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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02. 2024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수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많은 디즈니+ 오리지널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보다가 내 이름은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해졌다. 수어는 언니가 배우고 싶어 했다. 말하는 손의 모양이 아름답다고.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했던 고등학생 때 발음이 우아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게 생각났다.


내 이름을 지화(수화에서 한글 자모음을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방법)로 하면 “양”은 쉬운 편이다. 오케이 하듯 “ㅇ”을 만들고 브이 모양으로 손가락을 만들면 ‘ㅑ‘이 된다. 자음과 모음이 평소 자주 쓰는 손의 모양이라 어렵지 않았지만, ‘보’와 ‘람’에 사용되는 자음은 두 번째 손가락만 편 상태에서 손등이 앞으로 향하면 ‘ㅏ’, 뒤로 향하면 ‘ㅗ’가 되다 보니 ‘보람‘이 아닌 ’바롬‘이 되기 일쑤였고, 첫 번째와 네, 다섯 번째 손가락을 접고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은 반만 접어야 하는  ‘ㅁ’은 꼭 한번 멈춰 선 다음 손을 접게 된다. 버벅거리면서 이름을 말하는 셈인데, 그래도 이제 내 이름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설렜다.


수어는 진우(정우성 분)의 언어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은 뒤 진우는 수어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우연히 제주에서 진우를 만난 모은(신현빈 분)은 서울로 돌아와 수어를 배운다. 모은과 진우의 인연은 제주에서 끝났다. 그럼에도 모은은 수어를 찾아보며 익힌다.  설령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을 만난 듯 인사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왔다. 그건 제주에서 진우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모은이, 그를 생각하며 준비한 예의였을지도. 이후 모은은 서울에서 진우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 준비해 둔 인사를 건넨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진우를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배운 그의 언어로 진심을 담아 전한 짧은 인사에서 두 사람의 우연은 인연이 되었다.



일본드라마 <eye love you>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유학생 태오(채종협 분)와 달리 할 줄 아는 한국어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뿐이었던 유리(니카이도후미 분)는  “생큐, 시에시에, 코쿤카, 메르시, 그라시아스” , 감사의 뜻을 가진 다른 나라 언어들도 할 줄 안다고 말한다. “모르는 나라의 언어라도 인사나 고맙단 말은 꽤 아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는 단어가 ‘고맙다’인 게 왠지 멋지잖아.”


우리가 하는 건 분명 ‘말’이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지만, 사람과 ‘말’을 한다는 표현보다 말을 ‘주고받는다’ 또는 대화를 ‘나눈다 ‘고 한다. 그렇다는 건 말이 전해지는 데 더욱 필요한 건 언어의 형태가 아닌 닿으려는 마음이겠다. 이 마음이 있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별의미가 없게 되는 듯하다. 유리의 대사처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낯선 여행지에 갈 때 그 나라의 인사말과 감사 표현 정도는 준비해 간다. 존중을 담은 이 짧은 말들은 모르는 사이에도  “관계”를 만드는, 사려 깊은 언어다. 엉성할지라도 마음을 표현하는 그 말들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짓게 하며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한다.


유리의 사려 깊은 언어와 진우를 다시 만날 줄 몰랐으면서도 수어로 인사를 준비한 모은의 따뜻한 손짓을 보면서, 종종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에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있고,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대화를 나누는 일도 부지기수다. 유창한 ‘언어’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전부가 되어야 하겠다. 멋진,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시작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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