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동네에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좋은 산책로가 있다. 그곳에는 낮밤, 시간에 상관없이 걷고 뛰는 사람으로 늘 북적인다. 그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에 홀려 얼마 전부터 뛰기 시작했다. 코스 위에 올라 런클럽 어플을 열어 16분에서 30분 미만의 회복러닝 코스 중 오늘의 컨디션에 따라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면 활기찬 목소리의 나만의 코치님이 등장한다. 주말에 몰아서 뛰는 비교적 짧은 코스의 러닝이지만, 이불속에서 나와 뛰기 시작했다면 러너라고 우쭈쭈 해주시는 코치님(!) 덕분에 한 명의 ‘러너’로서 발을 내딛고 있다.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내가, 근근이 뛰는 볼품없는 모양새임에도 스스로를 ‘러너’라고 인정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러너‘임을 받아들인 건, 칭찬봇같은 런 코치님들의 격려와 뛰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익숙하고, 잘 알고 있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초, 중, 고 12년 동안 체육시간마다 운동장을 뛰었고, 체력장과 체육대회의 꽃은 언제나 달리기였다. 비록 계주의 주자가 되어 뛰어본 적은 없지만, 고2 때 교내 마라톤에서 메달을 받은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달리기는 삶에서 사라진 듯했으나 신호를 잡기 위해, 지각을 면하기 위해,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형태로 달리기는 일상에 존재했다. 무엇보다 뛰는 건 속도를 내어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인식과 다년간 요가와 등산을 하며 만들어진 체력은 2-30분은 거뜬히 뛸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주었다. 오만한 생각 덕분에 첫 러닝 후 근육통을 일주일 동안이나 앓아야 했다.
한 발자국 들어온 달리기의 세계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매우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뛰고 나서야 걷고 오를 때 쓰는 근육과 달릴 때 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 팔을 사용하는 일이라고는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정도라, 추진력을 얻기 위해 앞뒤로 힘차게 움직여야 하는 팔동작은 어색했고 어설펐다. 뛸 때 몸이 받는 충격은 예상보다 커서 온몸을 울렸고, 숨 쉬는 방식도 달라 이전 운동에서 기른 폐활량으로는 러닝을 감당하기 부족했다. 고작 다리에만 근육통이 생겼던 등산과 달리 팔, 어깨, 등 그리고 다리까지 온 몸에 근육통이 생겼다. 왜 러닝을 전신 운동이라고 하는지 그야말로 온 몸으로 배운 셈이다.
반전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건 달리기만이 아니었다. 회사에 찾아온 변화와 함께 10년을 해오던 일이 숨겨 왔던 다른 얼굴을 보였다.
조직의 변화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우리 팀의 일은 아니었기에 관망하고 있었다. 방심한 사이 사수를 다른 팀에 뺏겼고, 그의 업무를 타의로 인계받은 나는 팀 맨 뒷자리에 앉게 됐다. 10년을 해온 일이 앉은 자리에 따라 달라지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간의 이동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확장된 업무 속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농도였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발 벗고 나서서 수습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젠 내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두려웠고 외롭게 했다. 매일 하던 일을 하는데, 한 발자국 더 들어온 직무의 세계는 첫날의 러닝처럼 낯설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달리기의 친숙함을 제멋대로 믿고 호되게 당한 것처럼, 10년이란 세월로 만든 익숙함이 무색하게 나는 매일 새로운 좌절을 맛보고 있다.
‘그만할까?’
뛰기 시작한 지 10분쯤 지나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숨 쉬는 게 조금씩 힘들어지는 순간이다. 등은 굽어지고 시선은 땅을 향한다. 기가 막히게도 런 코치는 이런 순간에 등장해 숨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속도를 조금 줄여 천천히 뛰어야 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뛰는 관성에 몸을 맡긴 채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런 코치는 페이스를 찾아라, 평정심을 유지해라 그리고 멈추지 말라고 뛰는 내내 반복해서 말해준다.
요가를 할 때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취해야 하기에 조금만 무리하면 바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요가의 특성상 피크 포즈는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그때 나는 인생의 모든 면에서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게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선에 머무르라는 말해주는 요가가 좋았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위로를 얻기 위해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든 순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뛰라는 런 코치의 코칭을 들었을 때 반항심이 들었다.
몇 번의 코스를 더 뛰면서 그 코칭이 와닿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멈춰 서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속도를 줄일지언정 멈추면 안 되는 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많은 걸 받아 누린 지난 10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누군가에게 그런 10년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지금은 내가 조금 더 뛰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여도 여전히 숨은 차고, 형편없는 자신을 볼 때마다 멈춰 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럴 때 런 코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어느 날은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평정심을, 어느 날은 속도를 줄임으로 페이스를 회복하며, 그렇게 천천히라도 좋으니 주어진 일을 끝낸다. 고맙게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동료들이 런 코치처럼 곁에 있어 힘을 낸다.
뛰는 동안 대부분은 아무 생각도 안 들지만, 이렇게 이따금씩 뛰는 일에 사는 일이 겹쳐진다. 그러면서 배우는 게 많다. 러너(runner)는 러너(learner)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러너’다.
오늘도 뛰고 온 기록을 스토리에 올리자 응원한다며, 다음에 같이 마라톤을 뛰자는 디엠이 왔다. 5km를 간신히 뛰고 온 날이다. 마라톤, 상상도 안된다고 했지만 그 디엠을 받은 후 마라톤이란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다음 스테이지가 열린 기분이 든다. 이곳에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릴 날이 올까? 조금 설렌다. 달리기의 다른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땐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씩 그 매력을 알게 된 것처럼 직무의 숨겨진 얼굴에서도 매력을 발견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애정을 갖고 출근해 봐야지.
올해는 이렇게 꾸준히 달리며 배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