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TBC,2021)>
"5년간 착실히 해온 성과야."
마시바 쿠루미의 개인 계정 팔로우 수가 또 올랐다. 이제 10만 명이 코앞이다.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온라인 인테리어 샵 'el Arco lris'의 홍보를 맡고 있는 마시바 쿠루미(카와구치 하루나 분)는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 전부를 사랑했다. 상품을 보는 대표의 안목이나 운영 철학을 존경했고 그래서 회사 제품을 더 많이 소개하기 위해 개인 계정을 시작했던 게 5년 전이다. 10만이라는 숫자에 가까운 팔로워 수에 후배는 혼자서 계정을 운영해나가는 마시바가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꾸준히 해온 성과라고 성실히 보내온 시간에 공을 돌렸다.
이 대사는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TBC, 2021)> 1화, 극 초반에 나온다. 시작하고 한 2-3분 정도 지점이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나온 대사라 처음엔 무심코 흘러들었을 정도다. 어찌하다 다시 본 1회에서 이 대사가 들린 건 성실한 그녀의 '열심'이 담긴 5년이란 시간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지붕(셰어하우스)에 살면서 다양한 사랑에 빠지는 심쿵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네이버 참고). 하지만 이 소개는 모랄까 조금 엉성하다. 마시바가 셰어하우스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슌(요코하마 류세이 분)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보여준 심쿵 달콤한 장면에 대리 설렘을 만끽한 건 사실이지만, 마시바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고민을 갖는지 그래서 슌을 만나면서 달라지는 그녀의 삶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다. 드라마에서 말하는 '꾸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드라마를 보는 수밖에 없다.
"팔로워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사진을 올려야 하니까. 0단계의 나 같은 건 원하지 않으니까."
회사를 사랑하던 애사심은 회사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게 했고, 계정을 통해 좋다고 생각한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던 마음은 그 속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원하는 모습에 반응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5년이 지면서 '마시바 쿠루미'는 사라지고 '마메시바시바(계정명)'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딜 가도 완벽히 꾸며야 했고, 하루 종일 울리는 알람과 아점, 점심, 저녁 정해진 시간에 맞춰 게시글을 업로드하느냐 하루가 분주히 흘러갔다.
하고 싶은 것보다 요구받은 일들이 먼저였던 마시바에게 슌은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 무렵 회사도 그녀에게 힘들어 보인다며 무리하지 말고, 개인 계정은 그만둬도 된다고 말했다. 5년을 성실히 해온 노력이 전부 다 뭐였는지 허탈해하는 그녀의 상실감이 알 듯했다. 하지만 슌이 말한 '무리'는 성실히 해온 그녀의 '열심'이 아닌, 열심의 방향에 있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원하는 기대를 충족시켜주려는 열심. '꾸미는 사랑'은 이런 방향의 열심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시바를 통해 보여주는 꾸미는 마음은 그녀에게만 있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셰어하우스에 사는 화가, 하세 아야카(나카무라 안 분)는 온라인 아트 갤러리에 작품도 게재하고 직접 개인전을 열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개인의 만족과 별개로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다. 슬럼프를 겪은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셰어하우스 동거인 테라이 하루토(마루야마 류헤이 분)의 상담 환자도 인정받던 간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나자,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무기력에 친절한 하루토에게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드라마 대사를 손글씨로 써서 코멘트와 함께 업로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7년째 운영 중이다. 팔로워 수는 마시바 계정과 비교해 1/10 수준이고, 그녀처럼 내 일상이 계정에 직접적으로 담기는 건 아니지만 코멘트에 나란 사람이 담긴다. 그래서 콘텐츠를 올리면 내 글이 어떻게 해석될지, 나란 사람이 어떻게 비칠지 신경이 쓰였다. 가끔은 계정에 담기는 나와 진짜 내가 다른 사람 같다고 느낄 때도 있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쉼의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밀려오는 SNS에 몸과 삶의 균형이 망가졌던 시간도 있었다.
나도 친구들로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마시바가 그랬듯 나 또한 처음엔 서운했지만 몇 년을 반복해 들으면서 집착하고 있었구나, 처음 가졌던 즐거움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업로드의 압박에서 벗어나(못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도 챙겨보고, 어느 주말엔 아무것도 보지 않기도 한다. 반응을 살피되 지나치게 곱씹기보다는 생각을 비우려고도 하며 나만의 시간, 나의 필요를 살핀다. 이런 시간이 드라마를 보며 함께 수다 떨듯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던 처음 마음에 집중하게 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마시바도 슌과 대화를 나누며 처음 가졌던 마음을 깨닫는다. 좋아서 해오던 일이다. 회사에 대한 애정과 좋은 제품을 나눌 때 파생되는 기쁨이 좋았다.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하는 마시바의 고백을 들으니 드라마에서 말하는 '꾸미는 사랑'의 이유는 어쩌면 '좋아하는 마음'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세 아야카나 상담을 받던 환자도 그 시작은 좋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계정을 운영하는 이유이자, 꽤 많은 사람들의 동기가 되는 마음이기도 할 테다. 다만 치켜세우는 말들에 휘둘려 실패해본 경험이 있던 슌은 무리한다고 해서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고, 만족 또한 얻을 수 없다는, 먼저 알게 된 사실로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실패한 경험은 쓰지만, 해보고 싶은 걸 해봤던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놓친 마시바의 진심은 '이거다'싶은 빛나는 물건을 직접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건 해보라고, 무리하지 말고 좋을 대로 해보라는 슌의 말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언젠가'가 아닌 '지금'을 만드는 하야마 소고(무카이 오수마 분) 사장을 보며 마시바는 용기를 낸다.
마시바에겐 10만 명 이상의 팔로워가 있고 전 세계와 이어져있는 힘이 있다. 이 말은 소고 사장이 해준 말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그녀에게 그 일을 할 충분한 힘이 있다고, 이리저리 휘둘렸던 시간으로 기억될지 모를 수고했던 지난 5년의 시간이 가진 의미를 전해주려 했던 것 같다. 이런 사장이니 마시바가 존경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어 일을 해던 것 같다(소고 사장 멋짐!). '꾸미는 사랑'의 시간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을 오롯이 누린 시간이기도 하니까.
먼저 이 드라마를 본 친구가 마시바를 보는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분명 내 생활은 마시바랑 가까운 부분이 있어 조금 더 공감됐지만, 타인의 인정을 바라며 시선을 의식해본 '꾸미는 사랑'에 대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라 생각된다. 보이고 표현하는 게 익숙한 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이 드라마를 통해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마시바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이 글에도 드라마의 제목만큼 셰어하우스 사람들의 매력이나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족같이 되는 드라마의 순한 매력을 다 담아내진 못 한 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아쉬운 부분은 드라마를 본다면 해결될 일! 드라마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는 일본 드라마도 많은 웨이브(wavv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
편성 일본 TBS, 2021
연출 츠카하라 아유코 각본 카네코 아리사
카와구치 하루나, 요코하마 류세이, 무카이 오사무, 나카무라 안, 마루야마 류헤이, 나츠카와 유이 출연
본 원고는 wavve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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