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
지난주 아동성착취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다. 생존자는 자신을 도왔던 사회복지사와 범죄 카르텔을 깨트리고 관련 법을 보수하기 위해 힘쓴 단체의 헌신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징역 15년이 처해진 정의로운 판결문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그 전날 보았던 SBS금토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생각났다.
지옥으로 떨어진 죄인을 심판하는 재판관 유스티티아(오나라 분)는 재판 과정 실수로 죄인을 잘못 심판했고, 그 대가로 인간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죄인 10명을 처단해 1년 내에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을 받는다.
유스티티아는 자신이 잘못 재판한 인간, 형사과 판사 강빛나(박신혜 분)의 신분으로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자신이 맡은 형사사건에서 처단할 죄인을 물색하는데, 1화에서는 구속된 죄인을 벌하기 위해 일부로 낮은 형량을 선고해 구치소에서 나오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해자와 가족은 출소한 가해자가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정의롭지 않은 판결로 인해 좌절하고 법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유스티티아는 구치소에서 나온 죄인, 가해자를 찾아간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죄인에게 죄를 인정하게 하기 위해 피해자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겪게 하되, 고통은 몇 배로 돌려주는 지옥의 재판 절차에 따라 심판을 한다.
유스티티아의 재판 절차는 악마가 주는 벌이지만, 사법부를 통한 형 집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적 복수 형태로 볼 수 있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장면도 현실 속 국민 법감정과 거리가 먼 판결을 꼬집고, 사적 복수 형태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수 있다. 다만 드라마에서조차 정의롭지 않은 판결은 깊은 한숨을 뱉게 했고, 30분 이상 지속되는 폭력적인 장면은 통쾌함보다 미간에 주름을 짓게 만들었다.
이렇듯 드라마 연출에 부대끼는 점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현실에선 비추지 않는, 지옥이 돼버린 매일을 살아가는 피해자와 가족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유스티티아가 강빛나로서 내린 판결은 2차 가해라고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말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야기는 피해자를 향한 잘못된 판단과 시선을 점검하게 하고, 그런 순간에만 들끓다 금방 관심이 식는 나의 낮은 끓는점을 부끄럽게 했다. 가해자에게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 피해자에게는 현재를 살게 하는 차가운 위로는 어설픈 착함보다 나았다.
하나 더 생각해 볼 점은 ‘나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악마를 통해 정의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정사정없는 존재 인 악마지만 그들의 법정에서조차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유스티티아는 이 점을 간과했고 그 죄로 인간 세상에서 벌을 받는 중이다. 악마는 죄인을 심판할 때 죄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묻고, 결정에 있어 진심으로 용서를 받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며, 몸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혼의 죽음까지 살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과 예배당에서 ‘(신이) 소원 들어주는 건 깐깐해도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하는 자들에겐 너그럽다’ 던 대사는 악마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벌이 내려진 죄인을 데려가는 것도 다른 악마가 아닌, 십자가 모양으로 빛이 내려오는 심판의 문으로 끌려 올라간다.
이런 역설적인 구조 덕분에 죄와 용서, 정의를 한번 더 곱씹게 된다. 1화 데이트폭력 가해자는 협박으로 받아낸 피해자의 처벌불원서를 통해 자신은 용서받았기에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유스티티아의 재판 중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그 재판의 재판장인 유스티티아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함부로 살 것 같은 악마 세계는 인간 세상보다 엄격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 속에 지켜지는 질서가 있으며, 무엇보다 무엇이 악하고 틀린 것인지 인간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죽어서 가는 지옥이 무섭다 한들 살아서 겪는 지옥보단 괴롭지 않으니까. 당신이 사는 이곳이야 말로 악마 같은 인간들로 가득한 진짜 지옥이니까. “
악마로 가득한 지옥과 다를 것 없는 악마 같은 인간들로 가득한 우리가 사는 이곳, 강빛나의 대사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여기 이곳, 우리가 사는 현실이 지옥이 되지 않기 위해,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기 위해, 타인의 삶을 지옥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우리에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부끄러운지 아는 분별력,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제심과 단정함. 이것은 규율과 자기 통제가 가능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의 정말 중요한 덕목이다(<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임경선, 마음산책).”
임경선 작가가 말한 괜찮은 어른의 덕목-무엇이 부끄러운지 아는 분별력, 자제심, 단정함-에 연민과 존중, 배려라는 사랑을 더한다면 벌이 두려워서 법을 지키고, 타인을 헤치지 않는 소극적인 정의 실현을 넘어 우리를 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며, 그럴 때 여기 이곳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지옥이 되지 않지 않을까?
소홀해져 버린 단정한 삶을 추구하던 자세와 낡아버린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기지개 켜야겠다. 유스티티아가 눈을 씻고 찾아도 죄인이 없어, 10명을 심판하지 못해 지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엔딩을 상상해 보며.