의 뒤로는 야곱 요르단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림이 걸려 있는데, 원작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지우고 그렸다. 이는 가슴에 손을 얹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의 현신임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는 사과와 사탄의 현신인 뱀이 있는데, 뱀은 성당의 주춧돌에 깔려 죽어 있다. 예수에 의해 물리쳐진 사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직접 가서 감상한다면  이 작품을 통해서 베르메르 빛의 비밀인 푸앵틸레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더욱이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작품이다. 그림에 다가가서 자세히 보고,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보면 그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젊은 여인의 초상 (Study of a Yong Woman)]
베르메르의 가장 유명한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필적하는 그림이다. 두 작품은 모델의 구도, 광선의 처리 등에서 비슷한 기법을 보여준다.  
모델은 베르메르의 딸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신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이 작품에서는 모델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없어 베르메르가 인물만으로 조형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연습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작품은 단순하지만 정교한 구성, 차분한 색채와 친밀한 분위기에서 드러나는 예민함이 일품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다소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반면 이작품의 모델은 맑고 투명한 수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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