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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30. 2023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촌스러운 멋에 대해

책 <인생은 순간이다(김성근, 다산북스, 2023)>


김성근 감독님 에세이 <인생은 순간이다(다산북스, 2023)>를 읽고 있다고 하니, 아는 동생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꼰대 같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감독님에 대해 아는 건, 미디어에서 본 딱딱한 표정의 얼굴이 전부인 동생이었다. 나 역시 JTBC 예능 <최강야구>를 보지 않았다면, 어렵기만 할 어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조금 알게 된 지금,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절대."


<최강야구>에 입덕하게 된 건 52회 부산고와의 경기에서 이대호 선수가 4 연속 홈런을 날린 짤을 본 게 계기가 됐다. 그날 이후 매일 저녁 1편씩 재주행을 했고, 미공개영상과 선수들의 과거 이력에 인터뷰까지 찾아봤다. 몬스터즈 직관 경기에 다녀왔을 정도로 야구에 무관심했던 내가 그야말로 푹 빠졌다. 그러면서 박재욱 선수라는 최애도 생겼지만, 매회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김성근 감독님이셨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선수들의 연습을 직접 봐주시고,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수 연습 타구를 던져주시는 모습은 나태해진 나의 일상에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에세이에는 감독님의 젊은 선수 시절 이야기부터 담겨있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습과 다른 게 없다. 한결같이,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으셨다.


힘들면 쉬어가길,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위로가 넘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끈기, 절박함. 이런 표현은 꼰대, 구시대적이고 편협한 사고로 가르치려 한다며 불편하게 여겨지고, 환영받지 못하면서 이런 삶의 자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님의 단호한 메시지는 내게 건강한 자극이 되어 해내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아, 내게 이런 불편함이 필요했구나!


올해 초, 새로운 곳에서 3개월 기고 제안을 받았다. 어쩐지 그 3개월 동안 쓰게 될 세 편의 글이 테스트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쓰며 열심을 냈으나 계약은 연장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실력이 부족해서였다. 다만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감독님의 글을 읽으며 그때가 자꾸 생각났다. 비겁하게 다른 핑계를 대려고 했던 내가 창피했고, 그만하면 잘한 거라는 다정한 말들에 안주해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안일하게 시간을 보냈던 게 부끄러웠다.


감독님은 야구의 신, 야신이라 불리지만 아직도 야구를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계속 “어떡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 머리를 싸매며 계속 야구 생각을 한다고. 그러면서 더 나아진다는 감독님의 말은 패배적인 감정에 눌려있던 나의 의지를 새롭게 했다. 여기서 멈추면 실패가 되지만, 문제를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행동해 가면 더 나아지지 않겠냐는 힘을 얻었다. 움츠러들 때가 아니라 더 많이 움직여야 할 시기다.


이겨야만 살아남는 프로의 세계를 살았고, 지금도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최강야구> 포맷 때문에 감독님은 이기는 경기를 하기 위해 꽤나 고심한다. 그 모습만 보면 결과 중심적 인물로 느껴지지만, 감독님이 반복해서 말하는 건 결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발전’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야구는 9회까지 공격과 수비를 반복한다. 긴 시간 경기를 하다 보면 한 이닝 사이에도 경기의 흐름이 크게 바뀌기도 한다. 오죽하면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고 하지 않은가. 다 끝난 것 같은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역전하기 위해, 반대로 점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긴장을 놓지 않고, 순간순간을 짙은 농도로 채운다. 그래서 역전을 이룰 때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야구가 곧 인생이라고 하는 감독님은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결과를 속단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반복해 말해주시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본질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살아온 시대와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다르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자세, 그 본질만은 변하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 순간순간을 짙은 농도로 축적하는 시간들. 구태의연해 보이고, 꽉 막힌 답답한 소리 같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성공을 거두는 게 어려운 게 인생이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 불편한 시간을 기꺼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촌스러운 이 멋 부림을 폼나게 부려보고 싶어서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설렜다.


감독님의 이런 말이 더 와닿은 건,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근엄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선수와 팀을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걸 걸어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감독님의 진심을 알기에 에세이에 담긴 모든 말이, 나를 향한 다정한 응원으로 들렸다.


항상 건강하시길, 오래 마운드 위에 낭만을 보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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