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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27. 2024

막장에 버무려 전하는, 진짜 변화에 대한 이야기

tvN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2024

결혼한지 10년된 남편과 절친의 불륜을 목격한 날, 지원(박민영 분)은 두 사람에 의해 살해당한다. 살 날이 고작 1년도 안 남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마저도 살지 못하고 믿었던 두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불륜과 배신 그리고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고자극 전개로 시작하는 tvN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시청자의 속을 뒤집으면서 1화부터 높은 화제성을 보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기다릴 틈 없이 바로 반격의 카드를 꺼내며 매주 그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죽었다고 생각한 지원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죽기 10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원은 자신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 믿고 다시 얻은 인생을 이전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남자친구 민환(이이경 분)과 헤어질 방법을 찾는다. 다만 회귀한 인생에도 법칙이라는 게 있었다. 회귀 전 일어났던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 단, 그 일을 겪는 사람이 꼭 본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지원은 민환과 결혼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을 반쪽이라 부르며 곁에서 지원의 모든 것을 뺏어갔던 친구 수민(송하윤 분)에게 민환과의 결혼을 빼앗기는, 인생 2막의 계획을 말이다.  


회귀 전 지원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했다. 민환은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지원이 탓이라는 듯 툭하면 지원에게 “네가 문제야”라고 말해왔고, 움츠려든 순간마다 지원을 위로하던 수민은 지원의 세상을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주변을 차단한다. 그리고 자신이 없이는 지원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왔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의 가스라이팅에 노출된 지원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계속적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그랬던 지원이 회귀 후에는 다른 누가 아닌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막대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아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지원이 머리를 자르고 안경도 벗고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출근했을 때 혹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지원이 분위기를 바꾼 거라 생각했지만, 지원은 태어나 처음으로 꾸며봤는데 변한 자신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것이 변화의 유일한 이유였다. 분위기가 달라지자 지원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그녀를 무시하던 민환은 지원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자 불안감을 느꼈고, 지원에게 친절하게 군다.  하지만 지원은 이제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정공법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대신 좋은 사람들에게 두 배, 세 배 잘해주면 된다는 것도.


만약 지원의 변화가 외적인 것에만 머물렀다면 이야기는 또 다른 자극을 찾아 헤매는 사이 길을 잃었을 테다. 하지만 외모는 지원에게 찾아온 변화 중 하나이며,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지원은 자신의 감정을 살필 줄 알고, 상대방의 눈치가 아닌 그 사람의 진심을 관계에 더 중요한 요소로 둔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이 무엇이지 생각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회귀 전 인생에서 지원이 가장 슬펐던 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게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타인에게 휘둘렸던 자신의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원은 다시 주어진 소중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했고, 본질적으로 삶의 태도가 바뀐다. 그리고 이것이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원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지혁(나인우 분)이 지원에게 유도를 가르쳐 주는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 시작은 매트 위에 올라서서 상대를 마주 보는 것.” 유도에서 이기는 법이라고 알려준 지혁의 말을 듣고 지원은 ‘이는 곧 싸우는 법’이라고 이해한다. 지원이 싸우는 대상은 민환과 수민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복수가 지원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민환과 수민처럼 믿음을 무너트리고 신뢰를 빼앗아 가거나, 가진 힘으로 부당한 룰을 만들거나, 그런 부당함을 부정하지 않고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지원이 싸우는 대상은 형체를 바꾸며 다가온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싸움에서 상대를 마주 보지 못해 피하는 순간이 는다면, 그 인생은 싸움을 걸어오는 대상들에 의해 휘둘리며 결국 자신을 잃을 것이다. 회귀 전 지원처럼.



다만,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이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듯, 지혁은 유도 강습 마지막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준다. 어쩌면 지원을 돕고자 하는 지혁의 사심이 담긴 가르침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지원이 혼자서만 싸우려다 위험에 빠졌을 때 유도 연습장에서 이 대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주체적이란 표현 안에는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자주적’의 뜻이 담겨 있지만, 의존이 아닌 의지하는 도움받는 법은 내면이 건강할 때 가능하다. 이후 지원이 지혁의 도움을 받는 모습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짐을 의미하는 한편, 지원이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 성장을 보여주는 듯 했다.


맛깔난 막장에 버무려, 예상치도 못한 위로를 건네며 ’진짜‘ 변화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드라마의 지혜가 돋보인다. 현실의 삶에선 회귀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매트 위에 올라서서 마주 보고자’ 한다면 회귀하지 않아도 후회된 순간을 바로 잡는 일이 오늘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주인공이 하는 다짐이나 지원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해주는 코끝 찡한 대사들도 많다. 욕하면서 보는 중에도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진심을 놓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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