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
“네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아니까. 난 무조건 네 편이야.”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손 끝이 차가워지는 요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송아(박은빈 분)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대생이 된 대에는 동윤(이유진 분)의 역할이 컸다. 경영대 졸업을 앞두고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딱 한 명 응원해 준 사람이 동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받아 본 적이 있다. 최약체로 소문난 내가 설산을 보기 위해 한라산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해준 친구가 나 역시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친구는 동윤이가 송아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나의 산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큰 산에 대해 갖는 부담을, 집 앞의 작은 산을 꾸준히 오르는 과정을 통해 줄여 나가게 해 주었고, 내 체력에 맞춰 정상보다 영실코스를 제안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전 날 폭설이 내렸고, 계획한 시간에 맞춰 입산 통제가 풀리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산에 발자국을 하나씩 남기며 설산을 가득 누렸다.
송아는 4수 끝에 음대에 합격한다. 하지만 대학 생활 내내 꼴찌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다뤄온 이들의 시간을 당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송화가 대학원을 포기하고, 연주자가 아닌 음악 재단에서 일하기로 선택하는 마지막 회는 포기나 실패로 보이지 않았다. 바이올린과 음악을 향한 송아의 진심은 여전했고, 사랑하기에 받았던 상처보다 사랑하면서 받은 위로와 행복이 더 컸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송아는 상처받고 또 받아도 계속 사랑하는 힘을 갖게 되었고, 그녀의 삶은 가늠할 수 없이 넓은 세계로 문이 열리게 된다.
나는 지금도 동네 산을 오르고 있고, 시간이 나면 인근 산을 다녀오고 있다. 한라산 등반 이후 트레킹이나 요가, 클라이밍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여러 사람과 교제하는 기회를 가지며 이전에는 몰랐던 색다른 재미를 경험하는 중이다. 덕분에 조금씩 늘어난 체력이 일상도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다. 송아와 내게 이런 확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시작을 고민하는 마음을 헤아려준 동윤과 그리고 나의 친구 덕분이다. 그리고 내게 그런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진 듯하다. 회사동료들 중 몇 명이 내가 신청하려고 알아보던 트레킹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였다. 운동이 삶에 없던 동료들이었기에 다른 동료는 가능하겠냐며 살짝 코웃음을 쳤지만, 매번 마음에 갖고만 있던 ‘해보고 싶은 나’와 ‘못 할 것 같은 자신’ 사이의 지지부진한 그 싸움을 아는 사람으로서, 내가 받았던 응원을 건넸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진로를 바꿨던 송아처럼 인생에 있어 큰 결정이 아닌, 고작 등산이고 반나절의 트레킹이지만. 이런 작은 형태일지언정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내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기에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에게 평소 자주 가던 산을 함께 오르자고 했고 바로 등산 날짜를 잡았다. 다른 동료는 이미 주말에 근교 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벌써 변화는 시작되었을지도. 처음이 어려울 뿐, 그다음은 쉽다. 그 처음을 친구의 응원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내가, 이제는 처음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받은 응원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이 역할을 잘 감당해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편이 되어 함께 해보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