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행을 하면서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0: 40-42
아침 9시까지 청계산 앞에 있는 ‘솟솟 618’로 가야 했다. 눈을 떠보니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어둑한 하늘, 습한 공기, 그 사이로 흐르는 비 냄새,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이불속 따뜻함, 그리고 토요일. 모든 조건이 늦잠 자기 최적의 상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톡을 봤지만 ‘비로 인해 오늘의 진행하기로 한 프로그램은 취소되었습니다’와 같은 메시지는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솟솟 618’로 향한 이유는, 지난주 신청한 코오롱이 주관하는 “솟솟하이킹, 청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청계산을 약 3 M 하이킹 후 청계산 입구에 있는 수련장에서 80분간 히타 요가를 하는 일정으로 산과 요가, 둘 다 좋아하는지라 신청했는데 하필 비가 오다니. 게다가 다음 주에는 예정에 없던 새로운 일에 투입되면서 주말에 체력을 비축해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음이 소란했다.
다행히 산을 오를 시간이 되자 레인재킷만 입어도 충분할 정도로 빗줄기가 줄었다. 그래도 미끄러울 수 있으니, 우린 조심히 그리고 평소보다 더 천천히 산을 올랐다. 등산객이 많기로 손에 꼽히는 청계산이었지만, 비로 인해 산은 한적했다. 조용했고, 고요했다. 나는 자주 하늘을 봤고, 나무 사이 숲을 봤다. 일상이었다면 비를 맞고 걷는 게 이상해보일 수 있었겠지만, 이곳 산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인솔자의 말은 소박한 일탈감도 느끼게 해 주었다. 우중산행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중간쯤 올라가서 우리는 숲 안 쪽, 나무로 둘러진 평평한 땅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잠시 몸을 스트레칭하며 가벼운 요가 몇 동작을 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고. 요가는 숨에 집중하게 한다. 살아있는 한 내내 하는 게 숨쉬기라지만, 이런 기회에 나의 숨을 들여다보면 그 숨이 얼마나 짧은지 놀란다. 정말로 나는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해 보니 참, 분주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마음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 내달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글 쓸 생각을 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작업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면서는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먼저 가버리는 마음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깊게 느끼고, 단단한 완성도를 얻고 싶었다. 바쁘더라도 평온한, 어떤 이들이 가진 기품 있는 고요한 삶의 태도를 사모했다. 하나 그렇지 못해 많은 것을 하지만, 어느 것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초라한 나의 삶을 부끄러워했다. 공허함과 허탈함은 내가 매년 앓고 있는 연말병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요가 선생님은 우리에게 하나, 생각해 보라며 질문지를 나눠 주셨다.
“오늘의 나는 어떤 목적과 이유로 걷고 있고, 숨을 쉬는가? 알아차렸다면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
재미있게도 이 날 참여한 참가자 대부분은 나와 같은 목적지향적, 완벽주의 성향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알 것 같은 동질감에 우린 웃었다. 여기 오기까지 다들 분주했고, 자신을 질책했으며 여유가 없었다고. 그래도 지금, 조용히 자신의 숨을 오롯이 느끼는 이 시간을 통해 모처럼 자신을 다독여 주고 있는 것 같다는 감상을 나누었다.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면, 사실 몇 가지만 하든 혹은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다.”
선생님의 질문지를 받고 떠오른 구절이다. 앞뒤전후의 해석은 필요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가지의 족한 것, 빼앗기지 않을 것은 주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이르신 것이겠지만, 많은 일이 염려와 근심을 가져온다는 건 2천 년 전에 입증된 셈이다. 그로 인해 마음이 힘들어지는 건 성경 속 예수님도, 내 자신도, 누구도 바라지 않을 일이다. “오늘 나는 “ 이면 충분하단 생각을 하게 됐다. 걱정과 근심을 가져오는 많은 일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밥을 먹으면 밥을 먹는 그 순간에, 책을 읽으면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책을 읽는 그 시간만 생각하는 것. 말은 쉽고, 평소에도 그러자고 자주 마음을 다독였지만 실패했다. 아마도, 많은 역할과 그로 인한 책임이 수반되면서 동시진행형 인간이 되어버린 환경적 요인이 큰 것 같다.
그렇기에 이 문장이 더더욱 위로가 되었다. 사실 몇 가지만 하든 혹은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다. ‘족하다’는 모자람이 없다고 여겨 더 바라는 바가 없다, 넉넉하다의 뜻이다. 한 가지만 해도 괜찮다. 한 가지만, 한 가지씩. 그래도 해야 할 여러 일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전부를 아우리지 못 한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산을 오르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몸을 뻗어낸 수업에 집중하는 동안 몸이 한껏 가벼워졌다. 집에 와서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짧은 낮잠을 잤다.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고요하다. 이후 해야 할 여러 일들을 해 냄에 나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본다. 매일, 나도 모르게 해 내온 이 작은 행동이 오늘도 나를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숨 쉬듯 그렇게. 하나씩,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하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한 가지씩 해 내며 올 해는 연말병 없이 지나가며 내 안에 쌓은 풍성함을 나눌 수 있게 되길. 결국 모든 일이 하나의 끝에서 만나겠지만, 그 모든 일 중 이 한 가지를 가장 잘 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