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Dec 15. 2023

새롭게 떠오를 아침을 위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알 것 같을 때가 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겪은 일에 나 또한 경험이 있는 경우 가장 쉽게 알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된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로 전후사정이 이해될 때도 어떠한 심정일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호평을 받은 배경에는 이러한 ‘알 것 같은’, 공감이 있다.



시리즈에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정신 질환이라 말해지는 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의 마음에 생긴 병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고 때문이 아닌, 일상에서 시작된다. 정신없이 자녀를 키우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어느 날, 취업 준비로 불안해하던 그때, 압박이 심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매일매일과 같이 평범해 보이는 순간에 인물의 마음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리즈는 이런 인물의 상황을 깜빡이는 노란불에 비유한다. 빨간불이 되기 전 멈춰 서라고 경고하는 노란불. 하지만 대부분은 사는 게 바빠 마음이 보낸 사인을 놓친다.


“원인은 우울증이세요. 바쁘게 사시다 보니까 본이니 우울증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세요. 평소에 피곤하다거나 무기력하다거나 집중력 떨어진다 그런 느낌 못 받으셨어요?”


아이가 아픈 것 같아 정신의학과를 찾은 주영(김여진 분)에게 의사는 딸이 아닌 주영, 그녀에게 검사를 받길 권한다. 주영은 우울증에 의한 가성치매였다. 의사가 말한 일종의 전조증상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기본값 아닌가? 뭉친 어깨를 성의 없게 대충, 손으로 몇 번 주무르며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는 것으로 그러한 느낌을 떨쳐내려 한다.


주영도 그랬다. 바쁘니까, 정신없이 사니까 그런 거지 우울증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시리즈는 “인생에서 노란색 경고등이 깜빡일 때”를 주영을 통해 보여주며 주의를 당부한다. 피로감과 우울감을 혼동하지 말라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라고. 주영 외에도 병동 사람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나의 어느 순간이 떠올랐고, 지나간 연인 중 생각나는 사람이, 상황이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마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구나. 그런 이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시리즈는 시종일관 섬세하다.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인물이 단기간 안에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정신병동이 가진 무거운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가볍고 유치하게 혹은 밝고 긍정적인 부분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들려주고 싶은 정확한 메시지는 간호사들의 O.T 장면이나 환자 사례를 두고 열리는 콘퍼런스 장면에 녹여 또렷하게 전한다. 그렇게 그저, 계속해서 공감 가는 상황을 이어 나가며 보여줄 뿐인데, 정신질환은 유약한 사람한테나 생기는 일이라는 사회에 은연히 깔려 있는 잘못된 생각을 확실히 건드린다. 그리고 이 ‘공감’은 정신질환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어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다은(박보영 분)이 우울증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이야기를 통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공감을 통한 이해의 지경을 한 번 더 확장시킨다.


신기했던 건, 이 과정에 단 하나의 불편함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처럼 이야기를 보며 편안함을 누렸다. 그래서 고마웠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아플 수 있지만 내내 깜깜한 밤만 있을 수 없듯,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이 없다고 말해준 덕분에 내 안에 예민함이라고 치부하며 덮어둔 마음이 보낸 사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노란불이 깜빡이는 걸 인지한 것만으로도 옥죄어가던 마음이 느슨해지고, 숨이 트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모두 경계에 있다고 말해준 덕분에 마음이 아픈 걸 숨길 필요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안심을 얻었고, 나의 아픔에만 메몰 되지 않고, 나와 당신, 우리로 불리는 이 사회를 향해 눈을 돌리며 아픔을 함께 슬퍼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이야말로 함께 나눠 반으로 만들어야 할 감정이니까.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라고 말해준 덕분에 내 감정을 살피고,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이기적인 일이 아님을, 막연히 느끼던 죄책감을 줄여줘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나눠줘서, 마음이 아픈 일에 유독 야박해지는 시선에 “따뜻해서 동화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에 필요한 시선을 담아줘서 시종일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 연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며 봐야 할 작품을 추천하라면, 망설임 없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권할 것이다. 새롭게 떠오를 아침을 맞이하기 전, 마음의 건강을 살피고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경계에 선 서로를 놓지 않게 두 손을 마주 잡자.

매거진의 이전글 영락없이 오고야 말 드론을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