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컨, 다산책방, 2023)
말 없고 눈치 빠른 아이를 보며 어른스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 표현이 틀렸고, 어른들만의 편리한 해석이란 생각이 든다. 분위기를 살펴 말을 아끼는 건 세상 물정에 밝은, 삶에 경험이 많은 어른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다. 그러니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고 ‘어른스럽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컨, 다산책방, 2023)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부모가 ‘소녀’를 아이가 없는 먼 친척 집에 맡기면서, 그 집에서 생활한 얼마간의 시간이 ‘소녀’의 시선으로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대가족에서 자란 친구가 있는데, 집에 항상 사람이 있어서 말이 빨리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소설 속 ‘소녀’는 눈치가 빨랐고 말 수는 적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나무가 아프다고 말하는 딸에게 아빠는 “수양버들이잖아”, 무신경하게 답한다. 아마 동생을 돌보며 농장 일까지 해야 했던 엄마와는 ‘소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소녀’는 “네”라는 대답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대답하는 대신 눈치껏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부모의 요청이 없이도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왔을 ‘소녀’에게 가족은 더 말을 하지 않을 테다. 말이 없는 ‘소녀’의 모습은 애정 담긴 보살핌을 받지 못 한 시간을 보여준다.
그렇게 지내온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 내외에 맡겨지면서 따뜻한 보살핌 속에 제대로 대답하는 법이나 책 읽는 법 등을 배우며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소녀’를 돌보는 키셀라 아저씨 내외야말로 말이 적은 사람들이다. 자녀가 없던 두 사람은 자연히 말 수가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킨셀라 아저씨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소녀’를 칭찬할 때도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했다. 그건 손이 많이 가지 않아 그 점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녀‘는 킨셀라 부부 집에 온 첫날 이불에 실례를 하고 만다. 이 부부에게 ’소녀‘는 사랑으로 자라야 할 어린 소녀였을 뿐이다. 맡겨진 ‘소녀’를 불행하게 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가엽게 여기는 실언도 없었다. 안쓰러움에 혼잣말을 하긴 했어도.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건 킨셀라 부부였다. ‘소녀’는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애정 어린 시간을 보냈다. 소란하지 않은 그렇다고 적막하지도 않은 다정한 대화로.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평온함으로. 킨셀라 부부는 무엇이 중요한 줄 아는 어른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이 책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듯하다던 옮긴이의 말에 공감한다. 전자책 기준 112페이지라는 소설 분량조차 소설이 말하는 중요성을 담아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의 원작으로 한 영화 제목이 [말 없는 소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며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긴 대사나 세세한 묘사보다는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인 듯하다.
지문이나 인물 간의 대사로 상황과 감정 등을 설명하는 건 쉽다. 그런 문장은 독자도 이해하긴 좋지만, 감흥을 불러일으킬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함축적인 표현으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문체가 상상력을 자극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를 상상해 보았다. 집의 분위기는 여전했겠지만, ‘소녀’가 킨셀라 부부 집에서 경험한 일들이 ‘소녀’의 내면을 일깨웠을 테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드러났다. 킨셀라 아저씨에게 달려가던 ‘소녀’의 행동은 ‘소녀’가 자신의 변화된 감정을 알아차린 순간이었고, 독자로서 ‘소녀’의 성장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니까 많은 말이 변화를 가져오는게 아니었다.
더욱이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소녀’가 말한 마지막 말은 중의적으로 해석되면서 복잡 미묘한 ‘소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서부터 ‘소녀’의 감정을 곱씹게 되면서 또 다른 시작이 펼쳐지게 된다. 작가가 독자에게 보인 믿음이 통한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다스러운 편이지만 덕분에 많은 말이 남기는 공허를 안다. 그래서 때때로 침묵의 시간 속에 편안을 누리기도 하고, 함께 있을 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는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많은 말이 필요 없는, 하지만 충분이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정도의 필요한 말만 담은 이 책에는 그런 편안함이 있다. 소란하지만 다정함은 사라진 세상에 고픈 그런 편안함.
그런 책을 읽고 너무 소란한 글을 쓴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