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유유 출판사, 2016)>
글을 쓰고 난 뒤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 때 찾는 사람이 있다. 과거 아르바이트로 교정교열 일을 했다는 회사 동료 K. 그녀의 손을 거치면 문장은 깔끔해지고, 글은 명확해졌다. K는 글을 봐주는데 그치지 않고, 수정한 이유를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설명해 줬다. 그렇게 몇 차례 내 글을 봐주던 K는 어느 날 내게, 글에서 ‘집요함’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편하게 말고, 집요하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마나 ‘집요’하게 썼는지, 이 글을 위해 드린 시간과 노력을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박하려 할수록 도드라지는 건 부족한 실력이었다. K가 내린 진단은 정확했다. 흔한 말로 ‘반박불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유유 출판사, 2016)>에서 저자는 ‘무조건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말은 모두의 것인데 일부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고 말했다.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그 사실을 지적받으면 부정하며 화를 낸다. K가 아니었다면 나는 편리함에 중독된 게으른 글쓰기 습관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구체적으로 풀고, 힘을 실어 주제를 전해야 하는 곳 곳이 추상적인 표현으로 채워져 의도를 정확히 집어 주지 못 했기 때문이란 사실까지도 말이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는 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글을 썼다. 생각을 정리하던 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나 기억해두고 싶은 감정을 글감으로 삼았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 자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써온 글들에서 메시지를 불분명하게 하는 끝을 흐리는 습관이 발견됐고 '집요함'이란 과제가 남았다. 나는 정말로 나를 잘 알고 있나?
'집요한' 처방전
속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은데, 어렵사리 도착해 마주한 ‘진심'이 지나치게 뾰족하거나, 투박하니 뭉툭해 보이거나, 싫은 마음과 좋은 마음이 부딪혀 정리되지 못한 어수선한 상황일 때가 많았다. ‘진심’은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을 뜻하기에, 내 안에서 발견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래서 숨겼다. 못생긴 ‘진심’은 내보일 수 없어 외면했고, 건너뛰어 결론을 맺었다.
“이렇게 잘못된 높임말을 쓰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이 사회에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강도 또한 세졌다는 뜻 아닐까? p.142"
“그러니까 ‘-같다’를 남발해야 할 만큼 무언가에 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게 어색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같다’가 갖는 의미를 단순하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p.84"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서 저자는 사회에 만연해진 감정노동이 어법에 맞지 않는 높임말을 쓰게 하고, 확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대상에는 쓰지 않는 게 옳은 ‘같다’를 사용하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의견에 동감하는 바다. 말은 그리고 글은 상대에게 닿으며 새롭게 피어난다. 그러다 보니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신 있게 말하기보다 ‘-인 것 같다’ 식으로 문장을 끝내려 했다. 나부터가 간신히 찾은 ‘진심’보다 의미 없는 감정노동에 무게를 두느냐 글 쓰는 방향을 잃었다.
마지막은 “빼기”
“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p.33”
길 잃은 문장은 의외의 곳에서 방향키를 찾았다.
올해 직장에 큰 변화가 있었다. 확장된 업무에 적응하는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퇴근하면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생계를 위해 드라마가 희생됐다. 주말이면 밀린 드라마를 보는 대신 한강을 뛰고 산을 올랐다. 머리가 아닌 몸을 쓰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은 단순해지고, 속 마음은 분명한 색을 띠었다. 그런 뒤에 쓴 글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끝을 맺은 기억이 났다. 내가 빼야 할 문장은 다름아닌 나였다.
'집요하다'는 게 깊게, 깊게 파고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 갇혀 진심은 복잡해져만 갔다. 정돈되지 않은 진심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더 깊게'가 아닌, 덜어내는 '빼기'가 필요했다. 단순한 진심은 복잡하게 꼬여있는 또 다른 진심을 푸는 좋은 열쇠인 셈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내가 쓴 문장에서 '공들여 발견한 진심을 외면하던 겁 많은 나, 너무 집요하기만 해서 내 안에 갇혀 버린 나, 걱정과 근심으로 무거운 나, 눈치 보느냐 정작 중요한 건 놓치는 나'를 빼내야 한다. 꽤나 어렵고 긴 풀이식이 될 것만 같다.
문장을 다듬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었는데, 지난 나의 문장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글쓴이의 생각을 담는 그릇인 '문장'은 그 문장을 쓴 이를 닮고,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인가 보다. 오늘의 문장 속에 나는 어떨까? 내 문장이 이상한가요?
덧,
나쁜 글쓰기 습관을 공개해 버렸으니 글 쓰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다(사실 이 글도 어떻게 볼지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 생각도 빼기. 나를 다듬듯, 공들여 문장을 다듬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